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zzan 문학상 출품] 소설 〈입춘대길〉

in zzan2 years ago (edited)

제2회 zzan 문학상 출품작
응모 분야 : 소설
제목 : 입춘대길

“이름은 뭘로 할까?”
영분은 작명 센스가 떨어진다. 그건 형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곧 거머쥐게 될, 서른다섯 명의 청춘이 입주할 건물의 이름을 지으려 머리를 모았다. 일 년 전이면 근처 대학과 가까운 데다 햇볕 잘 드는 빌라를 샀다는 기쁨을 누리느라 ‘행복빌라’나 ‘대동하우스’ 같은 무난한 이름을 골랐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감염병으로 대학 수업은 비대면으로 전환됐고 월세를 오만 원, 보증금을 백만 원 낮춰도 공실이 압도적이다.
“영우빌라 어때? 영분의 영이랑, 형우의 우…….”
영분은 자신을 탓한다.
메시지가 영분의 휴대폰을 흔든다. 팔자 필러를 맞으려 추가해둔 성형외과의 봄맞이 이벤트 광고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지에 벚꽃이 여럿 피었다. 영분은 스마트폰을 꺼내 ‘입춘대길 한자로’를 검색한다.
立春大吉.
경사스러운 일이 줄줄이 들어오라는 영분의 소망이 통했는지, 3월 중순이어도 벌써 방은 반이나 찼다. 연분홍색으로 외벽을 칠해서일까, 돈을 더 주고 하얀색 바닥으로 도배를 해서일까, 중개사는 비대면인 와중에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실습에 참여해야 하는 미대생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고 했다. 공교롭게 영분의 딸 선아는 미대 진학을 꿈꾼다. 세든 학생 몇과 친해지면 선아에게 도움이 되겠으나, 한 번 더 생각하면 입춘대길은 지방 변두리 학교 근처에 있으므로 도리어 선아에게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영분은 이런 믿음에 잠시 죄책감을 지니다 이 근방의 모든 건물주가 자신과 같은 마음이리라며 자책감을 던다.
성실하고 깔끔한 선아와 다르게 입춘대길에 머무는 학생은 꾀죄죄했다. 영분이 아침 8시마다 입구 앞의 쓰레기를 치울 때면 그들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동공이 풀린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예술은 창조적인 분야라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지저분했다.
“아주머니, 잘 지내셨어요?”
유빈은 달랐다.
영분은 유빈이라면 마음 놓고 선아를 맡길 수 있다고 느꼈다. 유빈은 하루에 몇 번을 마주치든 인사를 거르는 법이 없었다. 세를 밀리기는커녕 꼬박꼬박 하루 전마다 38만 원을 보냈으며 고향에서 홍시를 받은 날에는 영분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동대학교에 온 걸 보면 공부는 아닐지 몰라도 성실만은 보증수표였다. 영분이 새벽 6시에 분리수거를 하러 나올 때면 아침 운동을 끝내고 땀을 흘리는 유빈과 마주쳤고, 해가 저무는 시간에 오며 가며 입춘대길의 창을 슬쩍 둘러볼 때면 깜깜한 201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영분이 유빈의 팔을 약하게 쥐었다.
“유빈 학생, 혹시 과외할 생각 없어요?”
“과외요?”
영분은 유빈이라면 마음 놓고 선아의 과외를 맡길 수 있다고 느꼈다. 엊저녁 보았던 뉴스가 영분의 결정에 가속도를 높였다.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이들이 명석한 두뇌를 악용해 학생을 감금하고 성매매를 하는 데 일조했다는 참혹한 범죄. 우선 유빈은 여자고, 꼭 여자가 아니어도 자신의 빌라에 사는 학생이다. 신원은 확실하고 여차하면 유빈의 부모에게 연락해도 무방하다.
“응, 우리 딸이 동양화과를 준비하고 있어서.”
“저야 영광이죠.”
영분의 어깨가 자연스레 올라간다. 유빈은 싹싹했다. 요즘 친구들답지 않게 답답하게 말을 늘리는 법이 없었다.
다음 날, 유빈은 선아를 찾아온다. 유빈은 선아에게 수묵과 채색 표현을 테스트한다. 인물은 어떤 표현 기법으로 구현하는지, 크로키와 사군자 중 선아와 어울리는 필법은 무엇인지, 훗날 조형까지 무난히 만들 재능이 있는지. 고등학생 시절 잠깐 들은 미술을 제외하고는 전시회도 잘 가지 않는 영분은 이미 아는 지식이라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이다 그만둔다. 대신 16년 간 빠짐없이 보던 선아의 얼굴을 살핀다. 선아의 표정은 밝다. 틀림없이 마음에 드는 기색이다.
수업이 끝나고 영분은 유빈은 배웅한 뒤 바로 뒤를 돌아 선아의 기분을 확인한다.
“엄마, 나 유빈언니 마음에 들어.”
“그래 보이더라.”
선아가 샐쭉하게 웃는다. 영분은 유빈에게 당장 내일 오전부터 수업을 이어 할 수 있냐고 문자를 보낸다. 돌아오는 답장은 역시나 공손한 어투다.
「네, 감사합니다. 잘 가르치겠습니다.」
‘열심히’가 아닌 ‘잘’. 따로 단어를 고칠 필요 없어도 부모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유빈 덕에 영분은 잠시 흡족하다.

시작한 지 한 달, 선아의 성적이 전보다 눈에 띄게 오르지는 않았지만 선아가 밝아졌다는 건 유빈과 대화한 적 없는 형우도 쉽게 알만한 사실이다. 영분이 음식을 받는 쪽에서 주는 쪽으로 변했다는 것 외에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지닌 미묘한 지위마저 그대로였다. 영분은 유빈에게 조아릴 생각이 없었으며 유빈 역시 딸의 성적을 쥔 선생님이 보일 법한 위치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매번 서로의 선을 넘지 않으며 안전하게 주 2회차 수업을 마쳤고, 유빈이 과외 당일 한마디 없이 잠적한 때야 영분은 이제껏 유빈의 배려 덕에 당혹스러운 일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연달아 당혹감을 느낀 건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가족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201호의 창문을 뜯고 진입해 목을 맨 유빈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였다.
“가족분들은 전주에 계셔서요. 소식 듣고 바로 올라오시는 중이니 크게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영분은 큰 걱정과 작은 걱정을 가늠했다. 큰 걱정은 혈흔이 가득한 201호의 청소 업체를 구하는 것, 유족과 언짢은 대화를 해야 하는 것, 어쩌면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르는 것, 좁디좁은 지역 사회에서 유빈의 일이 암암리에 퍼져 아무도 입춘대길에 입주하지 않는 것, 선아에게 설명할 명분을 지어내는 것이었다. 그 밖의 문제는 비교적 작은 쪽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커다란 걱정 안에 왕왕 알고 지내던 유빈의 죽음이 없음에 영분은 잠시 인간의 이기심을 되짚었다. 그럼에도, 우선 큰 걱정부터 해치워야 나머지 걱정을 고민할 여유가 주어질 테다.
형우가 영분의 심각한 표정을 발견하고 걱정스레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영분은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유빈이가 자살했대.”
돌아오는 답은 뜻밖이었다.
“유빈이가 누군데?”
우리 빌라에 사는 인사성 밝은 학생 있잖아, 선아 과외 하는 그 애 말이야. 동양화를 전공하고 행실 바른 아이. 어떤 말로 유빈을 수식해야 하나 잠시 궁리하던 영분은 느리게 입을 뗐다.
“201호 사는 여자아이.”
형우의 표정이 차차 굳기 시작했다. 영분은 형우의 표정 변화가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이길 간절히 바랐다. 훗날 사건이 마무리되고 차분한 상태로 얘기를 나눌 때, 서로 사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생각을 터놓을 일은 없겠지만서도 각자의 큰 걱정과 작은 걱정의 우선순위가 다르다면 기이한 자책감에 지닌 채 아침을 맞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010-8435-XXXX」
유빈의 사건을 취조하는 담당 형사가 영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보낸 번호는 유족이라는 설명 뿐이었다. 영분은 주저하다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문자를 받은 이는 자신을 유빈의 친오빠라고 소개했다. 형사는 왜 영분에게 유빈의 부모님 전화번호 대신 형제의 번호를 주었는지, 임대차 계약서에 쓰인 보호자의 전화번호는 왜 먹통인지에 대한 얘기는 알려주지 않았다. 영분은 본론에 앞서 분위기를 풀려는 목적으로 글을 썼다.
「어머니가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번호가 바뀌어서요. 지금은 경황이 없으세요. 저와 연락하시면 됩니다. 우선 현관 비밀번호를 말씀해주시면 내일 오전 중으로 정리하겠습니다.」
「1212 예요. 조용히 치워주시면 고마워요.」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영분은 스마트폰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 다시 메시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죄송해요, 저희도 너무 놀라서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얘기는 섣불리 하면 안 될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감정을 추슬러 위로의 말을 전하기에는 유족도, 영분도 할 일이 많았다. 유빈의 가족이 나서 손수 짐을 정리한더래도 남자들을 불러 침대를 빼야 했고, 퀴퀴한 냄새를 지울 특수청소업체가 필요했다. 영분은 포털사이트에 다소 직설적으로 단어를 넣었다. ‘자살 청소 업체’, ‘고독사 청소 업체’, ‘원룸 변사 청소업체’. 사이트를 관리하는 어떤 청소업체의 직원은 시간을 들여 흔적을 지워낸 후기를 에세이로 올리고 있었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새우깡과 소주였다는 40대 남성의 고독사부터, 각방의 난도를 정해 부패가 심하면 심할수록 고된 작업이라는 내용이 붙은 글이었다. 몇몇 게시글은 영상도 있었으나 영분은 자신의 빌라가 상상되어 감히 누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형우가 영분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마침 욕조 안에서 생을 마감해 혈흔이 변기를 타고 흐른 사진이 떠 있었다. 형우가 혀를 찼다.
“아무 데나 부르지, 뭘 또 후기까지 찾아.”
“보증금에서 청소 업체 부르는 값이랑, 침대 새로 사는 값만 제하고 돌려주면 되겠지?”
형우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침대에서 그랬다는 증거가 어디있어?”
영분은 영영 201호에 제 발로 들어설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건 처리는 순조로운 편이었다. 침입 흔적이 없고 시신에는 누군가와 싸우다 다친 흔적이 없었다는 점, 책상 위에 우울증약이 한다발로 놓여 있었다는 점으로 비추어 사건은 자살로 종결됐다. 영분은 형사에게 방 어디서 죽었냐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유서는 없었고 심리를 유추할 만한 일기장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영분은 취조 대상으로 꼽히지 않았다. 형사들 눈에는 그저 불쌍한 집주인일 뿐이겠지, 영분이 읊조렸다.
유족은 영분의 바람대로 짐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그렇다고 주민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응급차가 입춘대길 앞에 잠시 서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이 201호의 창문을 뜯는 걸 목격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있다는 이유로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다만 빌라에서 사람이 죽었는지, 세입자가 스스로 생을 끊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으므로 영분은 중개인의 입을 통해 소문을 퍼트렸다. 권위적인 부모가 딸이 전화를 받지 않아 걱정되어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고, 알고 보니 학생은 남자친구와 치앙마이로 비밀 여행을 떠났다고. 다행히 시신을 꺼내 응급차에 옮겨 담는 장면을 목격한 이는 없었다. 영분은 만일 경찰이 늦은 오후 한 시,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일터로 돌아가는 시간에 방문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영분은 지난밤 만든 오징어볶음을 프라이팬에 데운다. 뒤에서 형우가 깊게 하품을 하며 냉장고를 연다. 포카리스웨트를 든 형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식탁 앞에 앉아 크게 외친다.
“오늘 알아보니까 자살하면 최소 오 년은 공실이라던데.”
선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냐는 듯 노발대발하는 영분에게 형우는 의아하게 묻는다.
“선아한테 얘기 안 했어?”
“그럼, 저 어린애한테 뭐라고 해?” “못 할 게 뭐 있어?”
“입시 준비하는 애한테 너 가르치던 언니가 스스로 죽었어. 그러니까 오늘부터 다른 과외로 구할까? 그렇게 얘기한다고?”
형우는 손톱으로 캔을 긁다 갈증을 채운다. 조금 전 형우가 한 말을 만약이라도 선아가 들었을까 영분은 눈앞이 흐려진다.
보증금을 유족에게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에 대한 얘기는 끝낸지 오래, 조금 전에는 근처 화장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유빈의 발인 소식을 접했다. 친하지는 않아도 잠시 알고 지낸 사이로서 부조금을 얼마 주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인데 형우의 말을 듣고 부조금이 뭐야, 앞으로 우리가 겪을 피해를 청구하지 않는 것만으로 된 거 아닐까, 영분은 속으로 생각했다. 소문의 방향을 자살과는 관계없는 먼 쪽으로 틀었으나, 계약서처럼 마무리되었다는 표시는 영영 구할 수 없으니 멈칫하는 순간 걱정과 불안이 영분의 머릿속을 장악하는 일은 금방이다. 영분은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 일이 남았다.
선아는 소파에 누워 영상을 보는 중이었다. 영분은 슬쩍 선아의 발아래 걸터 앉는다.
“왜?”
영분은 태도를 꼬집지 않고 담담히 유빈의 소식을 전한다. 이유 없이 달랑 해외에 간다는 문자 한 통을 받았고, 글쎄 그 문자를 보자마자 기분이 팍 상해 메시지를 삭제해버렸다고, 네가 직접 해보면 알겠지만 유빈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없는 번호라 뜬다고. 영분은 마지막으로 큰일이라 점검해둔 선아에게 말할 명분을 해결하기 위해 웅변 학원에 다닌 기억을 되짚어 큰 몸짓으로 이야기를 부풀린다. 거짓이 살을 얹어 심지어는 영분 스스로 믿을 지경까지 다다를수록 죄책감과 찝찝함은 비대해졌다.
청소 업체를 구하는 건 쉬웠다. 영분은 알음알음 지인의 지인을 찾던 관례를 벗어나 오직 신속하고 꼼꼼하게 치워줄 청소 업체를 골랐다. 청소가 마무리되었다는 사진을 받자마자 영분은 곧장 부동산에 전화해 매물을 알린다. 중개인은 전화를 받자마자 “어디서 들었는데, 혹시 거기 자살이라도 난 건 아니죠?”라 능청스럽게 웃는다. 영분은 “재수 없게 무슨 그런 소리를, 한 번만 비슷한 소리를 할 거면 나랑 거래할 생각 하지 마세요.”라 으름장을 놓는다. 통화를 끊고 숨을 몰아쉬던 영분은 문득 후련하게 집을 팔고 돌아서던 전 집주인의 마지막 말을 어렴풋이 기억해낸다.
“참 별별 일이 생길 거예요.”
영분은 베란다로 나가 집 앞에 다닥다닥 자리잡은 빌라를 둘러본다. KK 원룸, 튤립 빌리지, 스톤 빌라……. 저 안에는 몇 명이 죽었고 몇 명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지 세어본다. 젊은 애들이 신축, 신축하고 노래 부르는 이유는 전에 살던 이가 어떤 이상한 일을 벌였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악몽을 꾸었다. 죽은 유빈이 찾아와 “죄송해요, 죄송해요”하고 우는 꿈이었다. 그러면 영분도 “내가 미안해, 미안해” 하며 유빈을 끌어안는다. 꿈 속에서의 시간은 하루가 흘렀는지 30초가 흘렀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의례적인 답 없이 서로에게 끝없는 용서를 구한다.
방은 빠르게 나갔다. 새로 들어올 입주자는 공시를 준비하는 남학생이라고 했다. 유빈이 회계사가 되어 나갔다는 거짓말을 믿고 덜컥 예약금을 건 모양이었다. 이로서 유빈은 남자 친구와 해외여행을 떠난 것도 모자라 회계사로 탈바꿈했다.
일처리는 확실히 하는 영분이 청소 업체의 결과물을 확인하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신 영분은 남은 시간에 직원들이 남긴 변사 청소 에세이를 모조리 읽었다. 유빈은 손목을 그었을까, 약을 먹었을까, 목을 맸나. 자세한 얘기를 묻는다면 형사에게 간신히 들을 수는 있겠지만 형사가 순순히 말할지도 의문이었다. 들어봤자 얕은 궁금증만 해소되지, 그에 맞는 시나리오가 자동으로 재생될 테니 알아도 골치 아플 것이다. 영분은 스마트폰을 열어 메시지함에 들어간다. 마지막 문자는 영분이 보낸 메시지였다. ‘저희도 너무 놀라서요’의 이후의 말은 통화로 이루어졌기에 영분은 묘한 미안함을 느끼며 문자를 지운다. 감히 유족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았어야 했나. 영분은 유족과의 통화를 곱씹었다. 무섭도록 차분하던 그의 목소리에서 얼핏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갭투자로 빌라를 마련하기 전, 영분의 직업은 초등학교 수학 교사였다. 말이 수학 교사지, 정확히는 남는 방 하나에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하교한 초등학생 몇 명을 가르치는 그룹 과외를 꾸리는 일이었다. 낡은 집구석에 놓인 새하얗고 판판한 테이블, 영분은 그곳에서 들은 열 살 유라의 물음을 떠올린다. 3년 전임에도 생생히 기억나는 질문이다.
“선생님, 장례식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해요?”
어떤 분의 장례식이니, 영분은 그렇게 되물으려다 그게 무슨 소용이냐며 드라마에서 본 장면을 복기한다.
“우선 검정색 옷을 입어야겠지……. 양말도 검정색이어야 하고…… 또……. 그러게, 선생님이 장례식을 잘 안가봐서 모르겠네.”
토끼 눈을 한 유라가 재차 되묻는다.
“한 번도요?”
영분은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유라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한다.
“어, 선생님은 당연히 많이 다녀오신 줄 알았어요.”
영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쪽지 시험지를 채점한다.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며 다시 과거로부터의 기억을 찬찬히 살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례에서는 어떤 예절을 담아 행동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오 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음에도.
장례는 따로 치르지 않았다. 엄마인 순옥은 남편이 가자마자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망 절차를 따랐다. 상속할 만한 금액의 재산도 없었거니와 부고 소식을 알릴 친구도 없었다. 설령 고향 친구가 알게 되더라도 조문은 화장터에 안치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순옥과 영분은 굳게 믿었다. 사망신고서에 쓰인 아빠의 최종 사인은 목맴사였다. 자살 유족이 고인의 장례식을 치르기 기피한다는 사실은 아빠의 묘비석에 영분의 이름을 새기기로 한 날 알았다. “꼭 내 이름을 같이 적어야 해?” 영분이 마음에 안 든다는 투를 내비쳐도 순옥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순옥이 묘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죽은 사람 비석에 산 사람의 이름이 새겨지면 산 자는 죽은 자의 덕을 받는다.”
기껏 받은 복이 이런 복이야, 영분이 분에 차 한국의 자살률을 검색했다. OECD 국가 중 1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최 몇 명이 자살하면 평범한 나의 주변 이들마저 이렇게 죽어나가는지에 대해서 알 길이 없었다. 기자는 한국의 자살률이 10만 명 당 26.9명이라고 했다. 상상 못할 숫자였다. 10만 명 중 26.9명이라면 오히려 적은 것 같기도 했다. 조금 더 찾아본 결과 ‘하루에 스물 여덟 명이 죽습니다’는 해설을 보자마자 그제야 현실이 와닿았다. 영분은 어제만 해도 숨이 붙어 있을 스물 여덟을 실감했다. 지금의 수는 아버지가 포함된 통계치고, 내년이 오면 유빈이 포함된 새로운 통계치가 나올 테다. 영분은 문득 이 방법으로 하루에 스물 여덟의 이들이 성공해낸다면, 돈을 벌거나 무료함을 잊기 위해 억지로 취미를 쌓는 하루를 견딜 필요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도 유빈도 유언 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골랐다. 다음 기사로는 감염병으로 우울을 겪는 청년들의 소식이 이어 나왔다. 기자는 어린이들마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자살을 생각한 청소년 다섯 중 하나는 실제 자살 시도를 했다고 덧붙였다. 영분의 숨이 가빠졌다.
선반에서 락스를 꺼냈다. 유빈은 수업에 들어가기 전마다 꼬박꼬박 손을 씻고 소변을 보는 사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선아의 방부터 소독하고 싶었지만, 이번 주는 학교에 가지 않는 주였다. 감염병이 퍼지고 선아의 학교는 격주마다 대면과 원격 수업으로 일정을 짰다. 영분은 변기와 세면대에 락스를 붓고 솔로 구석구석을 닦았다. 순옥도 집을 청소했을까.
순옥은 바나나 하나와 호두 두 알을 먹으며 하루를 버텼다. 영분에게 순옥은 독한 사람이었으나 사람들에게 순옥은 처량한 사람이었다. 사실 영분과 순옥은 그리 슬프지 않았다. 아버지는 집을 비웠고 화를 자주 냈으며 가정에 소홀한 가장이었다. 죽은 그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쩌면 영분과 순옥은 잠시 주저했을 것이다. 그래도 순옥은 매일같이 점심을 걸렀고, 딱 한 입만 먹으라는 영분의 요구에도 단호히 뿌리쳤다.
“굶어야 못된 년으로 안 보일 거 아니니, 살이 찌면 분명 뒤에서 손가락질받는다.”
영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편을 보낸 아내와 아빠를 보낸 딸의 마음이 완벽히 같지는 않을 테니 더 말리지 않았다. 형우도 그때만큼은 순옥을 불쌍히 여겼다. 그러니 유빈의 잔해를 치우는 유빈의 친오빠도 순옥과 비슷한 심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혹한 사건에서 이성을 잃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 냉혹할 정도로 이성을 붙잡는 사람. 당시 영분은 순옥을 억지로 자조 모임에 데리고 가려 했으나 선옥은 내 부족함을 말하는 꼴밖에 더 되겠냐며 거절했다. 자조 모임에 참여하는 유족은 극히 드물었다. 결국 영분은 홀로 자살 유족 치료비 지원 사업에 지원했다. 치료비를 받기 위해서는 고인이 왜 죽었다고 생각하는지, 죽기 전 어떤 이상 행동을 보였는지 답해야 하는 심리 부검을 필수로 받아야 했다. 향후 이뤄질 누군가의 자살을 막기 위한 예방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영분은 두 시간만 대화하면 백만 원을 받는 일이라 다잡으며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심리 부검을 마쳤다.

영분의 아버지는 집 밖에서 죽었으므로 물건을 보지 않는 이상 트라우마를 유발할 만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유빈의 경우는 달랐다. 자신이 손수 꾸민 빌라 안에서 죽었다. 영분은 고민 끝에 정기적으로 빌라를 청소하는 방문 업체를 구했다. 도무지 홀로 계단을 닦을 힘이 없었다. 대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간 유빈의 발걸음,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 영영 제 힘으로 나오지 못한 유빈의 모습이 상상되어 견딜 수 없었다. 영분은 이제야 간신히 불안 장애에서 헤어나오는 중이었다. 영분이 정신과를 찾았다. 이번에는 사비를 내야 했다.
“어제는 이런 말을 들었어요.”
유빈과의 일을 털어놓자마자 정신과 선생님이 입을 뗐다.
“이십 대 여자들이 죽어 나가니까, 자기가 그 퍼센티지를 높이는 데 일조하겠다고요. 그래서 뭐라고 했게요?”
“뭐라 그러셨는데요?”
“죽어봤자 잘 오르지 않아. 아득바득 살아서 여기 존재한다 보여주는 게 이기는 거야.”
영분은 본 적 없는 그 여자아이가 오래 잘 살아주기를 빌었다.

폭우가 내렸다. 서울에 이토록 비가 많이 내린 건 영분의 기억에도 없었다. 입춘대길은 지어진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빌라였지만 침수 피해를 피해갈 수 없었다. 빗물이 계단을 타고 무자비하게 흘러 반지하에 머무는 세입자들에게는 가전을 새로 바꿔주어야 했고, 옥상으로부터 떨어진 물줄기는 복도마다 달린 형광등에 들어가 전기가 끊겼다. 세입자들은 어두운 복도에서 난간을 더듬으며 간신히 계단을 오르내렸다. 영분의 휴대폰으로 빗발치는 문의가 왔다. 영분은 비가 그쳐야 사람을 부를 수 있어요, 라 타일렀다. 오지 않았으면 하던 201호의 세입자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다른 이들처럼 곰팡이를 알리거나 젖은 물건을 찍는 대신 문자 한 통을 남겼다.
「장마가 끝나면 와주실 수 있나요?」
영분이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냐 묻자 그는 “집에 일이 생겨서요.”라 간결히 답했다. 영분은 우선 알겠다고 뭉뚱그린 뒤 마무리지었다. 삼일이면 그칠 줄 알았던 비는 예정보다 이틀을 더 쏟아냈다.
영분이 심리 부검을 받았던 때도 비가 왔다. 상담실에는 연륜 있어 보이는 단발머리의 여자와 젊은 숏컷 머리의 여자가 도착해 영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숏컷 여자는 “오시느라 힘드시지 않으셨나요?”와 같은 의례적인 안부를 묻고 바로 질문지를 꺼냈다.
“평소 아버님이 회피 성향을 자주 보였나요?”
영분이 주저했다.
“아니요.”
“위험하거나 건강에 해가 되는 행동, 자살 의도를 보이는 행동과 관련된 습관이 있었을까요?”
아니었다.
“그러면…… 평소에 죽음과 관련된 말을 자주 하셨나요?”
“장난도 안 치셨어요.”
여자 둘이 눈을 내리고 가느다랗게 신음을 냈다. 영분은 무언가를 계속 덧붙여야 하는 충동을 느꼈다. 연배 있어 보이는 여자가 눈을 접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혹시, 치명적인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가 있었나요?”
타살 흔적은 찾으려해도 없었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형사는 시신의 겨드랑이와 발뒤꿈치까지 온갖 부위를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수법과 근처에 흩뿌려진 물건을 보건대 자살이 확실하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영분은 기시감을 느꼈다. 스스로 생을 끊는 이들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신호를 보낸다던데, 그 구조를 무던히 넘기지 않았나요?
영분은 순옥이 일상에서 마주쳤을 다양한 사례를 헤아렸다. 옷을 벗어 선명히 드러난 순옥의 날개뼈가 아른거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갠 하늘에 영분의 주름이 깊어졌다. 날이 풀렸으니 도망칠 구석 없이 빌라 전체를 손봐야 했다. 세입자들이 찍어보낸 사진으로 유추하건대 벽지는 뜨지 않은 곳이 없었고, 바닥에는 곰팡이로 그득할 게 분명하다. 영분은 입춘대길의 대문을 열 자신조차 없었다. 도어락을 누르는 유빈의 손길에 자신의 지문이 닿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와중에 201호는 여전히 현장 사진도 찍어 보내지 않고 문자 한 통을 남겼다.
「시간은 언제가 편하세요? 오늘 방문 가능하신가요?」
형운은 최근 끊이지 않는 야근에 수면 장애까지 겹쳐 정신이 없었으므로 결국 영분이 입춘대길로 향했다. 습도가 높아 등이 젖어왔다. 입춘대길로 향하는 내내 영분은 형우를 생각했다. 정확히는 형우가 오 년 전에 겪은 트라우마를 되새겼다. 그맘때 형우는 친구의 빈소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한편으로 사람이 죽으면 어떤 몰골로 마무리 되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러니 영분의 아빠가 최초로 발견되었을 때 찍은 현장 사진을 보겠느냐는 형사의 물음에 충동적으로 응한 건 모두 시기에서 비롯된 일이었으리라. 알맞은 시기. 사람에게 저마다 그런 시기가 있다면 형우에게는 형사의 제안을 받은 때가 호기심을 해소하기 알맞은 시기였다. 형우는 물에 뜬 시체의 잔혹함을 미리 예상했지만, 실제 상황은 그보다 훨씬 잔인한 것이었고 그러므로 사진을 보자마자 먹은 것을 전부 토해냈다. 이후 지금까지 물 근처에는 가지도 않는 형우를 번번이 억지로 바다에 데리러 가려던 영분은 이번에 입춘대길을 방문하지 않으면 영영 원룸에 대한 공포증을 물리치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충격 요법이라 했던가. 지금의 자신에게는 트라우마를 마주할 힘이 필요했다. 영분은 자신이 원룸을 꾸리며 정작 원룸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게을러지는 사람의 본성 탓에 기억을 고쳐내려는 의지 또한 흩어질 게 분명하다고 느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을 미리 맞닥뜨린다 여기자, 영분이 현관에 다다랐다.
하나, 둘.
영분이 속으로 느리게 숫자를 셌다. 자동문이 열리자 복도 창문에 올려둔 인형과 꽃이 보였다. 곧장 올라간 영분이 습한 계단을 올라 201호의 쇠문을 두드렸다. 청년은 인기척 없이 벌컥 문을 열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영분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빨리 오셨네요.”
활짝 열린 방에서 라벤더 향기가 풍겼다. 영분은 마스크 사이로 숨을 몰아쉬며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 구석에 만개한 곰팡이도, 울룩불룩 튀어나온 천장도 한차례 다른 방에서 보았던 풍경이었다.
영분이 다른 쪽 발로 샌들을 벗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와서 꼭 봐야 한다는 게 어떤 거예요?”
청년이 옷장을 가리켰다.
“저기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서요.”
청년이 옷장으로 다가가 문을 빠르게 여닫았다. 영분은 가만히 서서 청년의 손길에 맞춰 열고 닫히는 옷장을 지켜봤다. 어제와는 다른 세계가 도래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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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물이었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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