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태조가 백관의 추대를 받아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르다

in history4 years ago (edited)

태조가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먼저 이달 12일에 공양왕이 장차 태조의 사제로 거둥하여 술자리를 베풀고 태조와 더불어 동맹하려고 하여 의장(儀仗)이 이미 늘어섰는데, 시중 배극렴 등이 왕대비에게 아뢰었다.
"지금 왕이 혼암하여 임금의 도리를 이미 잃고 인심도 이미 떠나갔으므로, 사직(社稷)과 백성의 주재자가 될 수 없으니 이를 폐하기를 청합니다."
마침내 왕대비의 교지를 받들어 공양왕을 폐하기로 일이 이미 결정되었는데, 남은이 드디어 문하 평리 정희계와 함께 교지를 가지고 북천동의 시좌궁에 이르러 교지를 선포하니, 공양왕이 부복하고 명령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불민하여 사기를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린 일이 없겠습니까?"
하면서, 이내 울어 눈물이 두서너 줄기 흘러내리었다. 마침내 왕위를 물려주고 원주로 가니, 백관이 국새를 받들어 왕대비전에 두고 모든 정무를 나아가 품명(稟命)하여 재결하였다. 13일에 대비가 교지를 선포하여 태조를 감록국사로 삼았다. 16일에 배극렴과 조준이 정도전 등이 국새를 받들고 태조의 저택에 나아가니 사람들이 마을의 골목에 꽉 메어 있었다. 대사헌 민개가 홀로 기뻐하지 않으면서 얼굴빛에 나타내고, 머리를 기울이고 말하지 않으므로 남은이 이를 쳐서 죽이고자 하니, 전하가 말하기를,
"의리상 죽일 수 없다."
하면서 힘써 이를 말리었다. 이날 마침 족친의 여러 부인들이 태조와 강비를 알현하고, 물에 만 밥을 먹는데, 여러 부인들이 모두 놀라 두려워하여 북문으로 흩어져 가버렸다. 태조는 문을 닫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는데, 해 질 무렵에 이르러 극렴 등이 문을 밀치고 바로 내정으로 들어와서 국새를 청사위에 놓으니, 태조가 두려워하여 거조를 잃었다. 이천우를 붙잡고 겨우 침문밖으로 나오니 백관이 늘어서서 절하고 북을 치면서 만세를 불렀다. 태조가 매우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용납할 곳이 없는 듯하니, 극렴 등이 합사하여 왕위에 오르기를 권고하였다.
태조는 굳이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예로부터 제왕의 일어남은 천명이 있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나는 실로 덕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 감히 이를 감당하겠는가?"
하면서, 마침내 응답하지 아니하였다. 대소 신료와 한량·기로 등이 부축하여 호위하고 물러가지 않으면서 왕위에 오르기를 권고함이 더욱 간절하니, 이날에 이르러 태조가 마지못하여 수창궁으로 거둥하게 되었다. 백관들이 궁문서쪽에서 줄을 지어 영접하니, 태조는 말에서 내려 걸어서 전으로 들어가 왕위에 오르는데, 어좌를 피하고 기둥 안에 서서 여러 신하들의 조하를 받았다. 육조판서 이상의 관원에게 명하여 전상에 오르게 하고는 이르기를,
"내가 수상이 되어서도 오히려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직책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어찌 오늘날 이 일을 볼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내가 만약 몸만 건강하다면, 필마로도 피할 수 있지마는, 마침 지금은 병에 걸려 손·발을 제대로 쓸 수 없는데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경들은 마땅히 각자가 마음과 힘을 합하여 덕이 적은 사람을 보좌하라."
하였다. 이에 명하여 고려 왕조의 중앙과 지방의 대소 신료들에게 예전대로 정무를 보게 하고, 드디어 저택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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