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각서/노자규steemCreated with Sketch.

in #couple7 years ago


효도 각서 

  

어둠을 헤치면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깡마른 새벽이슬은 

살얼음 낀 물속 같은 엄마의 가슴속을 

어찌도 이리 닮았는지...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내리는 비를 

가슴으로 세기라도 하는 듯 

바라만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엄마 

뼈마디까지 사라지는 아픔으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이는 바람에도 아픔이 시려 잠 못 들고 있습니다 

갈수록 심해져가는 우울증에 힘들어할 때 

자식이라곤 하나뿐인 아들이라도 옆에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었답니다 

  


“엄마 

걱정 마 제가 늘 곁에 있을게요 

힘내셔요 “ 

맥 끊긴 엄마의 눈 속에 

햇살 되어 흐르는 아들이 있어 

힘겨운 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살뜰한 아들 내외의 바람은 

엄마의 행복이었을 테니깐요 

  


엄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늘있는 아들은 

극진히 엄마를 챙기며 

바쁜 사업을 하면서도 

수시로 엄마의 안부를 묻고 

봄볕에 햇살 닮은 담소로 엄마의 마음을 

챙겨나가는 아들이라 참 대견스럽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갑고 정 깊은 아들이 

어느 날부터 빗방울보다 많은 날들이 흘러도 

찾아오지도 쉴 새 없이 울리든

 전화조차 한번 없습니다 

기약없는 약속을 기다리며

적막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아들마저 없는 오늘이 

아프단 말마저 잊고 사는것 같았기에

처음으로 푸른 하늘이 슬픈 빛인 줄 

알게 된 것 같다 말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추석이라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겠지 싶어 

손주들줄 사탕이며 양말이랑 명절 음식에 

분산스러움을 떨었나 봅니다 

시장 아줌마들이 

“오늘 많이 사가시는 것 보니 

식구들이 많이 오나 봐요 ”


"네.. 네... 아들 내외랑 손주들이 

이 할미 보러 와요.. "


그렇게 신이난 마음으로 밤새워 만들었건만 .....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엄마는 손꼽아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오는이 없습니다


식어버린 음식을 바라보며

엄마는 남편의 영정 앞에 술 한잔 부어며


  “여보! 

“당신 너무 잊고 산다고 욕하는 거 아니지?” 

내가 하나밖에 없는 자식 놈 챙긴다고 

당신한테 소홀했든 것 미안해 

좀 더 살뜰히 챙겨주었다면 당신이 

그리 허망하게 가진 않았을 텐데...... “



낯선 목마름으로

조심스레 손주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엄마 

할미다 “ 

으.. 응... 

어디니 

어,,,,,,해외여행 왔어 

“그냥 끊어 “ 

전화기 넘어 아들의 목소리가 흘러넘칩니다 

말없이 전화기를 내려놓은 엄마는 

망부석이 된 듯 한참을 넋을 놓고 있습니다 

애달픈 넋두리는 새벽을 건너 

걸어 나온 아침이 되어서야 끝이 납니다 

이별에 울든 

버림받아 울든 

자식이 멍 되어 오는 숙명에 

시퍼런 가슴에 남은 건 

지독한 고독뿐인 것 같습니다 

  


뜻대로 안 되는 삶 

외진 밤 홀로 앉아 

혼나간 사람처럼 독배의 술잔을 

구멍 뚫린 마음에 구슬프게 채워 넣고 있는 엄마 


"술잔에 어린 건 다 아픔이더라..... "

말없이 흐르는 것이

 꽃인지 눈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술잔에 어린 원망과 슬픔에 지쳐 

돌아누운 새벽이 되어서야 

마당 한편에 남편이 만들어준

 조그만 흔들의자에 앉았습니다 

생쑥 타는 그윽한 향기 피워놓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행복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다 

조심스레 고이는 눈물..... 

  

이승의 사슬 끊고 떠난 남편에게 


“여보 

당신 힘들 때마다 여기 앉아 쉬어 “ 

하든 남편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여기 앉아 수많은 밤을 나누워든 남편의 

한마디 한마디가 알알이 어둠에서 빛을 내는 

저 별들 속에 눈물 되어 박혀 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새들에게도 노래가 있고 

          저 별들에게도 눈물이 있고 

                      아픈 사연도 있으리라 “ 

  

이제는 가고 오지 못하는 

목젖까지 차오른 남편에 대한 그리움보다 

숨이 턱에 차도록 자식 위해 내달려온 

자신에 대한 원망의 눈물이 더 깊어져 

엄마의 속은 땔감보다 더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 

끝내 이 길에 후회란 없었거라 생각했었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시린 마음 하나씩 

가슴에 담고 살아가나 봅니다 

  

사라진 흔적조차 없었든 아들이 

엄마를 찾아왔습니다 

손에 들린 종이를 엄마 앞에 

던지듯 내려놓은 아들 

한참을 그렇게 서있든 아들이 

따지듯 말을 뱉어놓습니다 

  

“왜 준 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했냐고요 

사람 바쁜데... “ 

악다구니를 피워대듯 독설을 내뱉고는 

흔적 없이 사라진 아들이 나간 그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엄마라는 모양마저 잃어가고 맙니다 


“여보! 미안해요 

제가 잘못 키웠어요 “라는 한탄이 흘러나옵니다 

열 수 없는 지퍼를 매단 것 같은 엄마의 마음은 

외마디 통곡조차 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법원에서 나온 아들의 얼굴은 

소태를 씹은 표정입니다 

그 길로 다시 엄마를 찾아온 아들은 


‘미안해 엄마 

오늘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싶었어 왔어 "

아들의 속내가 엄마의 거울 속에 비쳐 보입니다 

돈만 챙기고 날 버린 아들을 

위해 그늘로 숨겼든 마음을 뒤로하고 

손수 밥과 찬을 준비하는 엄마 

분주히 차려낸 엄마의 밥상엔 

눈물 한잔에 절망

두 스푼도 같이 놓여져 있습니다 


영민아 밥 먹어 “ 

불러도 오지 않는 아들 

그새 잠이 들었나 싶어 방으로 가본 엄마는 

그 자리에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온방을 헤집어놓은 옷가지들 사이로 

파편처럼 찢어진 종이들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울지 않고도 슬플 수 있다는 게 이런 건가 봅니다 

엄마는 두 번 알게 된 자식의 속내 앞에서 

작은 무덤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닮아있는 

갈기갈기 찢긴 종이들을 

퍼즐처럼 눈물로 맞혀가는 엄마 

얼기설기 맞혀진 종이 들위에

 “효도 각서“라는 큰 글씨 밑으로 

매일 전화 한 번씩 하기 

일주일에 한 번 엄마 찾아오기 

......................... 

......................... 

  


 남편이 죽은 뒤 의지할 때라고는 아들뿐이라 

자신의 전부를 걸었든 엄마 

하루하루 약속을 지켜나가며 

영원할 것만 같아 든 아들 내외의 행동에

효도 점수를 스스로 매겨가며 

흐뭇해 했든 엄마는 

사업자금 땜에 힘들어 하는 아들을 보며


"그래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닌데"

필요할때주 는게 맞다싶어

전재산을 넘겨주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날 까지가 아들 내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송금을 한후로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고 

지병으로 입원했을 때조차 

아들 내외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만약 이행하지 않을 시 다시 반환한다는 

그 효도 각서 때문에 

돌려줘야 할 위기에 몰린 아들은 

한 번도 찾지 않든 엄마를

 그 밤에 찾아온 것이였구요 


  효도 각서를 찾아 갈기갈기 

찢어 버린 뒤 달님같은 미소를 띄우며 

홀연히 사라져 버린 아들 

그 맘을 알면서도 따순 밥 한 끼라도 먹여

보내려는 엄마의 마음은 

시간이란 강물 위에 띄어 보낸 상처를 

애써 억눌러 보려하지만 

방안엔 칠흑 같은 절망으로 가득해보입니다 


다른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 엄마의 손에는 

서릿발에 긁혀버린 두 동강 난 마음을 닮은 

효도 각서란 빨간 지장이 찍힌  

정본이 들려있었습니다

  



새파랗게 정지된 하늘에 

유난히 쪽빛 태양이 쨍쨍 되는 날 오후 

구부정한 어깨 허기진 긴 그림자 끌고 

엄마는 집을 나섭니다 

 누런 봉투를 손에 든 엄마가 멈춰 선 곳은 법원 

키울 땐 나의 꿈이었고 숨 쉬는 이유였든 아들이 

분명한 흑백의 운명 앞에 이런 일로 

마주 서게 되는 날이 오리라곤... 

  


빛바랜 시간이 흐른 뒤 

통장엔 아들에게 준 돈이 다시 찍혀 있었습니다 

엄마는 

“사랑해 아들”이란 이름으로 

눈물한움쿰 담아 송금을 한 후 

  

구구절절한 이유와 까닭 앞에 

혼자서 긴 이별을 한 엄마는 

길가에 먼지 먹고 자란 꽃들처럼 

쪽방촌 어느 골목을 마당 삼아 지내다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끝내 아들 내외는 찾아오지 않았다 전합니다 

  

쪽방촌 골목을 돌고나온 바람이 전합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게 씁쓸한 세상사라고......




[손아래 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함] 


출처/노자규 웹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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