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일기] 유원일 의원의 격려 "허 기자는 내가 먼저 보고싶어한 사람이에요. 왠지 알아요?"
유원일 전 의원(좌)과 사진을 찍었다. 언제 다시 보게될 지 모르겠지만, 그의 남은 인생을 응원한다.
2019년 8월16일 회복일기
유원일 전 창조한국당 의원을 찾아뵈러 그의 집이 있는 시흥시로 찾아갔다. 두어달 전쯤 갑자기 연락을 주셨다.
"밥 한번 먹어요. 허 기자."
마지막으로 이분을 만난게 언제였더라. 7년전 민주당 대통령 경선 때였던 것 같다. 여의도 앞에서 밥한끼 같이 하고 헤어진게 마지막인데, 이분이 근 7년만에 연락을 준 거였다. 나도 갈 수록 바빠지고 유 의원은 18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정계를 떠나면서 특별히 연락할 일이 없었다.
왜 연락을 주었을까. 아마 내게 힘을 주고 싶은 거겠지. 너무 감사했다. 유 전 의원은, 용산참사를 마치 자기 일처럼 챙기는 모습을 보고 기자이자 시민으로서 내가 더 감동 받아 늘 멀리서 응원했었다. 유 전 의원은 용산참사 유족의 거리 투쟁을 돕다가 경찰한테 얻어맞는 의원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었다. 국회의원으로서 믿음직했지만, 국회의원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칭찬이다.
유 의원과 냉콩국수를 맛있게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러 갔다. 유 의원은 내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허 기자. 내가 국회에 있을 때 꼭 하고 싶었던 게 뭔지 알아요?"
"글쎄요. 워낙 전투적으로 이것저것 많이 하셔서."
"저는 꼭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키고, FTA 체결 등을 막고 싶었어요.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다른 사법 체계에도 많은 악영향을 끼쳐요. FTA 는 가진 사람들을 위해 작동하는 법이에요. 서민경제지원법을 함께 만들지 않는다면 아주 위험한 협약이었지요. 또 수능에 역사와 윤리 등의 과목에 가중치를 두려고 했어요. 그래야만 국가의 미래가 보일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명박과 싸우다가, 뭐 하나 제대로 못했어요."
갑자기 그의 실패담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 의원의 설명은 계속 됐다.
"허 기자. 좋은 씨앗을 뿌리면 언젠가는 발아해서 꽃이 피겠지요. 다만 그 씨를 뿌릴 때는 꽃 피우는 것 까지 기대할 순 없어요. 허 기자. 지금 당장은 마약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비난부터 할거예요. 하지만 세상에 마약 문제를 제대로 알리는 씨앗을 뿌리세요. 그 과실을 못거둘 수 있지만, 씨앗을 누군가는 뿌려야 해요."
그렇다. 내가 지금 마약일기를 쓰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아, 날 비난해라. 괜찮다. 아니, 괜찮지는 않고 되게 힘들지만 각오하고 있다. 돌을 던져라. 이 정도 아플 건 각오하고 있다. 몇달 전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처음 올렸을 때 천여건 이상의 '좋아요' 버튼이 눌러졌다. 수많은 응원에 감격했지만, 나를 비난한 수십만의 사람들중 이제 천명 정도 이해시킨 거라고 생각한다. 자만해서는 안된다. 결코, 여론은 내게 우호적이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씨앗을 뿌려야 한다. 마약범죄는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부도덕한 사람들만이 저지르는게 아니다. 당황스러운 실수다. 죄는 처벌하되, 이들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 함께 고민해주어야 한다.
"허 기자. 나는 전직 국회의원이에요. 지금도 내게 수백명이 만나자고 연락이 와요. 하지만 내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한 사람은 몇명 없어요. 왠지 알아요? 허 기자의 기자로서의 순수성과 가치를 알기 때문이에요. 저는 많은 기자들을 만났어요. 하지만 단순한 특종기사가 아니라 사회문제의 본질을 고민하면서 기사거리를 찾는 기자는 아주 드물어요. 허 기자는 특종이 아니라 사회를 고민하면서 기사를 쓴 기자예요. 계속 기자의 길을 걸어야 해요."
그렇구나. 나는 어떤 기자였을까. 내 과거를 되돌아본다. 사실 나는 한겨레에 들어간 이유가 따로 있었다. 회사를 속였다. 기자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동아투위 선배들이 시작한 '언론자유실천운동'이 멋있어서, 그거 이어받고 싶어서 들어갔다. 너무 순진한 청년시절이었기에 난 솔직히 그랬다. 하지만 입사 면접 때 이런 이야기 했다가는, 너무 좌파기자처럼 보일까봐 그런 이야기는 일부러 숨겼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언론자유실천운동을 후배로서 이어갈 수만 있다면, 인생이 너무 멋있을 거 같았다. 한겨레 아니었으면 다른 언론사는 지원도 안하고 깨끗하게 기자직은 포기했었을 거다.
유 의원은 내 그런 태도를 읽었던 것일까. 내가 특종을 좇지 않는 기자라는 것을 관찰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특종 기사도 많이 썼지만 기자협회에서 주는 기자상을 받은 건 실제로 많지 않다. 내가 상 달라고 신청 자체를 잘 안했다. 우습지 않나. 상은 누가 알아서 챙겨주는 거지, 내가 상달라고 먼저 요구하는게. 기자협회 수상 제도는 나와 잘 안맞는다고 생각했다. 난 그저,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계급 불평등을 해소하고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널리 알리는 기사를 쓰면 그 자체로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서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라면 열일 제쳐두고 뛰어다녔던 것이다. 한겨레는 내 직장이자, 삶의 전부였다. 그렇게 유 의원과는 오며가며 마주쳤었다.
나는 기자로서 과연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허 기자. 너무 위축되어 있지 말아요. 내가 알던 허재현은 정말 당당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네요.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보다 앞으로 뭘 할 건지를 대중들에게 설명하세요. 꼭 잘 되실 겁니다."
그럴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유 의원은 다시는 정치권에 발을 들이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자신과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깨닳았다고 한다. 대신 뒤에서 젊은 운동가들을 지원하고 돕는 삶을 살려고 한다고 했다. 이미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아마, 허재현이라는 젊은 기자에게 오늘같이 밥을 사주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그래. 잘 살자. 잘 해내자. 난 오늘도 마약이 하고 싶다. 잘 참자. 잘 참아왔다. 그대신 좋은 기사 쓰고 마약 문제를 널리 알리자. 허재현은 특종 대신, 사회 문제의 본질을 더 고민하는 기자였다고 하지 않나. 좀 창피하게 됐지만, 나는 여전히 기자 아닌가. 얼마나 다행인가.
더운 여름날의 한가운데에서 봄바람같은 따뜻한 격려를 받는다.
▶ 허재현 기자를 좀더 적극 돕는 방법
http://repoact.com/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3
유 전 의원, 잘 몰랐는데 멋진분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