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31 변화하는 국제정치질서의 딜렘마와 한국의 대응
국제정치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이번 국제정치질서의 변화는 그 폭과 깊이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600년 이상 진행되어 오던 서구의 우위가 붕괴되고 있다. 서구의 약화와 함께 서구사회의 중심 이념이었던 자본주의도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다. 역사를 주도하던 힘이 약화되면 그 이념과 가치 그리고 제도도 같이 약화되는 법이다.
변화의 조짐은 현실적으로 브릭스의 확대와 그동안 서구질서의 하부구조를 형성했던 국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의 말리, 니제르, 부르키노파소는 서구의 제국주의지배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는 점차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냉전에서 미소간 갈등구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튀르키예가 독자노선을 선택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에서 멀어지고 있다. 전세계 해양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말라카 해협을 통제하고 있는 말레이지아가 브릭스 가입을 신청했다. 미군에게 점령되어 있던 이라크도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힘에 눌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국가들이 자기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국제정치질서의 변화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다. 제1, 2차 세계대전이후 국제정치질서는 강대국의 협상과 구도에 의해 정해졌다. 과거 식민지국가들은 스스로 제국주의의 질곡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라 세계대전의 결과에 따른 강대국간 힘의 역학관계의 변화에 따른 부수적 결과였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국가들의 움직임은 강대국의 협상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정치질서 구축과정과 성격과 의미가 다르다. 이들 국가는 국제정치적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과거에서 벗어나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가능했던 것은 냉전이후 미국중심의 국제질서가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현재의 균열은 다시 회복할 수 없다. 균열의 틈이 너무 벌어져서 미국이 어떤 조치를 하더라도 메울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균열의 틀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을 규합해서 끝까지 미국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자신들이 중심이되어 있고 자신들이 가장 많이 혜택을 보는 국제정치질서를 남의 힘을 이용해서 유지하고 지키려고 하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미국이 중국에 대응하기위해 미-일-한 안보구도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런 미국의 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아무리 한국과 일본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장악해도 한국이나 일본이 중국과의 교역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한국과 미국의 교역이 증가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과 교역규모를 앞서고 있다. 점점 더 그런 경향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압박하면 한국과 일본은 앞에서는 그런척 하겠지만 사실은 그대로 따라가기 어렵다. 미국의 요구대로 하면 한국과 일본의 경제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정권도 경제가 붕괴되면 유지되기 어렵다. 일본의 기시다 정권과 한국의 윤석열 정권이 역대 최저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를 찾으라고 한다면 바로 경제문제라고 하겠다.
윤석열이 아무리 고개를 도리도리하고 김건희가 다올백을 받아도 한국경제가 잘나가고 젊은이들이 취업을 해서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다면 지지율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윤석열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념적인 투쟁으로 반전해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애시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한국은 지금 새로운 국가운영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계경제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브릭스 시장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브릭스 시장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서구주도의 질서에서 시장과 원료는 힘으로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제국주의 질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미국의 보호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 질서에 편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을 움직이는 주도세력이 교체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과거 한국이 살아왔고 발전할 수 있었던 질서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국제정치질서의 변화는 세계대전이상의 사건이 일어났을때나 가능한 일들이다. 한국의 지식사회는 여전히 이런 국제정치질서의 변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국제정치질서는 텍스트와 문법이 동시에 바뀌고 있다. 지금 한국의 지식사회는 텍스트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바뀌고 있는 텍스트를 기존의 문법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으로 비교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질서와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질서에 모두 적응해야 한다.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는 살아갈 수 없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없다. 서로 적대적인 두세상과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쉬운길로 가면 한국은 망한다. 한국은 어렵고도 좁은길을 선택하고 가야 한다.
그 좁은길을 가기 위해서는 한국 대중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사회가 형성되어야 한다. 기존의 사고와 이념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식사회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정권의 대외정책에서 미묘한 변화를 느끼고 있다. 그것은 매우 주관적인 관찰의 결과이기 때문에 섣부르게 공개하기는 저어된다. 일견 긍정적인 기대와 희망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의 관찰이 틀릴 가능성도 많기 때문에 여전히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현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지도자와 대중들 모두 한국이 현재 딜렘마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어느 한곳을 선택하는 것이 결코 한국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해법도 가능하다. 기존의 일방적인 주장과 태도로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쉽지 않은 길을 쉽게 가려고 하면 최악의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