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찍힌 사랑steemCreated with Sketch.

in #couple7 years ago

통장에 찍힌 사랑/노자규웹에세이스트
출처 : 웹에세이스.. | 블로그
http://naver.me/xewpQSOi
통장에 찍힌 사랑

남편과 저는
같은 직장에서 만나 사랑을 키우며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우리에겐 꿈이 있었습니다
각자 월급의 절반씩을 저축할
둘만의 통장을 만들어
만기가 되는 날 결혼식도 올리고
집 장만도 하자며
5년을 그렇게 붓다 보니
아침이 창문을 열고 들어오듯
우리에게 축복을 안겨줄
그날이 찾아오는 날

저희들은 꿈에 부풀어
이제 그렇게 원하는 결혼식도 올리고
조그만 집 전세로 시작할 수 있다며
서로 부둥켜안고 밤새도록 밤거리를
헤매 다니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예식장을 보러 가자며 정한약속시간에
남편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저무는 하루를 거리에 걸어두고
집으로 찾아가 보니
통속한 생애를 예견하듯
술냄새가 온방을 가득 메우고
셀 수 없는 술병들이 너부러져 있는
똑같은 모습으로 남편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갇힌 바람이 울고 있듯
통곡에 가까운 절규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내 돈... 내 돈....」

"왜 그러는데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알지 "
하늘이 무너져 내리 꽂히듯 내뱉는
남편의 말은 이러했습니다
친구회사에 약속어음이 돌아왔는데
급하게 하루만 빌려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돈을 빌려줬다는 남편
그 이후로
그 친구는 종적을 감췄고
그 친구에 집엔 남편과 같은 사연으로
채권자들만 모여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얘기를 듣는 순간
털퍼득 주저앉은 채
"어떡해
그럼 우린 어떡해"

너무 어이가 없어
울음조차 나오질 않았습니다
아내는 아픔이란 단어가
이렇게 뼈저리게 박혀진 날은 없었다 말합니다
어느 절간을 오르는 돌계단에
촘촘히 박힌 이끼들처럼 말이죠

모래알 움켜쥐듯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진 시간은 가고
친정에서 마련해준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된 우리는
오년을 더 열심히 아끼고 모아 결혼식을
꼭 올리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부부는
인생에서 한 박자 쉬어가는 법을
배우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남편은 자신 때문에 결혼식도
못 올려 준 것이 미안해서인지‥

그 친구에 대한 배신감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아서인지‥

표백된 시간들 너머로
잠을 좀처럼 이루지 못하고 하루를 무덤처럼 뜬눈으로 밤을 샌 뒤 걸음마다 주름살을 달고 출근한 적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옥상에 세탁된 옷들처럼
마음을 세탁해서 걸어두질 못한 남편은 현실을 잊기 위해 밤마다 술과 수면제로 하루를 사는 날이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상처”라는 한 음절의 글자만
머리맡에 걸어둔 채
잠을 못이르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다니는 직장에서도 결국 사표를 냈고
가난이 질퍽거리는 길바닥을
헤매 다니며 일용직으로 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의 흐느끼는 눈물도
남편에게는 방부제가 되지 못하든
어느 날
남편은 약물에 중독된 삶이 마치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인 양
모아진 날들을 끝으로 결국
간암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른 잎 가슴으로 떨어지는 아픔이
우리 두 사람에게 긴 그림자 되어
다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간암 말기가 되니
복수가 차고 다리가 붓기 시작해
걷기도 힘든 남편

“여보 미안해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

이제야 막다른 골목에서 가슴에
모난 돌들이 박힌 게 보이나 봅니다

아침에 담당의사가
병이 심해져 3개월의 진단을 내리고 나가버립니다
인생의 도처에 기다리는 이별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남편에 비해
아내는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서 맨발의 슬픔으로 대성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려댑니다

기적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일어날 거라고 그렇게 믿었건만‥

당신이 느낌표 하나로
남아있더라도 같이 있기를
그렇게 기도했건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성냥불에 타만만 종이위에 글자들처럼
눈물을 등 뒤에 감추고 병실로
들어오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고개숙여 무언가를 결심한 듯합니다

부질없는 날들이 걸린 병원에서
병으로 죽기 전에 꼭 아내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결혼식”

남편은
결혼식이 이 세상에서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란
생각이 들어 그 선물을 주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아내도
병실에 누워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견디다 잠든 남편을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남편의 마지막 여정을 떠날 수 있게
비에 젖은 그에게 우산보다 같이 걸어주어야겠다며
죽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남편을 말에 허락을 하는 아내

이틀 만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급히 치른 결혼식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친정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던 신부가
항암치료로 광대뼈가 움푹 파여
야윈 얼굴에 머리카락이 다 빠진
남편을 보고 가슴이 미어져
그 자리에서
얼음 밑에 흐르는 물이 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진통제를 맞고
간신히 버티고 있던 신랑은
뛰어가 아내를 안고
같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하객들은 그 장면을 차마 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습니다.

그렇게 결혼식을 마친 후
이틀이 흐른 뒤
사랑하는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신혼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밤이 찾아와 길을 지우듯
세상을 떠났고 말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면서
“고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눈을 감았고 다시는 뜨지 않았습니다
계절에 길목에 선
슬픈 구월에....

남편이 죽은 지 한 달이 흘렀습니다
삶은 달걀을
반으로 쪼개면
닮은 보름달
그런달을 보며
나 홀로 깊어지는 가을날을
올려다 보는 아내
달과같이 걷다 남편이 좋아하는
붕어빵을 사들고 집으로왔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남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고는 한숨을 쉽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
멀리 여행을 떠난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며...
남편의 죽음을 보면서
아직 남아있는
뒷모습을 정리하지 못한 까닭을
생각하게 되는 아내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헐거운 마음으로
보내지 못한 계절 위에서

“멀리 있어 그리운 이름처럼
참 좋은 인연이었다고.....

행복하여었다고
달래어 보지만
그래도 이별은 슬프다 말합니다

그 후 아내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눈물의 결혼 앨범을 꺼내
그 날의 남편 모습을 보고 힘을 얻습니다.

“여보 너무너무 고마워
당신의 아내라서
너무나 행복했어"

"사랑해 "

유품을 정리하다
남편의 가방에서 나온 파란색 통장

「현금출납기 앞」
남편의 울음을 닮은
기계음이 끝난 뒤

통장엔

“결혼식 꼭올리자“를 시작으로
입금이 된 돈이 있었습니다

결혼식 꼭 올리자 10000
사랑해 10000
힘낼게 10000
아프지 마 10000
약 챙겨 먹어 10000
미안해 10000

매일 돈을 어디에 썼냐며
늘 잔소리를 할 때마다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든 남편

그날들이
아내의 가슴에 맨발에 사금파리
되는 아픔으로 박혀옵니다

마음속에 말을
통장으로 전한 남편의 마음은
죽어가는 그날까지
아내에게 결혼식을 올려주고 싶은
「남편의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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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보고 들어와봤습니다 복된하루되십시요 ^^

감사합니다 글 많이 보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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