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17) 손바닥보다 작은 명함이 뭐라고…

in #cn7 years ago

image
명함은 현대판 보학(譜學)의 압축판이다. 이름이며 직장, 직위, 휴대전화번호, 이메일 주소까지 명함을 주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 한마디로 알려준다. 명함을 주고받는 순간 서로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위계질서마저 설핏 그려지기도 한다.
현역일 땐 명함의 효용 잘 몰라
퇴직하고 나니 그 가치 실감
소속없다는 상실감 크게 다가와

그래서 인간관리에 능한 이는 명함을 알뜰하게 활용해 입신의 디딤돌로 삼는다. 어느 후배는 받은 명함 여백에 언제, 어디서 어떤 일로 만났는지, 인상은 어땠는지, 뭘 화제로 삼았는지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러고는 해가 바뀌면 그런 명함첩을 들고 종일 “형님, 동생”하며 안부 전화를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 덕만은 아니겠지만, 그 직장에서 높이 올라 오래 살아남았다.

현직에 있을 때는 이 같은 명함의 위력, 효용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첫 직장에서 선배가 선물이라며 도장-이건 출근부에도 찍어야 하는 등 꽤 쓸모 있었다-과 명함을 주었을 땐 살짝 감격하긴 했다. 몇 군데 회사를 옮기면서는 회사 명함을 처음 받아도 그냥 그랬다. 아, 소속이 바뀌었구나 하는 정도. 그러기에 부서가 바뀔 경우엔 굳이 명함을 바꾸지 않고 사인펜으로 쓱쓱 새 부서를 써넣기도 했다.
image

그만큼 무심했다. 턱을 조금 추어올린 채 금박이라도 두른 명함을 척 내밀면서 ‘나 이런 사람이오’하는 투였던 적은 결코 없었고, 그렇다고 어디 가서 명함으로 술값을 달아놓은 일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이제는 다르다. 명함이 그리 아쉬울 줄 몰랐다. 퇴직하고 8년째, 절반 넘게 명함 없이 지냈다. 그러나 반퇴자라 해서 집안에서만 지내는 건 아니다. 그건 바람직스럽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 예전에 알던 이들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일로 얽혀 낯선 이들과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 당황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이름 석 자 박힌 종이쪽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소속’이 없다는, 그러니까 ‘간판’이 없다는 상실감에 때로는 벌거벗은 듯한 느낌을 맛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낯선 이들과 어울릴 경우 명함이 없으니 인사가 길어진다. 무슨 일을 하는지, 이름이 뭔지 알려야 해서다. 소개하는 이가 있다면 더 복잡하고 오그라든다. 내가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 칭찬 겸해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걸 듣자니 그렇다.
image

그 정도만 되어도 견딜만하다. 명함을 건네는 상대에게 이쪽에서도 명함을 주는 대신 말로 때울 때면 조금은 당황스러워한다. 뭔가 해서는 안 될 결례를 저지른 듯 하는 눈치를 보자니 이 쪽은 더 민망하다.

명함의 가치에 뒤늦게 눈 뜨고 나서 생각을 고쳤다. 이따금 일을 맡기는 후배가 “선배, 명함이라도 하나 찍어드릴까요?”라면 냉큼 받아들이기로. 아니면 세상에 돌멩이라도 던지는 심정으로 ‘어깃장 연구소장’ 같은 사제 명함이라도 찍기로.

아, 월급장이 출신의 비루함이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Sort:  


This post was resteemed by @steemitrobot!
Good Luck!

Resteem your post just send 0.100 SBD or Steem with your post url on memo. We have over 2700+ followers. Take our service to reach more People.

Pro Plan: just send 1 SBD or Steem with your post url on memo we will resteem your post and send 10 upvotes from our Associate Accounts.

The @steemitrobot users are a small but growing community.
Check out the other resteemed posts in steemitrobot's feed.
Some of them are truly great. Please upvote this comment for helping me grow.

My friend, a kind reminder here.
#cn tag is stand for Chinese.
However, no Chinese was detected in this article.
Please use wisely for your tag,thank you

Coin Marketplace

STEEM 0.28
TRX 0.13
JST 0.032
BTC 60913.71
ETH 2919.21
USDT 1.00
SBD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