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4(수)역사단편125. 역사는 드라마인가? 讀史新論[독사신론](7)

신채호 선생같은 분은 이렇게 말했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다.
< 출처: 讀史新論[독사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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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 계속 읽어본다.

살펴보건대,
우리나라 역사가들이 단군이 처음 일어난 지역을
영변( 寧邊) 묘향산( 妙香山) 이라 하며,
국호를 정하고 정치를 베푼 곳을
평양 왕검성( 王儉城) 이라 하나
이것은 후대의 역사가들이
단지 고기(古記)에서 말하는
"신인( 神人)이 태백산(太白山)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왔다"라는
한 구절에 근거하여서,
태백산을 서북 일대에서 널리 구하다가,
묘향산에 이르러 향(香), 단(檀) 나무가 울창함을 보고서
이것을 태백산으로 억지로 단정하고
장백산의 옛 이름이 태백산인 줄을 몰랐다.
<출처: 독사신론>

우리역사의 강역을 압록강이남으로 확정하고
상고사를 이해하려 했던 고려와 조선의 학자들이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조선의 역사학자들은
압록강을 본적도 없이 이름만 들먹인 것이다.

계속 읽어본다.

이제 내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추측하여 단정 컨대,
대개 단군이 졸본부여(卒本扶餘)에 도읍을 세워
자손들의 개인 영지를 만들고,
압록강 동쪽의 여러 나라는 단지 은혜와 덕으로써 회유하며
무력으로 위협하여 강제로 복속시켰을 뿐이요,
평양성(平壤城)· 삼랑성( 三郞城) 등의 건축은
반드시 강하고 사나운 오랑캐들 중에서
항복하지 않는것을 원정(遠征)하다가
당시 임금이 잠시 머물렀던 지역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과 궁궐일 것이다.(자세한 것은 제2장에 보인다 ― 原註[ 원주])
<출처: 독사신론>

역사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이전에
단재의 해석을 접하고 있다.

또 살펴보건대,
강동현(江東縣) 대박산(大朴山)에 단군릉(檀君陵)이 있다하니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순(舜)임금이 묘족(苗族)을 정벌하다가
창오(蒼梧)에서 죽었으며,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토벌하다가 중도에서 죽었다.
옛날 처음 나타난 성인(聖人)들은
각 종족들을 정복하여
자기 집안의 자손 만세(子孫萬歲) 의 기초를 닦고자 하는 자는
하루라도 편안히 있으려 하면
그 공덕이 모두 땅에 떨어져버리니,
생각하건대 강동에 있는 단군릉은
원정하던 수레가 이곳에 이르러 죽었기 때문에
여기에 장사지냈는가 한다.
<출처: 독사신론>

대박산(大朴山):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에 있는 산
단군묘가 발견되었다면서 정권홍보에 사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단군이 단지 말없이 남쪽으로만 향하여 팔짱을 끼고
아무 것도하지 않은 채 편안히 앉아서
저 숙신족(肅愼族)· 조선족(朝鮮族)· 예맥족(濊貊族)·
삼한족( 三韓族) 들만을 다스린 줄로 믿고 있으니
어찌 그렇겠는가.
종교가가 한 교문(敎門)을 창립하려 해도
무수한 마귀들의 유혹을 당하며,
철학자가 하나의 학설의 깃발을 굳게 세우려 하여도
수많은 장애를 거치는데,
하물며 한 국가를 창립하여
한 민족을 편안히 거주시키려 하는 성인이
어찌 가만히 앉아서 문득 나라를 얻을 수 있겠는가.
사막의 방황(彷徨) 과 탁록(涿鹿)의 살벌(殺伐)이
어찌 모세와 황제(黃帝)에게만 있었던 것 이겠는가.
<출처: 독사신론>

교문(敎門): 종교의 교리부문
탁록(涿鹿): 황제와 치우가 싸웠다는 들판
살벌(殺伐): 전투, 무시무시함

단군이 정복한 성스런 자취들이 있을 것인데
어느 지역부터 시작 하였겠는가.
그 토대를 연곳이 꼭 졸본부여인데
그 최초는 심양(瀋陽:지금 길림성 ― 原註[원주])이고,
다음이 요동(지금의 봉천성 ― 原註[원주]),
그 다음이 조선본부(朝鮮本部)다.
무공(武功)을 이미 떨치고 문덕(文德)이 이미 흡족하매,
이에 사방의 오랑캐들이 발꿈치를 이어 항복하여 오며,
멀리 있는 다른 나라들이 명망을 우러러 귀화(歸化)하였다.
비록 그렇다고 하나,
어찌 단군 제1세뿐이겠는가.
<출처: 독사신론>

단재는 고조선의 강역이 동북삼성에 걸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에 그가 접할 수 있었던 역사책으로는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없었다.
계속 읽어본다.

곧 그 자손들이 단군의 뜻을 이르며,
그 일들을 물려받아,
그 할아버지와 매우 닮은 자가 대대로 이어받은 까닭에
우리 부여족이
이, 삼천리 낙토(樂土) 를 지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무수한 종족 및 나라들과 싸우고 다투어
어찌 생존경쟁에 이길 수 있었겠는가.
<출처: 독사신론>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은
"檀君生我靑邱衆[단군생아청구중)
단군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낳았으며,
敎我彛倫浿水邊(교아이륜패수변)
패수가에서 우리들에게 인간의 떳떳한 도리를 가르치셨다 "라는
시를 지었으니, 아득하고 멀도다.
성인(聖人)의 덕이여,
태자 부루(夫累)가 그 덕을 받들고,
어진신하 팽오(彭吳)가 그 치적( 治績)을 더욱 힘써서
인민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배와 수레를 만들어 교통을 발달 시켰다.
<출처: 독사신론>

남효온(南孝溫): 단종복위를 꿈꾼 생육신 6인 가운데 한 사람

팽오(彭吳)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다음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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