월차, 휴식, 그리고 롤리타.
금요일이나 월요일에 월차쓰기가 눈치가 많이 보여요.
그래서 가끔은 목요일에 이렇게 긴 휴식도 좋아합니다.
마스크 없던 시절이 이렇게 그립다니,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오늘은 책 롤리타 리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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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사 피트 십 인치인 그녀는 그냥 로,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 17
우리는 방방곡곡을 누볐다. 그러나 사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기나긴 여행은 이 아름답고 믿음 깊고 꿈 많고 드넓은 국토를 구불구불한 점액의 흔적으로 더렵혔을 뿐이고 돌이켜 보면 그때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귀퉁이가 접힌 지도 한 다발과 너덜너덜한 여행 안내서, 닳아빠진 타이어, 그리고 한밤중에 - 밤이면 밤마다 - 잠든 체하는 내 귓가에 울리는 그녀의 흐느낌이 전부였다. / 278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내 비록 다리가 다섯 달린 괴물이었지만 너를 사랑했다. 내 비록 비열하고 잔인했지만, 간악했지만, 무슨 말을 들어도 싸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고, 그때마다 지옥의 괴로움을 맛보았다, 나의 아이야. 롤리타, 씩씩한 돌리 스킬러. /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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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화자를, 주인공을 사랑할 수 없는 읽기는 고역이었다.
험버트식의 사랑은 몹시 비열하고도 한편 괴로운 자기파괴이기도 하다. 내게는 에드리안 라인의 영화 <로리타>, 처연한 표정의 제레미 아이언스와 중첩되는 험버트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질 때마다 자주 혼란스러웠다.
포르노그라피,로 불릴만큼 적나라한 성애장면 묘사나 상황들은 거의 없지만 아이에 대한 집착과 광기에 가까운 묘사들이 이 작품 속 험버트에 대한 적개심, 도덕의 경계를 생각하는 지점들이 되었다.우리가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 된다. '소아성도착'라는 단어는 일부에게만 적용되는 성범죄이기만 한가. 섹시하게, 좀 더 섹시하게. 과한 설정을 소화해내는 어린 10대들을 재능있는 아이들로 포장하고 강요하는, 그리고 소비하는 세태에 대해서. 우리 안에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롤리타는 또 얼마나 많은지.
롤리타는 험버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 큰 험버트의 비극이자 형벌이 되겠지.
두 사람을 쫒는 '퀼티'.험버트를 조여오는 그림자이며 험버트로부터 롤리타를 훔쳐내고 그녀를 능욕하고 버리는 또 하나의 인물. 퀼티를 죽음으로 처단하는 모습이 곧 험버트 자신을 향한 단죄이지 않을까.
인간 안에 욕망과 욕망의 한계와 사랑의 본질에 대해, 그것의 혼란과 불안을 생각해보는 시간. 좋기도 나쁘기도 했던, 유익한 독서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