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가?

in #christianity8 years ago

이슬람교는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하여 코를 땅에 대고 기도한다고 한다. 예수님 당시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3번씩 정해놓고 기도를 했다. 다니엘도 그렇게 기도했고 베드로도 이 기도방식을 따라했다. 우리네 교회도 새벽기도회를 만들어서 신실한 교인이라면 교회에서 실시하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그나마 쉬운 일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어렵지, 교회에 가기만 하면 짧은 예배를 마치고 1~20분 자신이 원하는 기도목록을 외치다 오면 된다. 하루에 3번씩 기도하는 것은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겠지만, 하나님께 일생을 바치고자 작정한 사람이라면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요구하는 기도방식은 몇 번 하라는 게 없다. 그냥 사람들이 관행으로 정해서 기도하는 것뿐이다. 왜냐면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형식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내면의 동기나 목적을 날카롭게 살피시는 분이다.

필자가 기도훈련을 시작하고 나서 성경에서 밝힌 기도방식을 이 잡듯이 뒤쳐 찾아냈다. 그 방식은 대략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은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씨름한 모습을 참고하면 된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얼마나 힘써서 기도했든지 모세혈관이 터져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보였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밝히는 기도의 태도는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기도의 모습과 상당한 격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문제이다. 알고 있다면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물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오늘의 칼럼주제는 하나님이 왜 쉬지 않고 기도하라고 하셨냐는 것이다.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투의 말씀은 예수님이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사무엘은 한술 더 떠서, 자신은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했으니까 각오가 대단했나 보다. 이런 기도를 실행에 옮긴 사람은 백부장 고넬료였다. 그가 항상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맞이했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기도훈련을 시작하고 나서 큰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쉬지 않고 기도하는 빈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에 세 번이나 다섯 번을 말씀하셨다면 그렇게 실행하면 되는데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게 하루 종일 밥만 먹고 기도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새벽기도회에 나가기만 해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인가, 판단하는 것이 어려웠다. ‘쉬지 않고’ 라는 말의 헬라어는 ‘아디아레이프토스’인데, 이 말의 뜻은 ‘끊임없이’이다. 그렇다면 이 말의 의미를 아는 게 어렵지 않다. 하루 종일 틈만 나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닌가? 사실 기도의 강을 건너고 성령께서 이 말의 의미를 말씀해주셨는데, 기회가 나고 틈이 나면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알고 실행하고 있었으니 필자에게 먼저 깨달음으로 알게 해주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필자가 이 기도를 실행에 옮기면서 드는 생각이 ‘하루 종일 기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삶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 고민하고 말고가 없었다. 벼랑 끝에 매달린 형국이라, 무작정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나자 필자는 기도머신이 되었다. 말 그대로 기도하는 기계가 된 셈이다. 아침과 밤에 정해는 시간을 물론이고 낮에도 한가하거나 틈이 나면 무조건 기도하고 있는 필자를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어려운 기도를 우리에게 주문하셨을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4~36)

예수님이 항상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 늘 깨어 있어야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앞서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마음이 둔하여지고 돈을 벌고 쾌락을 쫒는 세상일에 빠져 하나님을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심판대에 서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마음을 둔하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가? 방탕, 술취함, 염려, 근심, 걱정 등이다. 이 말은 죄의 목록으로 성경에서 나열하고 있는 게 아닌가?(갈5:19~21) 그렇다면 죄를 짓게 하는 게 누구인가? 바로 사탄이다. 사탄의 특징은 부지런하고 집요하다는 것이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다. 이처럼 악령은 쉬지 않고 우리 주변을 배회하면서 틈을 노리고 생각을 틈타고 들어와 교묘하게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고 속이며 죄를 짓게 한다. 그러므로 이들을 막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의 도우심 밖에 없다. 성령께서 이들의 공격을 알아채게 하시고 막아주셔야 가능하다. 이처럼 사탄이 쉴 새 없이 공격하기 때문에 우리도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

또 다른 성경을 찾아보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 뒤에는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이 곧바로 이어서 나온다. ‘소멸하다’는 헬라어로 ‘스벤뉘테’인데, 이 말의 뜻은 ‘(불을) 끄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앞뒤로 이어보면, 성령의 불(활동)을 끄지 말게 하기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이유는 성령께서 늘 우리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게 하시려면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 필수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크리스천을 보는 일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나가 20분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추겨 세워주는 판에,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것은 마치 불가능한 벽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 스스로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니 교인들에게 성경적인 기도의 태도를 가르치고 격려할 리가 없다. 쉬지 않고 기도를 하려면 인생관이 바뀌어야하며, 삶의 방식도 기도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가능하다. 말하자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위해 목숨조차 바칠 수 있는 결연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 그래서 천국이 좁은 문이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소수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이 계시지 아니한가?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못 할 일이 없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은 어렵지만, 시작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면 불가능하지 않다. 영원한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 땅에서도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살게 된다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미리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쳐서는 안 된다. 사탄은 이런 기도를 못하게 하려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넣어주고 두렵게 한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하고 항상 기도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의 주변을 두루 다니면서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지 않는 자들은 사탄의 희생물이 되어 영혼과 생명을 유린당하고 유황불이 활활 타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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