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의 역사 2-1: 계량생물학의 등장과 두 이론의 대립

in #darwin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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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생물학의 등장


때는 바야흐로 1800년대 말... 반-다윈주의자들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다윈과 적대했던 자연철학자들은 자기들끼리 연합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었던 반면에 라이엘-헉슬리-갈턴 등으로 이어지는 다윈의 옹호자들은 견고한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윈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던 단위는 캘빈을 중심으로 뭉친 물리학자들이었습니다. 지구가 식는 속도를 열역학적으로 계산했을 때 다윈이 주장하는 방식대로 진화가 일어나기에는 지구의 역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진화와 자연사(Natural History)를 연구하던 사람들과 물리학자들은 서로 다른 연구집단에 속했던 탓에 이마저도 서로 관심이 식으면서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다윈의 옹호자들 중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다윈의 친척 중 한 명이었습니다. <종의 기원>에 깊이 감명받은 그는 다윈의 이론이 인간 집단에 가지는 의미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칩니다. 우생학자였던 그는 키, 체중 등 인간의 다양한 형질을 데이터로 수집하였으며 이를 통계적인 방법으로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Regression Towards Mediocrity in Hereditary Stature(1886)는 원시적인 형태의 회귀모형(Regression Model)을 사용하여 부모의 키와 자식의 키가 가지는 관계를 알아보려했던 연구입니다. 그는 해당 인구집단의 평균키와 자녀키의 차이가 해당 인구집단의 평균키와 부모키의 차이에 비례한다는 것을 관찰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부모의 키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녀에게 되물림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림 1. Regression Towards Mediocrity in Hereditary Stature 에 등장하는 자녀키-부모키의 관계를 설명하는 그림.

골턴의 주장은 다윈의 점진주의(Gradualism)을 지지하는 증거로 이용됩니다. 다윈은 진화가 충분히 천천히 일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키도 (골턴의 연구처럼) 유전되는 것이라면 진화하는 집단의 평균키도 점진적으로 바뀌겠죠. 그런데 키는 관찰된 바와 같이 연속적으로 분포하는 형질이므로 키의 점진적인 진화는 분포의 연속적인 변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윈의 점진주의는 구체적으로 이러한 연속적 분포의 연속적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후 골턴은 수학자 칼 피어슨(Karl Pearson)과 동물학자 월터 웰던(Walter Weldon)과 의기투합하여 Biometrika라는 학술지를 창립합니다(1901). 물리학의 발전과 함께 수학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의 증거로 여겨지던 당시의 흐름에 발 맞추어 다윈 진화론도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멘델주의와 다윈주의의 대립


그렇다고 다윈의 적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반-진화론자와 반-다윈주의적 자연철학자들이 사라진 자리를 멘델주의자들이 메꾸게 됩니다. 1865년 출판된 멘델의 연구는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드 브리스(de Vries, 1900), Correns(1900), Tschermak(1900)에 의해 재발견 됩니다. 다윈이 점진주의를 주장했던 것과 반대로 드 브리스는 급진적인 진화를 주장했습니다. 달맞이꽃(Oenothera 속)을 관찰하던 그는 부모와 매우 다른 형태의 모양을 가진 꽃을 발견합니다. 그는 이걸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나아가 일련의 실험을 거쳐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발견한 그는 돌연변이설을 뒷받침해줄 유전이론을 찾았다고 판단하고 이를 베이트슨(Bateson)에게 보냅니다. 원래 자기 연구를 발표하려고 기차를 타고 학회에 가던 베이트슨은 기차에서 드 브리스와 멘델의 논문을 읽다가 마음을 바꿉니다. 학회에서 자기 연구가 아닌 드 브리스의 발견을 발표해버린 것입니다. 드 브리스의 돌연변이설이 다윈의 점진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아주 단호한 어조로 '멘델이 맞을 수도 있고 다윈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절대로 둘 다 동시에 맞을 수는 없다' 라고 선언합니다.


그림 2. 달맞이꽃

다윈주의자들이 보기에 자연의 변이들은 (사람의 키가 그런 것처럼) 연속적이었습니다. 반면 멘델주의자들이 초파리, 강낭콩, 달맞이 꽃 등에서 관찰한 변이들은 불연속적이고 뚝뚝 끊겨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둘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었죠. 동시에 이 갈등은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두 생물학자 집단의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바깥에서 자연을 탐구하던 자연주의자(Naturalist)들과 1800년대에 들어 확립된 실험실의 전통 따르는 실험주의자(Experimentalist)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전자는 정확히 다윈이 자연에서 관찰했던 그것을 보고 있었고, 후자는 정확히 멘델이 콩밭에서 관찰했던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서로 자기가 본 게 정확하고 더 중요하다고 우기니 절대로 끝날 수가 없는 싸움이었죠. 그런데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전선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 이 시간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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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때 진짜 좋은 글인데 보팅이 낮아서 너무 아쉬워요 ㅠㅠ 꾸준히 kr-science에서 활동해주셔요 매일 글읽겠습니다.

질문하나 드려도 될까요? 그 진화가 연속적이고 불연속적이라고 본문에 자주 보이는데 키는 왜 연속적이고 달맞이 꽃은 불연속적인가요? 그 기준이 뭐에요?? 딱딱끊긴다는게...

그 기준이라 함은 그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직관적으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키의 분포는 연속적으로 관찰되는데 강낭콩의 색깔은 (예를 들면) 초록/노랑이 이산적으로 구분되니까요.

아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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