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허재현 기자의 해고절차를 중단하라" 한겨레에 탄원서가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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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19일 (토) 마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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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런 잘못을 안했다는 게 아니다. 다만 회사가 내 책임을 묻는 과정이 과연 정당한가에 관한 의문이다. 법원이 내 죄의 양형을 결정한 것도 아니다.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모두 해고인가? 당연히 창피하긴 하지. 그런데 창피하니까 해고 해도 돼? 기자는 그러면 안된다고? 내가 기자로서 업무와 관련된 범죄에 연루라도 된건가? 음주운전 하다 사람을 다치게 한것도 아닌데. 다른 것을 다 떠나서, 한겨레에는 엄연히 징계위원회라는 절차가 있다. 법적으로 마련된 숙의 과정도 없이 편집국장이 나의 해고를 결정하고 신문에 게재해 발표하는 것이 옳은가?

내 의문과 문제제기는 발칙하다. 감히 '뽕쟁이'가 뭐가 잘나서 그렇게 항변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발칙한 문제제기에 함께 해주고 있다. 내 기대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허재현 기자의 해고절차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써주기 시작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가인권위원회 복수의 고위 관계자, 신망이 두터운 법조계 인사들, 학계와 종교계에서까지 나서주고 있다. 한 변호사 단체의 대표는 “한국 사회는 마약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나 부족하다”며 통화상에서 진심으로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점심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장OO 변호사를 만나러 신림역으로 나갔다. 그는 5분 정도 내 설명을 듣더니 금새 이해하고 탄원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난 솔직히 허기자님이 속과 겉이 다른 사람처럼 살면서 민변 변호사들까지도 속인건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장 변호사의 반응이 일반적일 것이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할걸. 마약이란 건 그렇게 느껴진다. 인간 이하의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물건. 기자와는 어울릴 수 없는 물건. ‘기자 허재현’과 ‘마약 허재현’은 양립할 수 없는 것. 기자 허재현은 자신의 음탕함을 속여왔다!!

민변 변호사들은 나와 신망이 두터운 분들이 많다.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늘 관심을 갖고 취재에 나서다보면 결국은 민변 변호사들이 나와 한 자리에 앉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래저래 신뢰 관계가 쌓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럴까. 그들은 내게 충격받았다기보다는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어떤 변호사는 내 소식을 듣고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앞으로 기자로서 할 일이 정말 많은데, 이대로 기자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을 안타까워해주는 것이다. 그저 한없이 죄송하고 부끄럽다.

장 변호사와 점심 식사를 하려 하는데 내 휴대폰이 울린다. 군대에서 억울한 일을 겪고 의가사 제대한 군 폭력 피해자의 형이다. 피해자는 두 다리가 잘렸다. 상관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계단에서 넘어져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크게 다쳤다고 주장하는 분이다. 하지만 한동안 그는 정신을 잃어 폭행 사건을 증명하지 못했고 그렇게 사건은 유야무야 되어 의가사 제대를 했다. 수년 전부터 폭행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연락해왔다. 나도 최선을 다해 기사를 쓰고 국회 의원까지 설득해 다방면으로 진실을 밝히려 애썼지만 미완의 과제로 남은 사건이다.

그의 형이 제발 다시 한번만 기사를 써달라며 나를 찾아오겠단다. 차마 오지 말라고 할 수 없어 구로디지털단지 역으로 오라고 했다. 짜증이 났다. 나도 지금 제 정신을 못차리겠는데 왜 이렇게 억울하다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가.

나도 속시원히 도와주면 좋겠는데 모든 사건이 그렇게 잘 해결되는 게 아니다. 내게 수사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자로서 밝혀낼 수 없는 한계의 지점이 있다. 만족할 만큼 도와줄수 없는 내 자신의 한계에 짜증이 났다. 게다가 난 이제 한겨레에서 쫓겨나기 일보직전이다.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단 말인가.

일단 커피숍으로 모시고갔다. 거무틔틔한 얼굴이 나를 보며 웃는다. 뙤약볕에 몇시간이고 서있었나보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오는 길이라 했다. 가만이 서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이다. 내가 아무 도움도 못줄텐데 이분은 어떤 기대를 하고 나를 찾아왔을까. 나는 에둘러 사정을 설명했다.

“제가 우울증에 걸려서 일을 못해요. 한겨레신문도 그만 둬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다만 그냥 무작정 오지 말라고 하면 섭섭해 하실 거 같아 제가 차 한잔이라도 사드려야 할 거 같아서 여기러 오시라고 했어요.”

의외로 그는 담담했다. 보통 더 이상 도와드릴 수 없다고 얘기하면 화를 내는 분들도 많다. “저도 우울증을 오래 앓아봐서 알아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눈빛만 보아도 알지요. 기자님의 진심을 알거 같아요.”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억울함을 세상에 호소해도 귀기울여주는 이 드물고, 동생은 다리가 잘려 저렇게 폐인이 되어가고 있고, 수년동안 이런저런 싸움에 치이느라 그도 적잖이 힘들었을 거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힘겨움의 시간들이 빚어낸 고름같은 것일 거다. 이제 그 고름은 내 차례다. 그도 내게 닥쳐올 운명을 어슴프레 읽은 것인가.

차를 마신 뒤 헤어졌다. 추가 기사를 쓸 수 없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내주기엔, 나도 지금은 너무 많이 아프다. 나는 이제 나를 돌보아야 한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https://steemit.com/drug/@repoactivist/4vbe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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