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in #flowerday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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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서울에서 손님들이 오셔서 밖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손님들이 오시면 학교에서 학생들 그리고 교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지금은 방역관계로 외부사람들은 일절 학교에 안에 못들어온다. 그래서 손님이 오시면 할 수 없이 밖에서 식사를 대접한다.

손님들과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기 위해서 먼저 밖으로 나왔다. 그 식당은 맛집으로 소문이 났고, 그 주변에는 식사시간이면 늘 불법주차로 몸살을 앓는다. 난 그 식당을 이용할때는 걸어서 2분거리에 있는 유료주차장에 차를 주차를 한다. 그날도 차를 갖고 식당 쪽으로 올려고 일부러 먼저 나온것이다. 주차장을 향해서 걸어가려할 때 한 아주머니가 날 보고 “아저씨! 여기에 주차를 해도 되요?”하고 물어왔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처다보면서 “왜 저보고 물어보시는 겁니까?”하고 대꾸했다.
아주머니가 아주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죄송해요”하고 말을 다시 걸어왔다. 그 표정에는 널 주차관리인으로 착각해서 미안하다라는 느낌이 있었다.

나도 기분이 나빴다. 이유는 날 주차관리인으로 착각해서가 아니다. 내가 편하게 입고있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정작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그곳은 분명히 도로변이고 주차를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물어왔기 때문이다. 왜, 안되는 곳을 굳이 남에게 물어보고 주차를 하려고 할까? 분명히 불법주차를 단속한다는 표지가 큼지막하게 써 있었는데….. 그리고 그곳에 주차를 하면 다른 사람들의 운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까지 주차를 하고 싶을까?하는 마음에서였다.
만약 내가 주차해도 된다고 하면 불법으로 주차를 해도 되는 건가? 그러다 딱지라도 끊기면 날 원망하고 나보고 책임을 지라고 하겠지? 라는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대부분 구별할 줄 안다. 그러나 안되는 것을 때로는 양심을 팔거나 눈을 감으면서 한다. 그리고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그 누군가 희생양을 찾는다. 코로나로 방역에 조심하라고 하면, 개인의 자유를 억제한다고 하다가 코로나에 걸리거나 만연하게되면 정부의 방역을 탓을 한다. 위험곳이니 출입을 하지말라고 선을 긋거나 금지선을 세워도 그곳을 넘어가서 문제가 생기면 선이 허술했다니 금지선이 잘 안보이게 했다고 탓을 하면서 때로는 소송까지도 불사한다.

살면서 하지말라는 것은 안하면서 살기가 그리 힘들까? 그리고 나의 부주의나 잘못으로 결과가 나쁠때 ‘내탓이요’하면서 살아가는게 그리 힘든가? 내가 믿는 신앙에서는 전례 서두에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하면서 전례를 시작한다. 내가 신앙을 갖지 않았을때 우연히 성당을 갔다가 이 부분이 너무나도 감동이 되어서 세례를 받았다. 그 전까지는 나도 늘 ‘네 탓이요, 네 탓이요, 네 큰 탓이로소이다’를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좀더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가자. 그 저변의 힘은 아마도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때 생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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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오히려 우리나라가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발전은 되가는데 정작 안전과 밀접한 도로와 인도는 좁혀지니, 그만큼 안전을 무시하게 되고 주차공간이 없어지니 위법하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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