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5 [한국학 에세이] 05 "요한계시록과 탄허스님"
"요한계시록과 탄허스님"
➲ 신천지 교회와 요한계시록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계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받아왔던 신천지 교회를 통해 감염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모두의 이목이 이 신흥교단에 집중되고 있다.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던 이 종교단체에 대한 기사가 연일 쏟아지면서 교주 이만희와 1984년에 창립된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신천지’라는 이름은 <요한계시록> 21장에 등장하는 ‘새 하늘 새 땅’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빠른 시간 내 20만명이 넘는 교세를 확장한 것 역시 <요한계시록> 7장에 등장하는 “이마에 인(印)을 맞은 14만4000명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내용에 입각했음이 알려졌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성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예언서로 예수의 제자인 사도 요한이 에게해의 밧모섬에서 받은 예수의 계시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당부분이 상징과 알레고리로 채워져 있어서 난해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는 계룡산 국사봉에서 하늘의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본인 스스로 예수임을 자처하며 이 종교를 창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통 기독교에서도 이 세계는 언젠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이때 ‘심판’이 있게 될 것인데 이때 예수가 재림하여 구원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기독교 계통의 ‘종말론’과 한국사회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 ‘구원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상에 대해 한 번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이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특정 메시아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존재인가?
➲ 불교와 유교의 말법시대론
기독교에만 말세론(末世論)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불교와 유교에도 말세론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즉 서구 기독교 문명에서만 말세를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 동양의 한자문명권에서도 말법시대를 설파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불교의 전통적인 시대구분에 입각해 보더라도 현재가 말법시대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금강경>에 등장하는 ‘여래멸후 후오백세(如來滅後 後五百世)’라는 말은 여래가 입멸한 뒤 다섯 번의 500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대방등 대집경>에는 이 다섯 번의 500년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말법시대가 논의되고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첫 번째 500년은 해탈(解脫)이 견고한 시대이며, 두 번째 500년은 선정(禪定)이 견고한 시대로 이 1000년간을 정법시대(正法時代)라고 한다. 또 세 번째 500년은 다문(多聞)이 견고한 시대이며, 네 번째 500년은 탑사(塔寺)가 견고한 시대로 이 1000년간을 상법시대(像法時代)라고 한다. 다섯 번째 500년은 투쟁(鬪爭)이 견고한 시대로 이를 말법시대라 하며 불기 2000년이 지난 현 시대는 바로 이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유교의 시대구분론에 입각해 보더라도 현재는 말세가 된다. 역학(易學)의 대가인 중국 북송의 소강절(邵康節)은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서 삼황(三皇)·오제(五帝)·삼왕(三王)·오패(五覇)·이적(夷狄)·금수(禽獸)의 운(運)으로 시대를 구분하여 설명한 바 있다.
삼황은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이며, 오제는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요(堯)·순(舜)이며, 삼왕은 우(禹)·탕(湯)·문무(文武)이며, 오패는 진목공(秦穆公)·진문공(晉文公)·제환공(齊桓公)·초장왕(楚莊王)·송양왕(宋襄王)을 말한다.
그리고 이적운(夷狄運)은 한족(漢族)이 아닌 몽고족이 지배한 원나라와 만주족이 지배한 청나라를 말하는 것이며, 청나라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금수운(禽獸運)의 말법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점점 인간들이 속되고 타락해 왔다는 것인데, 이처럼 ‘말세’라는 말은 기독교만의 용어가 아니라 불교와 유교에서도 공통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심판이 아니라 성숙이요, 종말이 아니라 결실이다”
말세관과 종말론 분야에 있어서 한국불교계에서 가장 뛰어났던 인물은 역시 탄허스님(1913~1983)이다. 그는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를 회통하면서 말세관은 동서고금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말세는 있어도 종말은 없다”고 단언했다.
탄허스님이 그 근거로 제시한 것으로는 불교의 <화엄경>과 <미륵상생경>, <미륵하생경>, <미륵성불경>의 미륵삼부경, 그리고 유교의 역학(易學)과 김일부의 <정역(正易)> 등이다.
석가세존에게서 내세불로 수기를 받은 미륵은 도솔천으로 상생하여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 하생의 때를 기다린다. 그런 다음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하생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하루 만에 성불하여 3회 설법을 통해 96억, 94억, 92억의 중생을 제도하기로 되어 있다.
고작 14만4000명 정도를 구원한다는 <요한계시록>의 스케일과는 천양지차라 하겠다. 게다가 이 사바세계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새로운 미륵불의 정법시대가 바로 이 땅에 다시 열리는 것이다.
<대방등 대집경>에는 미륵이 하생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전에 벌어질 상황으로 대지진과 기상이변, 괴질과 전염병, 큰 혼란과 말세적 현상 등을 설명해 놓았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지구의 종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탄허스님은 서양 선교사들이 번역한 한문성경을 외웠을 정도로 기독교의 교리에도 정통했었다. 그는 신학자들이 성경의 방편설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 곧이곧대로 실상으로 해석하여 예수의 사상과 기독교의 본질을 곡해한 측면이 많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기독교의 종말론에 대해 “심판이 아니라 성숙이요 종말이 아니라 결실”이라고 정면으로 일갈했다. 지구의 수명은 겨우 반에 도달했으며,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일 뿐 지구에 종말은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에 대해서 이처럼 설파한 예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며, 이 역시 한국학의 한 특징으로 향후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 미륵하생과 예수재림
필자는 한국의 기독교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교세를 확장하고 신도수가 확대된 데는 한국인의 무의식적 종교심리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즉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아왔던 불교의 미륵하생신앙이 조선조의 억불로 인해 잠재하고 있다가 기독교의 예수재림에 대한 믿음으로 빅뱅을 맞이했다고 보는 것이다.
불교가 고구려·백제·신라로 처음 수용되었을 당시 우리 민족에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신앙은 우리 국토로 미륵이 하생한다는 미륵신앙과 불연국토설(佛緣國土說)이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쳐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미륵하생과 불국토신앙은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잠시 주춤했다가 서학(西學)의 유입으로 예수재림이라는 변형태를 만나 다시 신앙이 꽃을 피웠던 것이다.
한반도로 미륵이 하생한다는 신앙과 예수가 이 땅으로 재림한다는 믿음은 한민족의 아뢰야식에 깊이 새겨진 중생제도와 구세제민의 동일한 패턴의 종교심리학적 연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기독교를 면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미륵사상사를 함께 깊이 연구해야 할 것으로 본다.
우리 국민은 이제 정견(正見)을 통해서 혹세무민(惑世誣民)과 색은행괴(索隱行怪)의 사설(邪說)과 광신(狂信)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우리 종파의 교리와 우리 교파의 이론만이 진리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류의 독선과 아집은 세상의 가장 어리석은 무명(無明)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기는커녕 평범한 시민들의 최대의 근심거리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할 때이다.
출처 : 불교신문 / 2020.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