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에 대한 생각(1)

in #cyptocurrency7 years ago (edited)

(1) 기술의 이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어떤 기술이든 전통적인 체제 내부의 상품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들간의 대결로 종종 그려진다. 수 없이 반복된 논쟁의 변주인 것 같다. 예컨대 인터넷, SNS, 스마트폰, 전자책, 공유경제같은 신기술을 둘러싼 담론에 각각의 주장을 일대일 대응시킬 수 있다. 화폐가 특별히 중요하고 작동 원리가 특수하여 질적으로 다른 논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개 사용자인 나에게는 그렇다. (좋은 분석이 있으면 링크바랍니다.)

(2) 왜 하필이면 코인에 열광했는가? 일단은 블록체인 기술의 혁신성이 주목을 받았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거래소 혹은 개인키를 보관한 매체가 해킹당한다면 어떤 암호화 기법이건 무의미하다는 걸 이용자들은 이해하고 있다. 교환을 매개하는 주체가 없고 중앙에서 통제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업비트에서 관리하는 코인들을 수수료 내면서 열심히 사고 파는 모습이다.

(3)a 코인에 관한 정보가 전파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코인거래(특히 ICO)를 하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정보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백서다. 백서는 이 코인을 누가, 왜 발행했고, 어떻게 쓸 것인지를 소개하는 사업계획서다. 실상을 말하자면 백서는 누가 더 그럴 듯한 정보를 만들어서 투기 세력의 관심을 받을지를 예측하는 수단이다. 백서의 계획이 실현된 사례는 극히 드물고, 사람들은 그 기술과 경영능력을 평가할 능력이 없다. 원대한 사업의 시작점일 수도 있겠으나, 현재로서는 그럴듯한 찌라시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이 찌라시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대표자는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에게 직접 사업을 홍보한다. 그리고 해당 코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카톡방이나 텔레그램 방이 열리면 각종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고수의 말에 집중한다.

기존의 일개 투자자가 주식투자를 할 때는 이런 정보를 직접 접할 수 없었다. 뒤늦은 찌라시와 지인의 추천과 자신의 감에 의존했던 기존의 개미들에게 '코인질은 투기다'라고 말하는 건 그래서 불편하다. 투기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주식도 부동산도 투기였다. 다만 코인은 정보가 열려있고 우리 손으로 움직이는 (그렇다고 믿는) 투기였다.

(3)b 거래의 접근성도 중요한 요소다. 웹브라우져나 핸드폰만 있으면 간편히 할 수 있다. 한국인을 괴롭히던 공인인증서, 주식투자의 장벽을 높히는 증권계좌 개설, 복잡한 HTS도 필요하지 않다. 혁신이란건 블록체인이 아니라 인터페이스에 있었다. 접근만 가능하면 사람들은 돈 되는 것 무엇이든 한다. 청소년의 참여도 전혀 새롭지 않다. 코인 이전에 토토와 그래프게임이 유행하고 있었다.

(3)c 커뮤니티의 급속한 확산도 촉진재 역할을 했다. 스팀잇, 코인판, 거래소 게시판, 비트코인 갤러리 등에서 사람들은 의견을 교류한다. 위에서 말했던 카카오톡과 텔레그램방에서도 수천, 수만명이 모여 있다. 물론 건전한 모습은 아니다. '세력 모집합니다'라는 글이 버젓이 올라올 정도다. 아무튼 이런 대형 커뮤니티의 등장이 코인 시장이 급격히 몸을 불리게 했고 호재/악재에 의해 가격이 요동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3)b와 (3)c에서 말한 특징은 젊은 세대에게 특히 어필했다. 코인거래는 작은 금액으로도 시작할 수 있고, 유행을 전파시키는 집단을 사로잡았다. 우리 세대는 사이버머니에 익숙한데, 단순히 그것에 익숙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실체적 가치를 가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의 화폐와 아이템은 현금으로 거래되고, 가상 세계의 권력이 현실의 영향력으로 연장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코인질이 게임 이상의 게임이 될 수 있었다.

(4) 정리하면, 혁신적인 기술로 주목을 받은 상품이 나왔는데 1)사람들에게 정보가 공평하게 분배되고ㅡ그렇다고 믿어지고) 2)쉽게 거래에 접근할 수 있고 3)그것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유행하여 지금의 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내재적 평가 혹은 시장에서의 전망과는 무관하게 내가 경험했던 코인 세상에서는 이랬던 것 같다. 코인이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어도 이런 성질을 만족하면 투기 열풍이 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농산물 선물거래가 주목받기도 했다.)

탈세, 자금세탁, 노동의 가치 폄하, 일상의 붕괴와 같은 문제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현재의 행태는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관료적 조치를 통해 문제를 막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2017년 젊은 한국인들이 왜 코인에 열광했는지는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 사회를 통치하는 입장에서는 그들의 에너지를 어떤 영역으로 돌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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