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5(목)역사단편126. 광복79주년에 讀史新論[독사신론](8)

in Avle 종교 철학 인문학2 months ago (edited)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다.
< 출처: 讀史新論[독사신론]>

기생들과 놀아나며 민족의 혼을 없애느라
소설같은 역사책을 찍어내다가
날벼락같은 천황의 항복선언을 들었던
매국노 역사학자들의 후예들이 설쳐대는 세상

남산신궁.JPG
<남산에 있었던 일본신궁>

누가 뭐래도
나혼자 잘먹고 잘살면 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다.
누가 그것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다만,
대부분의 매국노들이 그랬던것처럼
마치 민족의 역사와 미래를 걱정하는 것처럼
허튼소리를 하는 자들이 떠받들어지는
거짓된 세상이 되지 않기만 빈다.

선생의 글을 읽어본다.

살펴보건대,
단군이 팽오에게 명하여
국내의 산천에 제사를 지냈다 하는것이
옛 역사에 서로 전하고 있는데도
근대의 역사가들이 말하기를,
팽오는 한나라 무제(武帝)의 신하로 조선에 온 자이니
어찌 단군시대에 이 사람이 있겠는가하여
한 붓으로 ‘팽오’ 두 자를 없애버렸으니,
아아, 그 오활(迂闊)하고 고루함이 어찌 이에 이르렀는가.
<출처: 독사신론>

오활(迂闊): 세상물정을 모르다, 주의가 부족하다

만일 한 무제의 신하 팽오 때문에
단군의 신하 팽오가 없다고 할진대,
한(漢)나라 조양(趙襄)의 아들 무휼(無恤) 로 말미암아
고구려의 태자 무휼(無恤)을 없다고 하는 것이 옳겠는가.
한 시대, 한 지방에 성명(姓名)이 서로 같은 사람도 있거든
하물며 수천리가 떨어져있고
수천년의 간격이 있는 시대에
전후(前後) 같은 성명을 가진 두 사람이 존재 할 수 있음을
어찌 의심하겠는가.
단군 후예에 두 명의 부루(夫累) 가있다는 데에는
역사를 읽는 자들이 다른 애기가 없으면서도
어찌 오직 팽오만을 의심하는가.
또 어떤 사람은 고대에 선인왕검(仙人王儉)이 있기 때문에
단군의 이름인 왕검(王儉)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것은 모두 일소(一笑)에 붙일 바이다.
<출처: 독사신론>

일소(一笑)에 붙이다: 웃음거리로 여기고 무시하다.
'단군의 이름'이라고 할때,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왕검(王儉) 은 '임금'의 한문 번역이다.

2편1장 단군시대는 여기에서 마무리된다.

독사신론목차.JPG

제2장 부여왕조와 箕子[ 기자]

심하구나, 우리나라 역사가들의 무식함이여,
우리나라 문헌이 결딴난 것이 비록 심하기는 하지만,
단군의 적통으로 이어지는 종족은
부여왕조(夫餘王朝) 가 명백하다.
설혹 당시 우리나라에 열 나라가 있다고 하더라도
중심 종족은 부여이며,
백 나라가 있다 하더라도 중심 종족은 부여이며,
천 나라, 억 나라가 있다 하더라도
역시 중심 종족은 부여다.
부여는 당당하게 단군의 정통을 물려받는 것이거늘,
부여에 대해서는 한 자 한 구절도 언급 하지 않고
기자(箕子)만 칭찬하니,
아아, 그 무식함이 어찌 이에 이르렀는가.
<출처: 독사신론>

우리 민족의 계통이 단군조선에서 시작되었다면
그것을 이어받은 '부여'를 상고사에 기록하고
연혁을 탐구해야 하는데,
김부식이래 '유교'에 혼을 뺏긴 자들이
자기 조상을 외면하고
남을 그자리에 앉혀놓았다는 지적이다.

무슨 사상이건 들어오기만 하면
그 사상의 유용성을 따져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맹신해서 혼까지 뺏겨버리는
고려, 조선의 지식인들의 행태를 비판한다.

상고사를 보면 '箕子[ 기자]조선'이라는 용어가 있다.
거짓말이다.
기자는 왕이 된적이 없고
그 후손이 왕이 되었던 것인데
그걸 어찌 '기자조선'이라고 부르며
직계조상인 부여는 내다버렸는가.

선생의 글을 계속 읽어본다.

곧 소위 민족주의(民族主義)는 논하지 않고
저들 옛 선비들의
<춘추(春秋) ,자치통감강목( 資治通鑑綱目)의 의리>를 가지고
말한다 할지라도,
부여왕조는
동쪽으로 난을 피하여 옮긴 주(周)나라나,
남쪽으로 도강( 渡江) 한 진(晉)나라가 되겠거늘,
옛 왕의 왕족이 되는 희씨(姬氏), 사마씨(司馬氏) 의 자손을 버리고,
위씨(魏氏), 한씨(韓氏), 척발씨(拓跋氏), 모용씨(慕容氏)에게
정통을 부여함이 옳겠는가?
<출처: 독사신론>

춘추 ,자치통감강목의 의리: 역사서에서 정통성을 따질때
힘의 강약이나 결말에 관계없이, 공자가 인정한
정통성을 가진 왕조만 인정하는 것

희씨(姬氏): 주나라 왕의 성
사마씨(司馬氏): 사마중달의 후손인 서진(西晉) 왕의 성
위씨(魏氏): 춘추시대, 진(晉)의 신하로 나라를 조각내서
위(魏)나라를 만들었다.
척발씨(拓跋氏): 선비족, 북위를 건국. 서진을 몰아냈다.
한씨(韓氏):춘추시대, 진(晉)의 신하로 나라를 조각내서
한(韓)나라를 만들었다.
모용씨(慕容氏): 선비족, 북연을 세웠다.

부여왕조는 침략을 당해 멸망했지만
탐탁치않은 유교식 정통성에서 볼때도 정통인데
김부식이래 유학자들은
말로는 유교를 표방하면서,
자기나라를 잊고,
중국인이 세운 나라를 우선했다는 점에서
얼마나 가소로운지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계속 읽어본다.

저들이 반드시 말하기를
"기자는 성인이므로
칠웅(七雄)과 오호(五胡)에 배교할 수 없다"고 주장하나,
나는 또한 한마디로 반대로 묻겠다.

"걸(桀)이 죽지 않으면,
성탕(成湯)이 비록 성인( 聖人) 이라 하나
하(夏)나라의 정통을 대신하지 못할 것이며,
주(紂)가 망하지 않았으면
무왕(武王)이 비록 어질다고 하나
은(殷)나라의 정통을 대신 하지 못할 것이니,
걸(桀)·주(紂)에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덕을 잃은 적이 없는 부여왕조의 정통을
어찌 기자로 갑자기 대신하겠는가?"
<출처: 독사신론>

배교(背敎): 믿음을 배신함
칠웅(七雄): 전국 시대에 할거하던 일곱 강국.
진(秦), 초(楚), 연(燕), 제(齊), 조(趙), 위(魏), 한(韓)
오호(五胡): 중국의 동한(東漢)에서 남북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본토에 이주한 다섯 민족:
흉노(匈奴), 갈(羯), 선비(鮮卑), 저(氐), 강(羌)

걸(桀): 하나라의 마지막왕, 성탕이 타도했다.
주(紂): 은(殷)의 마지막 임금
무왕(武王): 은나라의 마지막왕, 주나라 무왕이 타도했다.
<네이버사전>

이땅의 유학자들은 공자를 떠받들다보니
자신들의 뿌리를 망각해서
조상인 부여를 외면하고
중국에서온 기자의 후손이 세운 나라가 정통이라는
착란을 일으켰음을 지적하고 있다.
전형적인 매국노의 사고체계를 보여준다.
유학자들은 잠재적으로
중국에 나라를 넘기려는 매국노의 프레임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고가 조선말에는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최근에는 서양에 팔아먹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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