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30)
7월 18일의 정황(부도 제18호 참조)
부남면에서 적을 경비 수색 중이던 제3대대는 전면에 출현한 적 유격대 20여 명을 포착 교전 중 후속한 적 유격대 30명이 제3대대 진지 후방을 차단하고 포위공격을 가해 왔으므로 포위망에 함입된 아 제3대대는 격전 끝에 13:00 적 포위망을 돌파, 전 병력을 도평동에 진출시키고 정선 경찰 중대를 도평동에 평창 경찰 중대 및 제9대대 제3중대를 송강, 괴정에 각각 배치하였다. 그 후 23일까지 아 경찰대는 적 유격대를 수색하는 한편 각 배치 지역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7월 24일의 정황
17:00 아 제3대대는 청소군 현동면 인지동(ER010~170)에 침입, 집결한 적 유격대 800명이 야간에 이르러 촘곡령(ER052~100)~문산령(ER044~180) 일대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즉시 공격하여 19:30 적을 남방으로 격퇴하였다.
7월 25일의 정황(부도 제18호 참조)
도평동과 구암산을 연하는 산악지대를 유동 중인 적 유격대가 각개 분산하여 부근 민가에 침입하여 식량을 약탈하는 등 잠행을 거듭하고 있음으로 아 제3대대 및 제6대대가 공격을 개시 이를 추격 분산시키고 또한 05:00 영천군 자양면 성곡동에, 08:00 동군 신령면 부산동에 각각 침입하여 식량을 약탈하는 적 유격대를 발견한 제6대대도 즉시 적을 추격하여 분산 격퇴시켰다.
7월 26일의 정황
07:00 현서면 갈천동으로부터 모계동에 침입한 적 유격대 500명은 그 후 보현산에서 내원한 적 유격대 약 2,000명과 합세하여 아 후방을 위협할 목적으로 구산동 부근으로 북진해 옴을 발견한 아 경찰대는 해 적을 추격했으나 포착하지 못하였다.
7월 27일의 정황(부도 제18호 참조)
06:00 영덕 및 영양에서 보현산으로 남하 중이던 적 유격대 약 1,000명은 화장동(ER130~169)을 경유, 월매동 부근에 집결하고 그 후 계속 보현산에 남하 잠복하였다. 한편 보현산에서 하산한 적 20명이 영천군 영화면 입암동(DR056~983) 민간에 침입, 식량을 약탈함을 때마침 경비 중이던 화북지서원이 발견하고 즉시 출동하여 해 적을 포착 섬멸하였다. 이때 갈천동(DR959~048)~사촌동(DR910~040) 간에 포진하고 있던 적 약 500명은 아 제1공병단 공병대대 1개 중대의 추격으로 보현산으로 도주하고 또한 17:00 구암산과 보현산에서 배회(徘徊) 중인 적 유격대 1,500명은 내동지서(EP115~975) 부근 고지의 점령을 기도하고 기습전을 감행해 왔으며 한편 동 지대를 확보 중이던 강원도 비상 경비사령부 제6대대는 적과의 전초전을 계속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19:00 구지동에 철수, 부대를 정비하여 전면의 적을 수색하였다. 21:00 구산동 부근에서 유동 중이던 적이 양서지서 습격을 기도하매 구산동에 대비하고 있던 아 제1공병단 공병대대 일부 병력과 지서원의 반격으로 해 적은 구산동 동북방 고지를 향하여 도주하였다. 23:00 제1공병단 공병대대는 대대 지휘소를 구산동에 설치하는 한편 제3중대를 산두봉 749고지(DR893~095)에, 제2중대를 모계동 우측 569고지(DR928~092)에 각각 배치하고 적에 대한 수색 활동을 개시하였다.
7월 28일의 정황(부도 제18호 참조)
내동에 침입한 적이 아 경찰대의 압력으로 01:00 보현산으로 이동하자 구지동에 포진하고 있던 제6대대는 02:00 내동에 진출, 부근 일대를 완전 확보하고 12:00 주력을 내동 동북방 418고지 및 682고지와 492고지를 연하는 능선 일대에 배치, 구암산 부근에서 준동하는 적을 수색 추격하였다. 그리고 청송군 부남면 화양동에서 양숙동(ER110~147)을 경유, 상월매동(ER016~078)에 집결 중이던 적 유격대 2,500명은 부근에 잠복하고 있는 적과 합세하여 동 지대에서 준동을 계속함으로 아 제6대대는 일부 병력으로서 해 적을 추격하고 한편 적 유격대 2,000명이 불노동(DR920~063)부근으로 우회 진출함을 발견하고 추격했으나 포착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