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전 III 파트2 18화
[델라리움 연구소]
란 : 오늘도 또 이상한 실험이냐?
베라모드 : 어? 언제 왔어, 란?
란 : 지금 막... 하여간 지겹지도 않은가 보다, 넌. 뭐가 좋다고 맨날 이런데 틀어박혀 있냐?
베라모드 : 어차피 나야 ESP보다 생명공학 쪽에 더 관심이 많으니까. 사실 아벨리안 같은 데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어, 엠블라가 원하니까 마지못해 원서를 내본 것 뿐이라구.
란 : 에라, 이 자식아, 4등으로 붙었으면서 누굴 놀리는 거야.
베라모드 : 하하, 그러는 너도 9등으로 합격 했잖아.
란 : 됐다, 됐어. 오늘은 그런 시시한 얘길 하러 온 거 아니니까. 사실 좀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겼거든.
베라모드 : 구경거리라니...?
란 : 가보면 알아. 너도 가끔은 바깥 공기 좀 쐬라. 이런 칙칙한 데서 하루종일 이상한 연구만 하고 있다간 머리 속에 곰팡이 핀다구.
베라모드 : 하아... 알았어, 알았어.
[제타로 가는 길]
베라모드 : 이곳은?
란 : 제타로 통하는 던전이지. 이곳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몬스터들이 풀어져 있어. 뭐, 그래봐야 슬라임 정도니까 우리 실력이면 문제 없을 거야! 자, 어서 서쪽의 입구로 빠져나가자!
[제타]
베라모드 : 이거, 레마누 교의 집회지? 소문으로 듣긴 했는데 정말 신비한 분위기네.
란 : 응.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레마누 교에선 늘 이렇게 자신들의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집회를 연다더라.
베라모드 : 구세주? 그 '마에라드' 인가 하는 거 말야?
란 : 응. 고대어로 '전체의 구원자' 란 뜻이라나.
베라모드 : 마에라드가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그게 레마누 교에서 말하는 구원이었지?
시빌라 : ...그렇지. 밖에서 온 손님들치곤 잘 알고 있구만.
란 : ...누구시죠?
시빌라 : 홀에 머무는 늙은이라네.
란 :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외부인이란 걸...?
시빌라 : 차림새부터가 다른 데 누가 모르겠나. 자네들도 이 레마누의 집회에 흥미가 있는 건가?
란 : 그냥... 우연히 구경 왔을 뿐인데요.
시빌라 : 우연이라... 세상에 우연은 존재하지 않아. 모든 일에는 시작점이 있고 거기서는 무수한 인과의 선들이 뻗어나오지. 그것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들면 결국 시작과 끝을 짚어낼 수 없을 정도가 된다네. 그렇게 되면 필연도 우연으로 착각하기 쉽지.
란 : 그, 그런가요?
베라모드 : 그럼 오늘 저희가 여기 온 것도 결국 필연이라고 말씀하시는 거군요.
시빌라 : 자네... 결국 기약 없는 재회만을 믿고 모든 걸 내던졌군. 하지만 이게 당신이 바랬던 건 아니라네.
베라모드 : ...네?
시빌라 : 그대, 마음 속 홍련의 불꽃이 때로는 그대의 의지에 반(反)해도 그대를 감싸주니 그것이야말로 그대를 지키는 유일한 수호자.
베라모드 : ...?
시빌라 : 그대, 과거를 잃어버린 혼돈은 스스로가 풀어야 할 과제, 그 답은 무의식에 봉해져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그대를 깨우는 진실의 안내자. 그대,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는 평온과 달리 어디서나 그대 가는 곳 붉은 피가 흐르니 그것이야말로 그대를 괴롭힐 시련의 지배자.
베라모드 : 지금 대체 무슨 얘길 하신 거죠?
시빌라 : 새겨들어도 좋고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네. 예언은 어차피 이루어진 뒤에야 깨달을 때가 더 많으니까... 자네도 결국은 그렇겠지.
베라모드 : ......
모두 저의 철없는 행동이지요/ 셰라자드님 덕분에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럴까요... /이 삭막해져 가는 투르에서...
베라모드 : 뭔가 꿈을 꾼 것 같은데...
[델라리움 연구소]
란 : 안녕하세요, 박사님? 베라모드, 있어요?
엠블라 : 어, 란이구나. 베라모드라면 아침 일찍 나갔는데.
란 : 아침 일찍이요? 어디 간다 그랬는데요?
엠블라 : 어... 글쎄... 어, 그게 물어봐도 확실히 대답을 안 해서...
란 : ...이 녀석,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엠블라 : 요새 너희들, 어딜 그렇게 다니는 거니? 이제 곧 아벨리안에 갈 준비도 해야 될 텐데.
란 : 아... 아니요, 뭐 그냥 가볍게 기분 전환이죠... 어쨌든 그럼 전 나중에 다시 들릴게요.
엠블라 : ...란.
란 : 네?
엠블라 : ...베라모드한테 잘 해줘서 고맙구나.
란 :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엠블라 : 내가 못 해준 만큼 네가 잘 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그렇게 늘 형처럼 베라모드를 대해줬으면 좋겠어.
란 :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오늘 박사님, 왠지 좀 이상하신 것 같네요. 박사님이야말로 녀석에게 친부모 이상으로 잘 해주고 계시잖아요.
엠블라 : ......
란 : 베라모드는 누구보다 박사님을 믿고 따르고 있어요. 뭐 가끔 가다 엉뚱한 짓을 하긴 하지만요... 필라이프에선 제가 옆에 붙어있을 테니깐요 걱정마세요.
엠블라 : ...고맙다.
란 : 아뇨, 뭘. 어쨌든 전 이만 가볼게요.
엠블라 : 그래, 잘 가렴.
란 : 베라모드가 연약해 보여도 심지는 강한 녀석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엠블라 : (...하지만 내 걱정은 위선일 뿐이야.)
[제타로 가는 길]
베라모드 : 여기가 어디지? 제타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지나가야 할텐데...
란 : 이런, 베라모드 바보 녀석! 빨리 베라모드 곁으로 가도록 하자!
베라모드 : 어엇... 란...
란 : 너 제 정신이니? 이 근방은 글로리 내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들 중 하나라고! 이런 곳을 혼자서 나다니다니...
베라모드 : 미안해...
란 :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제타는 여기서 서쪽에 있어. 자, 어서 제타로 가자!
[제타]
베라모드 : 이상한데. 너무 조용한 것 같지 않아?
란 : 그러게. 집회가 열렸다면 기도소리나 노랫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올 텐데.
베라모드 : ...란, 저기...!
루크랜서드 : 이곳만은 통과 못한다!
강화아델룬 : 하하, 이제 남은 건 너희들 몇몇 녀석 정도다. 이제 그만 항복하는 것이 좋을 걸!
루크랜서드 : 으음...
란 : 젠장... 아델룬이야. 불법 집회를 여는 게 들통났구나.
베라모드 : 어떡하지?
란 : 어떡하긴 뭘 어떡해? 피해야지. 아델룬한테 걸리면 우리까지 로드(ROD)로 오인 받을 거 아냐.
베라모드 : 하지만... 저 안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잖아. 홀에는 ESP가 없어 추방당한 사람들 뿐인데.
란 : 지금 그런 데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남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네 처지 먼저 생각하라고.
베라모드 : 그래도... 저렇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 역시 안 되겠어. 란, 넌 먼저 돌아가.
란 : 젠장, 저 바보가... 그럼 나만 비겁하게 도망치란 거야, 뭐야.
글로리 가드 : 뭐야, 네 놈들은...!?
루크랜서드 : 자네는...
베라모드 : 저도 돕겠습니다.
란 : 하여간... 누가 네 놈의 그 고집을 말리겠냐. 이젠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뒷일은 네 책임이라고. 정말이지... 너랑 같이 다니다가는 목숨이 몇 개나 되도 모자를 거야.
베라모드 : 후, 그거 예전에 누가 하던 소리 같은데.
란 : 젠장... 틀렸어. 이대로는 도망칠 곳도 없잖아.
베라모드 : ......
란 : 베라모드, 이제 포기해. 우리 그냥 이대로 항복... 베라모드...!?
베라모드 : 으아아아아...
[델라리움 연구소]
베라모드 : ...꿈?
리차드 : 자네는... 결국 그 방법을 고수할 생각인가?
데미안 : 당신의 불안한 방법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리차드 : 나나 자네나 결국 방법은 마찬가지일세. 단지 코어에 더 많은 영자를 넣느냐 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데미안 : 그렇습니다. 저는 어떻게 보면 당신의 프로젝트를 돕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리차드 : 왜... 그들에게 그런 고통스런 죽음을 주면서 구원해야 하나? 편안한 안식을 줄 수도 있을 것을.
데미안 : 하지만...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냥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모든 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리차드 : ......
[델라리움 연구소]
엠블라 :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네.
베라모드 : 네...?
엠블라 : 무슨 일 있었니?
베라모드 : 아... 아뇨, 그럴 리가 있겠어요.
엠블라 : 네가 별로 아벨리안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건 알아. 하지만 그 곳은 선택받은 에스퍼들을 위한 장소야.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네가 꼭 가주었으면 좋겠어.
베라모드 : ...알고 있어요.
엠블라 : ...그래.
베라모드 : ...일전에 이상한 꿈을 꿨어요. 잘은 기억 안 나지만 뭔가 제 잃어버린 기억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어요.
엠블라 :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베라모드 : 언젠가는... 기억, 되찾을 수 있겠죠? 가끔 나는 잊으면 안 되는 누군가를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엠블라 :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시간이 지나면... 흠, 그래. 시간이 많이 지나면 다 생각날 테니까.
베라모드 : ...네. (날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 당신과 나 사이의 벽은 결코 깨뜨릴 수 없는 건가요?)
엠블라 : (진실을 얘기해 버려도 좋을 텐데... 하지만 지금의 이 관계마저 깨뜨리고 싶지 않아. 넌... 결코 이런 날 이해 못 할 거야.)
[파이오니아 레지던스 거리]
베라모드 : 휴... 그 날 일, 도무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란 : 응, 동감이야.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싸우던 도중에 갑자기 눈 앞이 새하얘지더니 정신이 아득해졌을 뿐이야... 게다가 웃기게도 눈을 떠보니까 내 방 침대 위라... 어이가 없더군.
베라모드 :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란 : 그 날 불법 집회에 가드가 들이닥쳤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어. 아마도 팡테온 쪽에서도 쉬쉬하고 있는 모양이지... 아니면 방송에 내보낼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뭐지?
오퍼레이터 : 제1종 긴급경보를 발령합니다. 현재 제 3파이오니아 레지던스 32-1 구역에 폭동이 일어나 32구역 쪽으로 폭도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현 구역에 계신 분들은 급히 근처의 건물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베라모드 : 폭동...!?
란 : ...또 시작이군. 이번 달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 로드(ROD) 놈들, 대체 뭘 생각하고 이렇게 무작정 달려드는 거지?
베라모드 : 흠... 로드(ROD)들, 그 날, 가드와의 싸움에서 무사했던 걸까.
란 : 너, 쓸데없는 생각하지마. 이제 더 이상 홀에는 갈 수 없어.
로드 : 으, 으윽...
베라모드 : ...괜찮으세요?
로드 : ...다, 당신은... 도와주세요. 동료들이...
베라모드 : 당신, 로드(ROD)죠?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로드 : 제발... 제발... 그때처럼... 흰 빛으로 모두를 구원...
베라모드 : ...!?
란 : ...? 숨이 끊어진 것 같아... 가드 놈들... 아무리 로드(ROD)라 해도 이렇게까지...
베라모드 : ......
란 : 베라모드, 서둘러. 여기로 로드(ROD)와 가드들이 온다면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 자칫하다간 말려들지도 몰라. 베라모드,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베라모드 : 후우... 미안해.
란 : 야, 베라모드! 베라모드! 젠장... 대체 머리구조가 어떻게 된 녀석이야? 지가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줄 아나? 게다가 그렇게 혼자 일내고 다니면 뒤치다꺼리는 대체 누구더러 하라고... 휴우, 이젠 나도 모르겠다.
글로리가드 : 어서 집으로들 돌아가라! 이 거리는 이미 폐쇄되었다.
로드 : 제길... 기어코 우리와 피를 볼 생각인가?
글로리가드 : 너희들이 분수를 모르고 설치면 어쩔 수 없지.
란 : 계엄령이 선포된 모양이야.
베라모드 : 하지만, 이 거리를 지나지 않으면 제타로는...
란 : 네 녀석이 이렇게까지 뭔가에 집착하는 것은 처음 보겠군. 할 수 없지. 자, 로드들을 도와 가드들을 상대하자!
로드1 : 앗, 당신은 지난 번의 마에라드!
로드2 : 뭐, 마에라드라고?
로드1 : 틀림없어...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
베라모드 : 저는...
란 : 이곳도 로드들이 가드들과 싸우고 있군.
베라모드 : 제타의 시빌라님은 무사하실까?
란 : 이런 식이라면 그곳도 아마...
루크랜서드 : 모두들 무사한가?
로드 : 루크랜서드님!
베라모드 : 저들은 누구지?
란 : 로드들의 지휘자인 것 같은데...
루크랜서드 : 이 정도쯤 되면 돌파할 수 있겠군. 당신들은 기회를 봐서 그만 빠지도록 하게.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싸울 필요는 없어.
베라모드 : 네? 하지만 아직...
란 :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던 참인데 잘 됐군요. 굳이 도와주시지 않더라도 알아서 빠져나가겠습니다.
베라모드 : 란!
란 : 너야말로 한 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고집 좀 그만 부려. 지금이 집회 구경 갈 때처럼 한가하게 여유 부릴 땐 줄 알아? 계속 이대로 있다간 가드들 눈에 띌 거고 너도 나도 무사하지 못 해.
베라모드 : ...미안하지만 난 장난으로 여기 끼어든 게 아니야.
란 : 어줍잖은 동정심으로 끼어든 게 장난이 아니라고?
베라모드 : 란...!
루크랜서드 : 그래. 이쯤에서 너희들은 물러나도록 해.
베라모드 : ...네?
루크랜서드 : 그 날, 네가 흰 빛을 뿌리며 일으킨 기적, 그걸로 충분해. 로드(ROD)는 너란 존재 덕에 구원 받았고 지금 이렇게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거다. 우리는 팡테온의 지배를 받지 않고 에스퍼든 그렇지 않은 자든 구분 없이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낼 걸세. 그때가 올 때... 그 미래를 지키기 위해 네 힘을 빌릴 수 있기 바란다.
로드 : ...그래요. 일단은 여길 피하세요. 로드(ROD)도 아닌데 실패할 지도 모를 이 혁명에 뛰어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미래에 마에라드의 기적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베라모드 : ...그 기적이란 게 뭐죠?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왜 저를 다 마에라드라 부르는 거죠?
루크랜서드 : ...미안하지만 더 얘기할 틈이 없는 것 같군.
란 : 자, 가자! 베라모드!
베라모드 : 하... 하지만... 그럼, 저희는 이만!
루크랜서드 : 자, 길을 비켜라! 훗... 녀석들은 무사히 빠져 나갔으려나... 엠블라도 걱정이 많겠군.
[델라리움 연구소]
엠블라 : 어... 어, 베라모드... 무슨 일 있니? 안색이 안 좋은데.
베라모드 : ...좀 피곤해서요.
엠블라 : 응... 그래?
베라모드 : 들어가서 쉴게요.
엠블라 : 그러렴...
베라모드 : ......
란 : 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로드(ROD) 편을 드는 거지? 좀 냉정하게 들릴 진 모르겠지만 솔직히 너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잖아. 게다가 지금 상황은 단순히 정의감으로 뛰어들만한 일이 아니었다구.
배라모드 : ......
란 : 대체 이대로 가드와 계속 싸워서 뭘 어쩔 셈이었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팡테온의 불공평한 처사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겠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넌 단지 알량한 동정심으로 그들을 편든 것 뿐이잖아.
베라모드 : ...동정하는 게 그렇게 나쁜 거야? 아까 그 로드가 쓰러져 죽어가는 거, 너도 봤잖아. 그가 필사적으로 도와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모른 척 돌아서란 거야? 그래, 미안하다. 난 너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은 할 수 없으니까.
란 : 그래서 너 혼자 폭탄 들고 자폭하겠다는 심사로 거기 뛰어든 거야? 그래, 네 행동은 잘못되지 않았어. 좋은 일이지, 궁지에 몰린 사람 도와주는 거.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상황은 고려했어야 하잖아. 그 위험 속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네가 얼마만큼의 도움을 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해? 게다가 만에 하나 잘못 되면 넌 너 하나 끝나는 걸로 족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너랑 관계된 사람들한테도 피해가 가긴 마찬가지야. 남겨진 사람은 대체 뭐가 될 것 같냐? 그 사람들 기분을 생각하지 못한 채 행동한 너나 로드(ROD)를 돕지 않은 나나 결국은 마찬가지 아냐?
베라모드 : ...먼저 갈게.
엠블라 : 들어간다. 무슨 일 있는 거니? 굳이 얘기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지만...
베라모드 : 별일 아니에요. 그냥 좀 피곤했을 뿐이에요.
엠블라 : 란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내가 어설픈 거짓을 말하듯 그도 내게 완벽한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다.)
베라모드 : ...그냥 좀 다퉜을 뿐이에요. 모르겠어요. 남을 돕고 싶은 마음, 단지 그 생각 때문에 앞뒤 보지 않고 달려들긴 했지만 결국은 그게 이기적인 행동이 될 줄은 몰랐어요. 나의 행동 때문에 피해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몰랐던 건 아닌데 그 순간에는 그런 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엠블라 : ...남을 생각했다는 건 결코 이기적인 게 아니야. 단지... 하나의 행동에는 어느 정도 득실이 있으니까. 란은 네 행동으로 인해 잃게 되는 면을 강조하고 싶었던 거겠지. 설령 그게 남을 생각하는 행동이었다고 해도 말이야.
베라모드 : ...그럼 엠블라는 길에 쓰러져 있던 절 이렇게 데려왔을 때... 그 행동으로 인해 잃은 게 있었나요?
엠블라 : ...있었지. 하지만... 얻은 것도 있었어. (...그게 넌 뭐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베라모드 : 아... 다행이네요. 얻은 게 없다고 하면 어쩌나 했어요. (그건 진실이길 바랄게요... 엠블라.)
데미안 : 오랜만입니다, 누님.
엠블라 : 음... 오랜만이구나.
데미안 : 이제 슬슬 베라모드도 필라이프로 출발할 텐데... 누님도 돌아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안 그래도 이번에 누님을 뵙고 베라모드도 만날 겸해서 글로리에 와 있습니다.
엠블라 : 굳이 올 필요까진 없을 텐데. 지금 내겐 내 나름대로 할 일이 있어. 당분간 아르케로 돌아갈 여유는 없을 거야.
데미안 : 여전히 냉정하시군요, 누님은. 이제 그만 아버님 마음도 헤아려 주시지요. 안 그래도 아버님은 은근히 누님을 보고 싶은 눈치신데다 2차 오딧세이 프로젝트 때는 누님께 모든 지휘를 맡기고 싶어 하시니...
엠블라 : ...알고 있어. 전부터 그러셨지. 내가 출발하면 다음에는 네가 따라와야 된다고... 하지만 어차피 후발대 같은 건... 이제 유명무실 해졌잖아.
데미안 : 누님...
엠블라 : 게다가 너도 그의 일로 내게 그다지 좋은 감정은 아닐 텐데...
데미안 : 누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누님이 마음만 먹으시면 누님도 함께 오딧세이에...
엠블라 : 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니 이만 끊자... 더 이상 할 얘기 없다고 했잖아!
리차드 : 이런, 누구하고 통화했길래...
엠블라 : 리차드...
리차드 : 오랜만이군. 그 동안 잘 지냈나?
엠블라 : 네. 리차드는요?
리차드 : 나 역시 잘 지냈네. 베라모드도 잘 지내고 있나?
엠블라 : 네, 변함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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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