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문집에 남기지 못한

in #graduation7 years ago (edited)

중학3학년,

나름 글에 열정을 가졌던 나는 졸업 문집에 간단한 수필을 쓰고자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담임 선생님의 착오로 우리 반 전체는 졸업 문집에 아무 글도 남기지 못했다.

결국 그 해 졸업 문집에 우리 반의 목소리는 전혀 들어가지 못했고, 나는 그것이 지금도 약간 애석하다.

나는 그때 이런 글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아, 앞으로 10년, 20년이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이 희미해지고 이름 조차 기억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이란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러나 그 무게만큼

매일같이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던 이 3년간, 우리가 서로에게 가졌던 마음 역시 깊은 곳 어딘가에는 또렷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시간이란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마음'이란 것은,

'돈'이라는 형태다.

우리는 아직 어리지만, 앞으로의 삶에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역시 '돈'일 거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지만 그것 때문에 우정이 멀어지고, 사랑이 버겁고, 삶 자체가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고, 어쩌면 어른이 되고 난 후의 우리는 지금 현재의 우리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자.

얼마전에 나는 어떤 어른으로부터, '차가운 얘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세상은 돈이 전부란다'라는 말을 들었다.

당연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생각에 속마음으로부터 반대했다.

'세상은 돈이 전부다'라는 식상한 주장에 반하는,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식상한 주장.

그러나 한켠으로, 나 역시 조금 더 크고 나면 역시 돈이 전부까지는 아니라도, 대부분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어른이 밉다. 그런 말은 듣기가 싫었다.

그러나 용서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삶, 그런 태도 역시 수용하고 싶다.

그러니까 친구들아,

우리 중 대다수가 아직까지는 나처럼,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순수함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먼 미래에 돈 때문에 우정이 멀어지고, 사랑이 버겁고, 삶이 힘들어지는 일이 있게 되어

조금은 '돈이 거의 전부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도

우리 자신을 용서하자. 정확히 말하면,

그런 우리 자신도 미워하지 말자.

나는 그런 10년, 20년 뒤 우리들의 모습을 포함하여

이 중학 3년간을 좋아한다. 시간은 원래 그런 것이고

이 시간 속에서 나의 마음이 그러하다라는 것을

알려두고 싶었다.

아마 이렇게 쓰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말의 형태가 세련되지 못하고 유치한 상태라 해도

그 당시 나의 마음을 남기지 못한 것이 여지껏

애석하다는 것이다.

하지 못한 말을 뒤늦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 일인지

알면서도 뒤늦게나마 마음껏 하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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