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찾아보는 이야기들 - 오리엔트
페르시아 고원과
아라비아 사막의 사이로
두 개의 강이 흐른다.
하나는 유프라테스 강이고,
다른 하나는 티그리스 강이다.
걸프 만과 접한 하류 지역에서 두 강은 가깝게 만나는데, 이 두 강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주변에 생산성이 높은 평야가 기다랗게 펼쳐진다. 완연한 커브를 그리며 북서 방향으로 펼쳐지던 평원은 아나톨리아 고원을 만나면서 급격히 남서로 그 뻗는 방향을 튼다.
지중해 연안의 레반트 지역을 거쳐 가나안 땅을 지난 후, 시나이 반도를 건넌 다음에는 정남의 방향으로 나일강을 따라 주욱 평야가 이어지는데, 평야들이 분포하는 형국이 초승달을 닮은 커다란 커브를 그리고 있어 보통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 부른다.
사람에 따라 이집트까지 포함하기도 하고,
메소포타미아와 레반트 지역만 범위에 넣기도 한다.
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탐냈다. 이집트인들이 그러했고, 그리스인들과 페르시아인, 메소포타미아인 그리고 투르크 인들이 서로 뺐고 뺐으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집트는
바다와 사막으로 둘러싸인 데다,
메소포타미아로부터의 진입로가 협소했기에, 극강의 방어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자연스레 대단히 평온한 세월을 보내왔다.
나일강 주변의 평야는 생산성이 높았는데,
나일강이 매우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덕에,
토지의 회복력마저 높았다.
따라서 잉여 생산물이 매우 많았고,
금까지 쏟아져 나오는 통에 적당히 살다 보면 국력이 저절로 축적됐다. 충분히 힘이 쌓였다 싶은 타이밍이 오면 여지없이 영토 확장에 나섰는데, 진입로와 마찬가지로 진출로 역시 한 곳이어서, 지중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며 메소포타미아로 쳐들어가고는 했다.
메소포타미아는
차지하고 있는 땅의 생산성이 이집트 보다 높았고,
토지의 회복력은 더 좋았다.
위 지도는 오늘날 토지의 생산성과 회복력을 표현한 지도로, 기후가 크게 변화했음에도 메소포타미아 북부 일부 지역의 토지는 여전히 생산성과 회복력이 매우 좋다.
고대로부터 현대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비옥한 녹초 지역이 점점 북쪽으로 밀려났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집트를 포함한 초승달 지대 전역은 생산성과 회복력 모두 탑 티어에 속했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땅을 소유했던 메소포타미아지만, 위치상 이집트 같이 사막을 망토처럼 두르지는 못하였다는 게 큰 리스크였다. 지역 자체가 길어서 여러 민족을 상대해야 했는데, 지역이 길다는 뜻은 분쟁 시 전선 역시 길게 형성된다는 의미로 웬만한 세력 갖고는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웃이 전부 기마 민족이었기에, 농사짓는 정주 세력이 덩그러니 놓여진 평원에서 기마 유목 민족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만의 스타일이 형성되는데,
강력한 리더십 아래,
하나로 모을 것.
기마의 난입을 저지할 성벽을 쌓고,
기수는 활로 요격할 것.
이집트와 더불어 메소포타미아에서도 강력한 군주가 등장한 배경이다. 성을 쌓으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많은 노동력을 부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력이 필요했다. 전제 군주의 전통은 계속 이어져 이 지역에서는 오늘날에도 통치자가 철권을 휘두르는 케이스가 많이 목격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아카드 왕국이 최초로 유의미한 국가의 형태를 지닌 세력으로서 부상했었는데, 이들은 페르시아 고원에서 내려온 구티족에 의해 멸망하고 구티족은 다시 아시리아에게 멸망한다.
아카드 = 농경 = 정주
구티움 = 기마 = 유목
아시리아 = 농경 = 정주
긴긴 세월 동안 이어진 농경민족과 유목 민족 사이의 일진일퇴가 이곳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벌어졌다.
앞으로도 여러 번 쓰겠지만 말의 등장은 세계사를 뒤흔들었고, 말을 기를 수 있는 곳은 특정한 지리 조건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말이 뒤흔든 역사 역시 지리의 힘에 의해 쓰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최초로 통일했다.
아시리아가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할 수 있었던 요인을 꼽자면,
선공
기병
전차
활
병참부대
그리고 철.
전격전
아시리아인들은 방어는 의미가 없다 여겼다.
기다랗게 펼쳐진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지키기 어렵다. 지키기 어려우면 지킬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는 생각이었겠다. 아시리아인들은 닥치는 대로 쳐들어가 반항하면 제거하고, 항복하면 끌고 와 노동력으로 삼았다.
기병과 전차
이들은 농경 정주의 메소포타미아 민족인데도,
기병을 운용해 패권을 가져갔다.
아마도 기마 민족에게 탈탈탈탈 털려오던 시기를 지나 생존하며 기병의 중요성과 운용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는 등자가 없던 시절이고, 말의 품종도 아직은 허리가 길지 않았던 시기였다. 따라서 기마술을 지닌 기병을 키우기가 어려웠다.
대안을 찾았는데,
한 명은 말을 부리는 것에 전념하고,
한 명은 전투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전투에 2인 1조의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기마술이 뛰어난 인원은 말에 올라타 전투병이 올라탄 말의 고삐까지 쥐어 2마리의 말을 몰았고, 전투병은 말의 엉덩이 부분에 걸터앉아 전투를 치렀다 한다.
더 나아가 전차를 몰았는데,
당시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종횡무진 헤집는 전차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남하한 히타이트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세계에 처음으로 전차를 전한 것으로 추정이 되며, 그 위력이 얼마나 셌던지, 번영을 구가하던 이집트는 힉소스인들의 전차 부대가 침입하자마자 5만이 넘는 보병이 몰살당하고 100년 간 나라를 뺏겼다.
나름 당시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양분하던 강대국 이집트가, 태어나서 처음 목격한 말이라는 동물에 의해 철저히 짓밟힌 것이었다.
궁수
아시리아 궁수들은 실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는데, 2인 1조의 개념까지 더해 한 차원 더 진화했다. 한 명은 활에 전념하고, 한 명은 방패와 창으로 궁사 보호에 전념했다. 아시리아 이전에는 궁수 부대라는 것이 방어에 약해 전열이 무너지거나 난전이 벌어지면 쓸모없는 병력으로 전락하기 마련이었으나, 궁사 개개인을 방어한다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전문용어로 무빙샷! 이 가능한 레인지 유닛으로 진화한 것이다.
미리 배치한 전열이 아니라 전황에 따라 전선 곳곳에 투입되어 유기적으로 보병과 기병을 지원하였기에, 아시리아 군대의 화력은 막강해졌다.
병참
길다.
포스팅도 길고,
비옥한 초승달 지대도 길다.
아시리아 군이 선빵 필승의 기세로 빠꾸 없이 마구마구 쳐들어가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병참 부대의 존재 때문이다. 전쟁에 있어 보급의 중요성은 수백 번 얘기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 병참부대는 기나긴 보급로를 운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Iron
이렇게 아시리아 군이 온갖 곳을 침략하여 닥치는 대로 점령해버리는 동안 상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들 역시 열심히 맞서 싸웠다. 하지만 도저히 아시리아 군을 이길 수 없었는데, 무기의 퀄리티 차이에서 전투력이 극명하게 갈렸다는 얘기들이 많다.
아시리아는 철기를 사용해 무기를 만들었고,
아시리아의 적들은 청동을 무기에 사용했다.
따라서 철제 무기가 청동제 병기를 압도했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
철이라고 청동을 압도했던 것은 아니다.
철검과 청동검이 부딪혔을 때 청동검이 단박에 부러지거나 쪼개지는 그런 그림은 만화에서나 나오는 것이고, 강철은 3세기 중국 한나라 시절까지는 가야 등장한다. 실제로 만약 부러진다면 부러지는 쪽은 철검이었다. 물론 청동검의 날이 더 크게 상하거나 휘었겠지만 일방적으로 청동 무기가 파쇄되는 압도적인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무기의 우월성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청동과 철기 사이에는 압도적인 가격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섞어 만든다. 그리고 신의 장난인지, 지리가 밸런스를 꾀한 것인지, 당시 지구 상에서 구리와 주석이 한 군데서 나오는 지역은 없었다.
구리가 나오는 지역은 이렇고..
주석이 나오는 지역은 이렇다.
호주와 알래스카는 차치하자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 속에서,
구리와 주석이 나오는 지역을 독식한 문명은 없었다.
따라서 주석의 수입이 필수였고,
자연스레 청동기는 비쌌다.
하지만 철은 지구상 어디를 가도 널려있다.
따라서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철제 무기를 사용했다는 군대가 있었다면, 십중팔구 대규모의 군대를 운용할 수 있었다고 접근해야 한다.
아시리아가 대규모의 궁수 부대를 운용할 수 있었던 것도 비싼 청동의 화살촉이 아니라 저렴한 철제 화살촉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고, 대군을 무장시킴에 있어서도 저렴한 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무려 그 시절에 벌써 공병부대도 운영을 했는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쌓아 올려졌던 성들은 단단한 바위를 쌓아 올린 성이 아니라, 흙으로 다지거나 구운 벽돌로 쌓았다.
숫양battering ram이라는 공성병기도 활용하여 성벽을 부숴버리는 부조도 남아있다.
저렴한 철을 이용해 다양한 도구를 마구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철제 도구를 쥐고 곡괭이 마냥 마구 찍어대어 성벽을 뚫고 들어가거나 하염없이 두들겨 박살내고 진입할 수 있었다. 전쟁 기계 마냥 진화한 아시리아 군의 진격은 당시 메소포타미아 세계 안에서는 정녕 파멸적인 진격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철을 어디서 얻었을까.
아마도 아나톨리아에서 남하한 히타이트와 치고받으며 철의 존재와 제련법을 익힌 것으로 추정한다.
충격과 공포로 패권을 가져갔던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모두 아우르는 제국으로 성장하나 금세 역사의 페이지에서 사라진다. 선제 타격에 이은 전격전으로 휘몰아친 아시리아 군대에 맞설 적수는 없어 보였지만, 지리의 보호를 받아 조용히 힘을 길러오던 상대에게 일격을 당하고 만다.
페르시안 기병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저 지도들 보니, 예전에 초등학교 때 했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가 생각나네요^^ ㅎ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는 저도 좋아했습니다.ㅎㅎㅎㅎ 스타하다 질리면 에이지하고, 에이지 하다 질리면 스타하고 그랬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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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재밌게 읽었습니다.
역시 세계사는 너무 재미난 ㅎㅎ
오 이 시국에 남의 포스팅을 읽어봐 주시고 감사합니다. :D
저도 세계사 엄청 좋아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