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30 말레이지아의 브릭스 가입신청과 미국의 말라카 해협 통제상실의 의미

지금의 국제정치상황은 하루하루 역동적이다. 국내정치에서 선거기간의 하루는 1년과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 지금 국제정치 상황도 비슷한 것 같다. 하루에 일어나는 일이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1년에 일어날까 말까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큼 변화의 폭이 넓고 깊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범위,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그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언론 그리고 전문연구기관조차 이런 변화를 추적하고 예측하고 전망하는데 실패하는 것 같다. 한국의 지식사회에서 지식이란 생동감있는 현실이 아니라 지나간 화석과 같은 의미와 역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러간의 역학관계는 가히 세계사적 변화를 연상케 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의 힘의 역학관계가 변화하는 변곡점이 아닌가 한다. 해양세력이 대륙세력보다 우위에 선 것은 신항로개척이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이었다. 해양이 대륙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해양세력들이 연안지역의 주요 해협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양세력은 선박을 이용한 기민한 기동력으로 대륙세력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약 500년 이상 지속되었던 해양세력의 우세가 바야흐로 21세지 초반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과학기술의 발전때문이라고 하겠다. 선박에 대포를 싣고 힘의 우위를 자랑하던 해양세력들이 더 이상 해군력의 우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양세력의 우위는 연안지역, 그중에서도 상품을 실은 선박의 이용을 통제할 수 있는 주요해협을 통제할 때 가능하다.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3개의 해협이 존재한다.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지브롤터 해협,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및 다다넬즈 해협, 서아시아와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이 그것이다.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와 같은 인공시설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여기에서 논의하지 않기로 하겠다. 최근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는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정치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바로 이 해협을 누가 확보하고 통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망해버린 제국의 흔적에 불과했던 튀르키에가 부활해서 지금처럼 국제정치무대에서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는 이유는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다다넬즈와 보스포러스 해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냉전시기에 튀르키에를 NATO에 포함시킨 이유도 바로 소련이 흑해를 통해서 지중해로 진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튀르키예가 친러시아적인 행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지중해세계가 다시 러시아의 영향력하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세계에서는 러시아가 동유럽으로 진출하는 것보다 러시아가 흑해에서 머물지 않고 지중해로 들어오는 것을 더 두렵게 생각한다. 유럽은 지중해를 자신들의 내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가 나토에서 탈퇴하게 되면 서유럽은 자신들의 속살과 내장을 러시아에게 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튀르키예는 나토국가이면서도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고 서서히 친러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다. 튀르키예는 브릭스 가입신청을 했고 상하이협력기구에도 가입여부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브릭스가 경제적 역할이라면 상하이협력기구는 안보적 성격을 띤다. 튀르키예가 상하이협력기구에 가입하려면 나토에서 탈퇴해야 한다. 튀르키예가 당장 나토에서 탈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튀르키예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양다리를 걸침으로써 얻는 이익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구데타를 통해 에르도안을 제거하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튀르키예의 이런 지정학적 위치와 의미 때문일 것이다.

국제정치적으로 메가톤급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말레이지아가 브릭스에 가입신청을 한 것이다. 7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말레이지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말레이지아를 방문한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브릭스에 가입하겠다고 신청한 것이다. 말레이지아의 브릭스 가입신청은 동남아시아의 한국가가 브릭스에 가입한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말레이지아의 브릭스 가입신청은 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힘의 우위가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대형사건이다.

비록 브릭스가 경제협력기구이지만 거기에 가입하는 국가들은 모두 일정정도 반미 반서구의 경향을 띠고 있다. 게다가 말레이지아는 말라카 해협을 보유하고 있다. 태평양 물동양의 대부분이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말라카 해협을 통제하는 국가가 태평양을 통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레이지아가 브릭스에 가입한다는 것은 태평양에서 미국의 퇴조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해양세력이 더 이상 힘의 우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해양세력이 해협을 통제했다면, 이제는 대륙세력이 해협을 통제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게다가 북극해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태평양과 북해가 그대로 이어지며 북해항로의 대부분은 러시아의 연안을 지나야 한다. 미국은 지리적으로 북해에 연고가 없다.

미국은 수에즈 운하의 입구인 아덴만에서 예멘의 후티에게 밀려나고 있으며, 보스포러스와 다다넬즈해협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하게 상실했고 말라카 해협에 대한 통제력까지 상실하고 있다. 게다가 남중국해에 개입할 수 있는 역량도 상실하고 있다. 7월초 남중국해에서 벌어진 미국과 중국의 전자전에서 미국은 일방적인 패배를 당한바 있다. 미국이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것은 미사일의 발전 때문이다. 미사일은 미국의 해군력을 무력화시켜버렸다.

미국의 주도권 상실은 총체적인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하락은 단순하게 중국의 경제적 도전 때문이 아니다. 미국은 군사, 경제, 외교, 문화, 이념 거의 모든 부분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미국이 경쟁력을 상실한 핵심적인 원인은 외부의 도전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미국은 마치 로마가 붕괴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정치지도자들이 반드시 다시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면 기번의 '로마제국의 흥망'일 것이다. 묘하게도 지금 미국은 로마가 망하는 것과 아주 유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국은 국제정치적 변화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최근 미국은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을 제도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지금이야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강요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따라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국과 일본의 인민이 미국이 강요한 불리한 상황을 인내하지 않게 될 것이다.

중국에게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을 동원하겠다는 미국의 구상은 고육지책이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한국인민의 그 누구도 중국과 군사적인 충돌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 정권의 팔목을 비틀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나, 한국은 정치지도자를 이끌어 간다고 해서 인민들이 따라가는 일본과 같은 국가가 아니다. 한국은 지금의 미국 정책 및 전략가들이 파악하기 어려운 인민의 전통이 있다. 이제 한국인민이 서서히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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