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입니다.
허망했다. 숫자 0.1과 0.01의 차이를 붙들고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왜 이 결론을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렸을까. 거대한 악당이 꾸민 음모 탓에 아이들이 희생됐다고 생각해야 마음의 도피처가 생겨서는 아닐까.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평범한 얼굴을 한 공범들이 조금씩 잘못을 쌓아 올리다 한순간에 무너져 발생한 사건이었다. 장훈은 이후 배가 왜 침몰했는지 더 묻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를 누가 출항하도록 허락했는지, 세월호에 하루밖에 타지 않은 선원 전영준은 죗값을 치렀는데 해경청장 김석균은 왜 무죄를 받았는지 같은 질문이다.
"배가 기울고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101분이 있었어요. 그때 구조했다면 참사가 아니라 사고에 그쳤겠죠. 정부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구조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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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이 기자에게 물었다. 유족들이 가장 원하는 게 뭔지 아냐고. 글쎄,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일까. 말을 고르는 사이 답이 돌아왔다.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거예요."
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뭘 해도 그런 일은 생길 수 없죠. 그런데도 돈도 안 되는 연구소를 왜 하냐. 나 같은 불행한 유족이 다시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에요. 10년 전 떠난 준형이도 그걸 바랄 겁니다."
매일 매순간 곳곳에 흩뿌려진 사회적 재난의 형태로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안전을 위한 규제 강화는 매번 큰 저항에 부딪힌다. 친자본·친기업의 입장에 선 주류 세력은 규제는 비용보다 편익이 클 때만 도입해야 한다면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규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노동자의 목숨값을 후려쳐 생명 보호의 편익을 최소화시키기에 가능한 논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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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반대할지 모른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나의 이해관계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부여한다면, 과연 또 다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나보다 낮은 생명가격표가 붙은 이들에게도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게 곧 나의 안전을 담보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인식과 담론이 주류화될 수 있도록 각자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것. 추모의 정치를 실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