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시계

in #flowerday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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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이면서 대체 공휴일이었다. 아버지에 세례명이 프란치스코성인이시다. 하루종일 빈둥거리고 놀려고 하다가 남대문 시장에 다녀왔다. 갖고 있던 시계중 2개가 약이 떨어져서 멈춰선지가 꽤나 오래되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방치를 해두었었다. 시계를 손볼 요량으로 다녀왔다. 평상시에는 차량이 너무 많아서 서울 나들이가 부담이 되고 운전하고 다니기도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었었다.

난 시계를 3개 갖고 있다. 하나는 피아제, 또 하나는 오메가, 또 하나는 세이코다. 전부 나름 명품시계들이다. 나에게 3개의 시계는 나름대로 각자의 사연이 있어서 애지중지하고 있다.

피아제시계는 26년전 아버지가 사주신 시계다. 내가 사회에 진출하던날 축하해 주시면서 선물로 주신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도 1000만원이 넘는 시계를 사주신 것이다. 난 시계에 관심이 없던터라 그 시계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차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시계에 관심이 많으신분이 시계를 보더니 명품시계를 갖고 계신다라고 말씀해주셔서 그 가치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게는 값이 비싸서 가치가 있는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최고로 해주시고 싶으신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그래도 시계를 사주시면서 비싼것라고 살짝 언급이라도 해주셨으면 더 아끼면서 차고 다녔을텐데, 그냥 막차고 이리저리 굴리고 해서 시계에게도 아버지께도 미안하다.

또 하나의 시계는 오메가시계이다. 아버지께서 제일 좋아신 브랜드가 오메가였다. 아버지께서는 오메가 시계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6.25전쟁이 터지고 이북 황해도 송화군에서 사셨던 아버지께서는 학생 신분으로 의용군에 징집되어서 전쟁에 참여하셨다. 징집되어서 마지막으로 학교운동장에서 가족을 만날을 때 당시 할아버지께서 차고 계셨던 시계를 아버지께 주시면서 다치지말고 잘 다녀오라고 하시면서 직접 손목에 채워주셨던 시계가 오메가 시계였다고 말씀하시곤했다.
그 시계는 포로로 잡히면서 거제도 수용소에서 빼앗기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주신 유일한 유산이었기에 빼았기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셨지만 어쩔 수 없이 빼앗겼다. 그리고 그 시계는 다시는 볼수가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할아버지를 잃어버린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평생 한이 되셔서 술만 드시면 어린 나에게 넋두리를 하시곤 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내가 돈을 벌면 아버지께 똑 같은 시계를 사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후에 내가 아버지께 오메가 시계를 사드렸다. 아버지는 무척 좋아하시면서 손목에 차고 자랑하셨다. 아마도 시계는 달랐지만 아버지께서는 그 시계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오래가지 않으셨다. 어느날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그 시계를 약주를 드시고 어디다 잃어버리셨다고 마음 아파 하신다고 전화가 왔다. 아들이 어렵게 사드린 것이기에 미안한 마음이 있으셔서 직접 말씀도 못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두번째로 사드린 시계가 바로 사진에 나와있는 오메가 시계다. 그 이후로는 아버지는 시계를 차고 계시지 않고 잘 보관하셨다. 가끔 집에가서 아버지께 차고 다니시라고 그리고 잃어버리면 또 사드리겠다고 하셨는데도 당신의 고집대로 잘 보관하셨다.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돌아가시던날 나는 시계때문에 고민했었다. 아버지 손목에 시계를 채워서 함께 보내야하나? 아니면 시계를 내가 갖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하나?를 고민하다가 내가 갖고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 손목에 차고 다닌다. 아버지가 생각나거나 아니면 추억을 생각하고 싶을 때는 더욱더….
그러고 보니 그 시계는 내가 아버지로 부터 받은 유일한 유산이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시계가 유일했던 것처럼....
하지만 아버지로 부터 받은 시계들은 내가 하늘나라에 가는 그 날까지 함께 할것이다. 나는 물건에 집착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지만 특별한 사유가 있는 시계라서 더 잘 보존하고 싶다.

세번째 세이코 시계는 후배로부터 받은 시계이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대학교를 중도에 포기했던 후배에게 당시 내가 갖고 있던 돈 300만원을 주었다. 받으려하지 않던 그 후배에게 잘 살면 갚으라고 억지로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까맞게 잊고 있었다. 그 후배는 그 돈을 미천 삼아서 일본을 오가면서 보따리 장사를 하였고 10년후 내 앞에 나타났을 때는 장가도 들고 나름 재물도 모아서 돈 300만원과 함께 나에게 선물로 준 시계가 바로 세이코 시계이다. 돈도 돈이지만 자신을 믿어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하면서 평생 못잊겠다고 하는데 부끄럽다. 그 시계를 바라볼때 마다 선한 삶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확신하게하는 시계라서 나에게는 나름 소중하다.

난 늘 모든 재물의 소유권은 하느님께 있고 우리들은 사용권 만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어왔다. 난 세개의 시계를 바라보면서도 그 의미를 더 깊이 가슴 속에 새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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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랑이.. 후배의 정성이 대단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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