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24(수)역사단편107淵蓋蘇文[연개소문]의 死年[사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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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신채호 선생의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글을 읽어본다.

현대어에 친숙한 문구는 그대로 두고
한문이 많이 포함된 구절만 현대어로 옮긴다.

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위키등>참조

연남생묘비800.jpg
<연남생묘지석>
당나라 최고관리의 대우를 받은 연남생의 묘지석에 새겨진 문양

여하간 연개소문의 죽음은
고구려의 멸망에 지대한 관계를 가진 사실로서,
사책(史册)의 기록이 이같이 모호하여
독사자의 의문이 되는 동시에,
나의
“백제 멸망 이전에 연개소문이 이사(已死)하였다” 함은
1개의 가정이니,
가정을 곧 실록으로 기술함은 사가의 불허할 바이다.
그래서 작년 추간에
“중화민국 하남성 낙양에서 일인 모가
천남생(泉南生)의 묘지(墓誌)를 발견하였다”는 기사가
모 신문에 게재되었으므로
연개소문의 사년을 참고하기 위하여 그 초본(抄本)을 구득하였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초본(抄本):원본의 일부를 베끼거나 발췌한 문서.

(옮기면)
여하간 연개소문의 죽음은
고구려의 멸망에 지대한 관계를 가진 사실로서,
사책(史册)의 기록이 이같이 모호하여
독자들이 의문을 갖게되는 동시에,
나의 “백제 멸망 이전에 연개소문이 이미 죽었다” 함은
1개의 가정이니,
가정을 곧 실제기록으로 기술하는것을
역사가들이 허락하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작년 가을에
“중화민국 하남성 낙양에서 어떤 일본인이
천남생(泉南生)의 묘지(墓誌)를 발견하였다”는 기사가
어느 신문에 게재되었으므로
연개소문의 사망년도를 참고하기 위하여
그 초본( 일부를 베끼거나 추려서 적은것)을 구하여 얻었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이 초본이라는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된다.
비석을 직접 본것이 아니라
일부를 베낀 문서를 본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읽어본다.

말하자면 연개소문과 남생의 부자를
근세 인물에서 그 짝을 찾자면, 연개소문은
홍경래(洪景來)ㆍ김옥균(金玉均)ㆍ대원군(大院君) 3인의
정신과 수완을 합하여 1인이 됨과 같으며,
남생은 이완용(李完用)ㆍ이용구(李容九)일류의 등물(等物)이니,
남생묘지(男生墓誌)를 구하여 연개소문의 사실을 참조하려 함이
얼마나 가소(可笑)할 모순이냐.
그러나 양인이 불행히 부자의 관계를 가져
사적 재료를 공헌하는 때는 얼마큼 보조가 있을 줄로 안 것이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일류(一流): 학문이나 사상 따위에서 하나의 유파(流派)
등물(等物): 같은 종류의 물건
묘지(墓誌): 묘에 적혀있는 기록
가소(可笑): 터무니없어서 웃음
얼마큼: ‘얼마만큼’의 줄임

(옮기면)
말하자면 연개소문과 남생의 부자를
근세 인물에서 그 짝을 찾자면,
연개소문은 홍경래ㆍ김옥균ㆍ대원군 3인의 정신과
수완을 합하여 1인이 됨과 같으며,
남생은 이완용ㆍ이용구 일파와 같은 종류의 물건이니,
남생묘지 기록을 구해서
연개소문에 대한 사실을 참조하려 함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웃음만 나오는 모순이냐.
그러나 두 사람이 불행하게도 부자관계이니,
역사적 재료로서 이바지하는 부분에서는,
어느정도 도움되는 것이 있을거라고 생각한것이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이어서 읽어본다.

및 그 본문을 열람한
“曾祖子遊[증조자유]ㆍ祖太祚[조태조] 並任莫離支[병임막리지].
父盖金[부개금] 任太大對盧[임태대대로]. 乃祖乃父[내조내부].
良治良弓[양치양궁]. 並執兵鈴[병집병영]. 咸專國柄[함전국병].”
의 6구가 연개소문의 조 자유(子遊)와 부 태조(太祖)가
세대 귀족으로
군국대권(軍國大權)을 가져오던 가문임을 증명하는 이외에
정작 그 정치상의 공적과 전략과 전술의 능부여하(能否如何)는
일자도 제급(提及)함이 없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및: 그리고, 또
제급(提及): 언급하다
乃祖乃父[내조내부]: 할아버지와 아버지

(옮기면)
그리고 묘지기록을 읽어보니,
“증조부 <자유>ㆍ조부인 <태조>는 모두 막리지를 맡았다.
아버지<개금>은 ‘태대대로’ 직책을 맡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나라를 잘다스리고 활을 잘 쐈다.
군대를 지휘하면서 동시에 국정을 맡았다.”
라는 여섯구를 통해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자유’와 아버지 ‘태조’가 세대 귀족으로서
군사와 국정의 권력을 가져오던 가문임을 증명하는것 이외에
정작 그 정치상의 공적과 전략과 전술의 능력여부,
그 능력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한글자도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이다. 계속 읽어본다.

중화 문사의 자존적 벽견(僻見)으로
당에 투항한 국적 남생을 찬미할지언정,
당과 대전한 연개소문의 사실을 직서(直敍)할 리가 없으며,
또 자의 묘지(墓誌)에 그 부의 행동을 조매(嘲罵)할 수도 없은즉,
그 위공위죄(爲功爲罪)를 도무지 제급하지 아니함이 당연한 일이니,
이는 나의 의외라 실망이라 하느니보다 예기한 바라 함이 옳거니와,
다만 한가지 앙앙(怏怏)한 바는
묘지 중에 ‘연개소문의 사년을 뺀 것’이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중화문사: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문필가
직서(直敍): 있는 그대로 서술함
벽견(僻見):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
조매(嘲罵): 비웃고 욕함
위공위죄(爲功爲罪): 공과 죄가되는 일
예기(豫期): 미리 생각함
앙앙(怏怏): 섭섭함

(옮기면)
중화사상을 가진 문필가의 자기중심적 편견으로
당에 투항한 원수나라의 남생을 찬미할지언정,
당과 맞서싸운 연개소문의 사실을 있는그대로 기록할리 없으며,
또 아들의 묘비기록에
그 아버지의 행동을 비웃고 욕할 수도 없은즉,
그 ‘공적과 죄가되는 일들’을 아예 언급하지 아니함이 당연한 일이니,
나에게있어서 의외라 실망이라기보다, 이미 예상했던 것이지만,
다만 한가지 섭섭한 것은
묘비기록 중에 ‘연개소문의 죽은해를 뺀 것’이다.

다음 구절을 본다.

그러나 그 묘지의 본문이
원래 고구려 당시의 실사에 의하여
중화사의 와오를 교정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중화사 가운데 기재한
소위 동이열전(東夷列傳)의 전고를 주워,
4ㆍ6 대구의 문장을 제작하는 동시에
할 수 있는대로 중화사의 기사와 충돌됨을 피한 것이니,
당사(唐史)에 이미 연개소문의 사년을
이적(李勣) 등 평양 침입의 동년으로 기록하였은즉,
본 묘지에 남생의 부(淵蓋蘇文[연개소문] ─ 原註[원주])
사년을 뺀 것도 또한 당연한 일이다.
<출처: 연개소문의 사년>

와오(訛誤):거짓되고 잘못됨
전고(典故): 전례(前例)와 고사(故事).
이적(李勣): 본명은 이세적. 태종 이세민과 이름이 겹치므로 ‘세’를 빼고
이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옮기면)
"그러나 그 묘지의 본문이
원래 고구려 당시의 실제역사에 의하여
중화사상에 입각한 역사책의
거짓되고 잘못된 점을 교정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중화사 가운데 기재한
소위 동이열전의 이전사례와 옛 이야기를 주워,
4ㆍ6 대구의 문장을 제작하는 동시에
할 수 있는대로 중화역사책의 기사와 충돌됨을 피한 것이니,
당사(唐史)에 이미 연개소문의 사년을
이적(李勣) 등이 평양을 침입한 같은해로 기록하였은즉,
본 묘지에 남생의 부(연개소문─ 원주)가 죽은해를 뺀 것도
또한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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