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우지 낚시법
가마우지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특이하다. 가마우지를 배에 태워서 강으로 나간 어부는 고기를 잡을 장소에 이르러 가마우지를 강물에 풀어준다. 그런데 가마우지의 모습이 이상하다. 가마우지의 발에 줄을 묶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목에도 줄로 감겨 있었다.
가마우지가 물속에서 열심히 물고기를 잡지만 그 물고기를 목으로 넘길 수는 없다. 고기를 잡아서 본능적으로 삼키려 애를 쓰지만 목에 감겨 있는 주로 인해 고기를 삼킬 수가 없다. 어부는 그런 가마우지를 줄로 당겨서 입에 물고 있는 고기를 빼앗아 바구니에 담으면 낚시는 간단하게 끝난다.
가마우지 입장에서는 열심히 물고기를 잡지만 헛수고를 하는 것이다. 모든 이익은 어부에게 돌아가고 열심히 사냥했던 가마우지에게는 작은 물고기 한 두 마리만 주는 것으로 모든 상황은 끝이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의 기록에 의하면 수용소에 갇힌 이들이 공통적으로 꾸는 꿈이 있다고 한다. 수용소에 갇힌 이들은 꿈꾸는 것을 힘들어한다. 생존 이외의 그 무엇도 사치처럼 여겨지는 수용소의 절망적인 현실에 비해 꿈에 나타난 세계는 너무나도 달라 꿈에서 깨어날 때 상실감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어떤 희망도 없다는 현실만을 인정해야 그나마 버틸 수가 있는데 꿈속에서 자유롭게 생각의 날개를 펴고 수용소 밖의 세상으로 연결되니 꿈을 깰 때마다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꿈속에서 그들은 그리운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난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같은 음식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자신들이 겪었던 극심한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귀담아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가족도 친구도 등을 돌려버리거나 자리를 뜨고 만다. 꿈속에서 조차도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그것이 바로 죽음의 수용소에 갇히 이들이 공통적으로 꾸는 꿈의 형태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친절하고 다정할 뿐, 그 아래를 흐르고 있는 것은 차가운 계산에 의해서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을 타면 거의 모든 이들이 핸드폰을 들고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와 문자를 보내거나 영상을 보느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보인다. 마치 꿈속에서 말하는 자는 있는데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었던 모습처럼.....
따로 갇혀 있지 않을 뿐, 아무도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죽음의 수용소의 삶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삶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번번히 물고기를 빼앗기면서도 자맥질을 하는 가마우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분주하긴 하지만 무엇 하나 얻지 못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