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왜 친일파가 되었는가?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여성 친일파들에 대해서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나는 이들을 어느정도 '변호'하려고 한다. 옹호가 아니다. 변호다. 그들의 친일에 면죄부를 쥐어주려는 게 아니다. 친일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해야하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그 이면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여성 친일파 그 자체만 욕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여성들이 친일파가 되었는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당대의 지식인들,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이 왜 변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지만, 여성들은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기회가 그다지 없었다. 이 기회에 이 글을 씀으로서, 간단히 성찰해보려고 한다.
'신여성'의 고뇌
여성이 왜 친일파가 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여성 친일파에는 어떤 유형이 있는가를 살펴보면 편하다. 교육자, 소설가, 기자, 여성단체 대표 등등 직업 분모에서는 다양하다. 그러나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소위 '신여성'이라는 점이다. 신여성은 또 무엇인가? 그대로 해석하면 새로운 여성이다. '새롭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전과는 '다른'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전의 여성은 또 어떠했는가? 배우지 못했고, 남편에 순응하며, 집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그런 여성을 의미했다. 신여성은 이에 반해 '배운 여자'였다. 서양에서 들어온 근대적 학문을 익히고, 근대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배웠기 때문에' 자신들의 능력을 가지고 남성들과 '대등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만 본다면 신여성이란 근대에 발현된 '평등' 정신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용어다.
그러나 전혀 이상적이지 못하는 용어야 말로 신여성이다. 신여성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의무를 부담하는 새로운 족쇄에 불과하다. 이들에게는 남성들과 같은 근대적 과업을 완수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들만 할 수 있는 직업은 따로 있었다. 여성이 남성의 직업에 진입한다는 건 여전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문호가 조금씩 개방되었지만, 한참 모자랐다. 조선 사회는 신여성들에게도 여전히 이전의 '현모양처'의 모습을 강요했다. 여기에 '아이를 근대적으로 키우라'는 요구가 추가되었다. 결국 여성들의 삶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남성들처럼 승승장구하는 여성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신여성의 대다수는 배운 지식을 써먹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 달라진 게 있다면, 전통혼례가 서양식 혼례로 대체되고, 근대적 양옥에 살게되었다는 점 밖에 없다. (이것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생각해보라. 그 누가 자신이 배웠다고 생각하는데, 한 사람 아래 평생 복종되어서 그 사람만을 위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겠는가. 신여성들은 남성들이 배운 자신들처럼 동등하게 가정생활을 해주길 바랬으나, 이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다.(슬프게도 지금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신여성들이 절망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당시의 여성교육이란 그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그저 '좀 더 똑똑한 여성'을 만들어 '남성이 하기 어려운' 육아 분야에서 아이들에게 근대적 정신을 투여하도록 만드는 훈련소라고 극단적이지만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제시대가 왔다.
그리고 1919년 8월 29일, 조선, 대한제국은 망했다. 일본이 되었다. 일본은 조선에서 최대한의 착취를 자행했다. 조선인들은 격분했고, 부당함에 맞서 일어났다. 독립의지는 사그라 들지 않았다. 일제는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구사한다. 친일단체 육성도 그 한 방법이었다. 당대의 지식인들, 명망가들을 모아 친일 어용 단체를 조직해, 여론을 전환시키기 위해 애썼다. 이 작업은 40년대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강한 압박에 버티다 못해 많은 사람들이 변절해버렸고,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제에 붙기도 했다. 여성계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이 물결에 신여성들도 서 있었다.
신여성들은 생각에 잠긴다. 근본적으로 일제와 조선이 여성을 보는 방식이 다르지 않다. 그렇다. 일제는 기존의 편협한 여성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친일단체에 가담하면 신여성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언변으로, 지식으로 그들을 돕는다면 적어도 조선에서 배워도 멸시받던 그 환경과는 달리 살 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분명 있을것이다. 그렇게 조선의 신여성들은 적극적인 친일파가 된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 할 수 있는 분야가 당시로서는 거기가 가장 최선이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즉, 조선의 여성관이 여성 변절자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고 면죄부를 줄 수 없다.
분명 이건 남존여비가 일으킨 하나의 비극이다. 만약에 조선이 좀 더 여성의 권익을 추켜 세워주었더라면, 변절자는 지금 우리가 아는 것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유 하나만으로 여성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 그들의 생각은 맞았다. 일제는 신여성들을 적극적으로 써먹었다. 능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조선인들은 희생되었다. 군화에 짓밟혀 세상에서 사라져갔다. 그들이 얻은 지위는 진정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들을 위함이었다. 또한 신여성으로서 대등하게 한 객체로서 인정 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일제의 선전용으로서 얻어진 직위에 불과했다. 그런 사회적 영광은 결코 오래 가기 어렵고, 양심의 몰락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진정 그들이 여성의 권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한 게 사실이라면, 도대체 더 주체적인 이대생들은 설립자 배활란의 동상에 페인트를 부어버렸는가? 앞으로 두고두고 잘못된 그들의 판단에 결코 우리는 면죄부를 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