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기 '동행' 4 - 마음의 평화를 찾아 떠나다.

in KOREAN Society4 years ago (edited)

배낭에 쑤셔 넣은 짐을 쏟아냈다 넣었다를 수차례 반복하자 보다 못한 아내가 내 배낭을 정리해 준다. 벌써 4번이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아내가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잘 안다. 50리터 배낭에 이것저것 넣다보니 무게가 10킬로그램에 육박했다.

0-1.JPG

파리까지 타고 갈 여객기

까미노를 걷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낭 무게의 중력 때문에 고생한다. 드디어 짐은 다 꾸렸고 이제 비행기 티켓과 열차표를 꼼꼼히 챙긴 다음 여정에 돌입할 일만 남았다. 10월의 어느 쾌청한 날, 파리 몽빠르나스역 플랫폼에서 바욘Bayonne행 기차에 몸을 싣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기차 안으로 걸어오는 화사한 붉은 옷의 두 여인이 유독 눈에 띈다. 어머니와 함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어갈 은정이와 그녀의 어머니다. 나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은정이는 살아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순례길을 걸어갈 우연치 않은 만남은 우리 사이를 더욱 각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의 인연은 까미노 전 구간에 걸쳐 지속된다.

바욘역에 내리자마자 대합실에서 역무원들이 생장피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행 열차표를 끊어준다. 걱정할 필요 없이 그냥 표를 사면 된다. 다시 플랫폼으로 들어가 두 칸짜리 조그마한 기차로 갈아타고 앞을 향해 나아갔다.

20181003_123236.jpg

20181003_123418.jpg

생장행 완행열차 안에서

프랑스길 순례의 시작점인 생장피드포르까지 가는 기차는 우리나라의 옛 비둘기호 열차와 같이 느릿느릿 달려간다. 속도의 경쟁에 찌든 나는 느리게 가는 열차가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생장피드포르 간이역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순례자협회 사무실을 찾아간다. 길을 물을 필요도 없이 앞의 사람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편하기 그지없다. 그곳에서 크레덴시알Credencial이라 부르는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조개껍질을 찾아 배낭에 매달았다.

0-5.JPG

순례자 사무실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순례 기간 내내 순례자 여권이 있어야만 알베르게Albergue라 부르는 순례자 숙소에 머물 수 있을뿐더러 순례증서를 발급 받을 때에도 모든 코스를 걸었다는 증거물이 된다. 그래서 순례자 여권, 즉 크레덴시알에는 자신이 걷는 마을의 성당, 바, 숙소 등지에서 하루에 하나 이상 스탬프 도장을 받아야 한다.

조가비는 산티아고 성당까지 걸어가는 순례자의 상징이다. 산티아고성 야고보의 유해를 실은 배에 조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제 크레덴시알을 발급받고 조가비까지 배낭에 매달았으니 나도 진정한 순례자가 되었다.

생장피드포르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시립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은정 모녀와 내가 가장 먼저 문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우리 배낭 뒤로 순서를 기다
리는 배낭들이 줄줄이 놓여졌다.

20181004_072414 (2).jpg

산티아고 가는 화살표시

그게 화근이었을까? 창문 옆 가장 좋은 침대의 1층 자리를 선점한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밤이 되어서는 그 미소가 찡그림으로 변할 줄이야. 한밤중 목과 팔 주위의 극심한 가려움증 때문에 잠에서 깼다.

빈대와 벼룩 같은 베드버그bedbug의 전천후 공습이 시작된 것이었다. ‘하필이면 왜 나야?’ 하는 짜증으로 몸을 바짝 웅크렸지만 도무지 베드버그의 공습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잠을 이루지 못해 밖으로 나가 침낭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침낭 끝자락에 좁쌀 같은 회색 물체가 보였다. 베드버그였다. 잡아서 죽이고는 침낭을 힘차게 탈탈 털었다.

목과 팔에는 베드버그로 인해 생긴 붉은 반점이 여기저기에 돋아 있었다. 달밤에 쇼를 하는 동안 67세의 교포여성 영휄리는 내 곁에 있어 주며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순례를 시작하기도 전에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배려해 준 고마운 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침이 되자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순례 여정에서 처음 만난 박광집안드레아 형제가 자신의 약품 상자를 열어 가려움증에 붙이는 패드를 아낌없이 나의 몸에 붙여줬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신기한 듯 가려움증이 가라앉는 것 아닌가.

몸이 정상을 되찾은 이유는 약효가 좋아서도 그렇겠지만 밤을 같이 새워준 영휄리와 안드레아 형제 같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어젯밤 고작 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배려로 피레네산맥을 넘어갈 의욕이 생겼다.

지금부터 나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과 까미노를 동행할 것이다. 어머니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끝내고 되돌아 갈 즈음 내 마음은 평화를 되찾으리라.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으며 순례의 첫발을 내딛는다.

Sort: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이네요~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사람들 정말 글을 읽질 않아요.
그래도 파워에고님께서 읽어주시니 힘이 납니다.

책으로 보고 컴에서 보니 새롭네요~~^^
내가 산티아고 여정을 떠난는 느낌...
좋은글 감사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6
TRX 0.15
JST 0.028
BTC 56586.53
ETH 2392.96
USDT 1.00
SBD 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