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그곳은 열렸다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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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살인적인 물가는 파리보다도 배는 더 비싸다. 파리의 집값이 평균의 3배라면 런던은 8배라니. 런더너들의 민생고가 이만저만이 아닐 듯하다. 그건 여행자도 마찬가지. 교통비마저 그만큼이나 차이가 나니, 믿을 건 발과 다리뿐이다.



매번의 여정마다 지나친 행군으로 무릎이 나가기 일쑤였는데 이번에는 발이 말썽이다. 여행 중에는 발에 익지 않은 새 신발을 신지 않는 것이 상식이므로 신던 신발을 신었다. 가벼운 캐주얼화였는데, 행군용으론 무리였나보다. 결국 신발이 견뎌내지 못하고 피부와 발 근육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내성 발톱이라 발병은 보통 파고드는 고통이 대부분이다. 그건 손톱깎이로 잘 도려내면 하루 이틀 아프고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이번 발병은 처음 경험해 보는 고통이었다. 뭐랄까? 발가락뼈를 후벼파는 것 같다고 할까? 알고 보니 티눈이였다. 생전 처음 나본 티눈. 것도 어떻게 손대기도 어려운 새끼발가락과 그 옆 발가락 사이에 자리하고서는 발을 내디딜 때마다 통증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오른쪽 발이 그러더니 결국 양발 모두. 런던의 강행군은 결국 사단을 내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거 봐라, 내가 신발 사라고 했지.'



파리에서 말이다. 마레 지구를 혼자 쏘다니다 우연히 들어간 신발가게.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가진 거 없는 마법사가 파리에서 쇼핑이라니. 가격표를 보고는 슬며시 내려놓고 나가려는데 주인장 아저씨가 다짜고짜 '어이~ 거기, 기다려봐!' 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마법사를 붙잡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불어 또는 영어로 자기네 신발의 기능에 관해서 설명해대기 시작했다. 뭔 말인지 모르지만, 신발 밑창과 깔창을 마구 구부렸다 폈다 하며 신발의 유연성과 기능을 침을 튀겨가면서까지 강변하는 걸 보니 꽤나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자기네 신발은 존 레넌도 신던 신발이라며. 카탈로그들을 펼쳐서 보여주고, 신발들을 들었다 놨다. 아, 이 아저씨 돈 없는데 곤란하게. 그냥 "하하 메르시 메르시~" 거리며 듣다가 슬슬 뒷걸음질 치며 물러 나오려는데,



"근데 너 어디서 왔니?"



아.. 그러니까 한국에서. 아니 30세기에서.



그랬다. 그때 그 신발을 샀어야 했다. 이런 일은 마법사의 삶에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돈 아끼다 혹 붙이는 일. 돈 아끼지 않고 직관을 따라 지르다가 기적을 경험하는 일. 아 그랬다. 예전엔 휴대폰 바꾸고 일주일도 안 돼서 또 휴대폰을 질렀다가 자동차에 당첨된 적도 있다. 그러나 매번의 그런 소비와 선택은 얼마나 간을 떨리게 만드는지. 그건 마법사도 예외가 아니다.



아저씨의 예언을 거부한 탓에 마법사는 런던 행군 내내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급기야 일정을 마무리할 때쯤엔 발목을 다친 운동선수처럼 절뚝이며 걷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도 하루에 이만 보를 갱신해댔으니 마법이 장난이냐.



런던 이후의 일정은 원래 이러했다. 마법사는 크루즈를 타기 위해 아테네로 가고, 춘자는 '레나' 사업을 위해 라다크로. 그런데 이대로 파리를 지나쳐선 안 된다는 직관이 나타났다. 그건 그곳의 개업 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은 닫혔었다.



우리는 지나 온 파리 일정에서 그 공간이 어떤 이에게, 어떤 일로 쓰이게 되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곳은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관한 춘자의 강력한 직관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방향을 잃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마법사는 춘자에게 제안했다. '잠깐이라도 파리에 들러서 그곳의 여부를 확인합시다.' 물론 마법사는 그 신발을 사기 위해 파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레나 일정을 앞당기고 싶은 춘자는 망설였지만, 마침 그때 릴의 팡파르 대표가 파리 일정이 생겨서 내려오는데 만날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먼저 릴에서 만나 내년에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타이틀은 <랑데뷰 2+3>. 북페어+전시+공연의 형태로, 아마도 이것은 2018년에 개최되었던 [스팀시티] 미니스트릿 5주년의 기념행사가 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릴과 파리에서는 춘자의 콘텐츠들을 퍼블리싱, 소개하고, 런던에서는 뮤지컬 공연을 올리는 것으로 논의했다. 타이틀이 '랑데뷰'인 것은 우리가 우주를 여행하며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랑데뷰 [프랑스어] rendez-vous
: (명사)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이 우주 공간에서 만나는 일.



에너지는 서로 연결될 때 생겨나는 것이니 우리는 도킹해야 한다. 만나야 한다. 서로 운명지어진 이들을 찾고 그들과 연결하는 것이 [스팀시티]와 춘자의 사명이니 우리는 계속해오던 대로, 이번에는 범위를 월드와이드로 확장해서 시도하려는 것이다.



<20세기 소년>에서 만난 팡파르 대표는 매번 짧은 일정밖에 주어지지 않아 서로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서 지난해 늦가을에는 춘자가 찾아갔고, 올해 다시 랑데뷰를 시도해서 우리는 이대로 떠오르자는 데에 동의했다. 춘자는 팡파르 대표에게 출간을 제의했고, 이는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팡파르는 춘자의 콘텐츠를 릴과 파리 등 유럽과 프랑스에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찾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20세기 소년>에서 공연을 열려다 무산된 [M Stage]와는 런던에서 공연을 개최하고 함께 페스티벌을 열면 좋겠다 제안하고, 함께 논의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유럽에서의 일정을 밟아가고 있었다.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다음 주에 파리에서 볼 수 있을까요?"



랑데뷰 요청, 우리는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달려가려면 신발을 사야겠지. 가진 거 없는 마법사는 필요한 게 많다.



파리로 넘어오니 조금은 부드러워진 물가에 마음이 노곤해진다. 제일 먼저 할 일은 그곳의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발병 때문에 무너진 몸을 이끌고 첫 스케줄로 마레 지구를 택했다. 물론 그곳은 이제 열렸다.



사야 할 때
해야 할 때
만나야 할 때
떠나야 할 때
물론
팔아야 할 때 역시,



그것을 아는 게 어쩜 제일 어려울지 모르겠다. 사는 것도 어렵지만 파는 것은 더 어렵다. 만나는 것도 어렵고 헤어지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팔아야 할 때 팔면 우리는 새로운 랑데뷰를 기대할 수 있다. 그곳의 여부를 확인하기로 한 그날, 스팀이 살짝 올랐다. 팔아야 한다. 이제는 팔아야 할 때다. 직관을 따라 가지고 있던 스팀을 팔았다. 잘 판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레 지구 8번지로 향했다.



이제야 열린 그곳을 확인하고는 충격에 빠졌다. 직관이 확인될 때는 언제나 쇼킹하지만, 이번에는 더 놀라웠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운명이 전진하고 있음을 너무도 명쾌하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록으로 남겨야 하니, 마법사는 이곳에서 사야 한다. 팔았으니 사야 한다. 남기지 않고. 직관을, 기회를, 사야 한다. 얼마가 들어도. 마법사의 망토가 그곳에 있었다. 비싸다고 외면한 신발값에서 0 하나가 더 붙은 가격으로. 물론 그 액수는 그날 마법사가 스팀을 판 바로 그 금액이었다.



불행이 행운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된다. 행운은 불행을 품고 있고 기쁨은 슬픔으로 전환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반전을 누리고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언제나 앞면만 나오는 동전은 미래를 알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발 가게 아저씨의 예언은 충고이자 경고였는지 모른다. 고통으로 대가를 치른 마법사는 온 길을 거슬러 다시 그 신발을 사야 했고, 거스른 길에도 운명은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방향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무지와 갈등을 그대로 안고 멍청하게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길을 포기하지 않은 이에게 주어지는 'Welcome Gift, Again'인 것이다. 그런 기쁨을 [스팀시티]의 시민들과 나누고 싶다. 그런 경험을 함께 누리고 싶다. 세상의 협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그런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거짓말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기적으로부터 떼어놓는지. 실은 기적이 아니라 마땅히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준비해 놓은 우주의 선물임을 깨달은 진짜 시민들은 언제나 만날 수 있게 될지. 그러니 걸어야 한다. 기다리고 염원하는 너를 만나야 하니까. 우리는 랑데뷰해야 하니까.



그곳은 열렸다.
그곳의 이름은 RENDEZ-VOUS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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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레이스 + City100] 067. rendez-v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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