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책, 너 없이 걸었다, 허수경)

김밥은 잘 정돈된 혼돈을 뜻한다. 김밥에 말려진 재료들은 강, 바다, 들판에서 온 것들이다. 채소, 어묵, 햄, 그리고 간을 한 밥. 이 모든 것들은 소금에 섞이면서 혼동을 갈무리하며 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김밥은 소금이 몰고 오는 혼동이 자물린 차가운 시간을 뜻한다. 소금을 친 음식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더운 시간 속, 소금은 그냥 널브러져 있다가 음식이 차가워지면 진면목을 드러낸다. 절여진 시간이 입안으로 들어올 때 얼마나 짜고 쓴지 우리는 알지만 그 유혹을 차마 떨치지 못한다. 삶의 짠맛을 보기 위해 우리는 기차역으로 간다. 기차 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자주 목이 막히고 떠나오던 기차역이 자꾸 눈에 어른거리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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