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기다림의 서사, 덩케르크

in #dinkirk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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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는 프랑스 북부 지방의 바닷가 마을이다. 영국의 도버와 프랑스의 칼레를 잇는 도버해협에 가깝고, 칼레는 오늘날에도 이민자들의 유입때문에 종종 주목을 받곤하는 도시다. 덩케르크의 오른쪽은 벨기에 국경에 닿아있어, 지리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요지인 것은 그 위치만 보더라도 쉽사리 알 수 있다. 영화 덩케르크(En. Dunkirk, Fr. Dunkerque)는 1940년 5월,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이 도시에서 고립된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탈출을 그리고 있다. 즉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전장에서 탈출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니 스토리는 어찌보면 뻔하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고 넘겨 목숨을 부지한 이들이 탈출을 시도하고, 그리고 마침내는 이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공허한 도시, 살아남은 몇몇의 병사가 공중에 흩뿌려지는 삐라들 속에서 걷다, 몇 발의 총성 소리에 놀라 도망친다. 부질없게도 그들 중 몇은 결국 쓰러지고, 마지막 남은 병사 하나는 우여곡절 끝에 바닷가까지 닿는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이 지난한 사투의 스토리는, 바닷가에 길게 늘어선 줄들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병사의 눈길에서 이미 그 핵심을 드러낸다. 여기서 이야기의 핵심이란, 바로 기다림, 기약없는 지독한 기다림이다. 점점 옭죄어 오는 독일군의 전선은 이미 칼레를 점령했고, 연합군에게 남은 방법이라곤 이곳에서 철수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모두가 생각했던 것처럼 실상 ‘거의 불가능한’ 철수 작전이어서 그랬을까. 해안에서만 며칠, 그리고 배에 몸을 싣고도 일주일, 그렇게 지속되는 하염없는 기다림. 이것은 이 상황에 처한 모두가 행위하게끔 만드는 동기요, 목표이며, 희망이자 욕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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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째서 ‘삶에의 희구’가 아니라 ‘기다림’이 이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다만 넋놓고 배가 오기만을, 누군가 도와주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이들은 새치기를 시도하고, 배를 갈아타고, 또 다시 좌초된 배일지라도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때문에 여기에는 주인공도, 전쟁 영웅도 없고, 단지 때때로 함께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이들이 모이는 시공간이 주어질 뿐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밤과 낮, 땅과 하늘 그리고 바다를 교차하며 이뤄지는 이 각각의 공간과 시간은 단지 배경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시공간의 경계를 흩어내고 만들어내는, 고독하고도 처절한 기다림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망연자실한 자들의 기다림이 아닌, 이처럼 지난한 탈출에의 욕망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적극적인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그리며 이야기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여기서 이 모든 이야기를 단박에 보여줬던 장면은 무엇보다 해변에 돌아온 세 명의 병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렵사리 오른 배가 공격당하고, 다시 또 다른 배에 오르는 데 성공했으나 이마저도 어뢰 공격을 당하고… 이렇게 희망이 절망으로, 다시 절망이 희망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다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해변. 여기선 종전보다 더 지독한 절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절망적인 기다림을 감내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가 멀리 파도 속으로 사라지지만, 이들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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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빛들은 무엇이었을까. 열정도 욕망도 아니고, 체념도 아니었던 것 같다. 단지 인간으로서 받아들여야만했던 각자의 선택이었을까. 어쩌면 그에 대한 깊은 이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다림을 표현하기 위해 다시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앞으로의 일이야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해변에 넋놓고 앉았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놀란이 의도한 것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기다림의 적극적인 표현으로 이 영화를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봤다. 바라는 바를 희구하는 데 있어서, 나는 다만 넋놓고 앉아 기다리기만 하진 않았는지, 누군가 나서서 도와주기를, 혹은 희망이 도래하기를 기다리지만은 않았는지, 그리고 지레 겁먹고 포기해오지는 않았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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