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원하는 것은 물고기인가, 그물인가?

in #christianity7 years ago

필자는 평신도 시절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교회에 다녔다. 워낙 큰 교회라 담임목사의 얼굴을 보는 것은 예배시의 설교 때가 전부였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줄 지어 서있는 걸 보았다. 그래서 그 줄이 무엇인가 물어보니 담임목사에게 기도를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주변에 그러한 줄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유명한 강사목사를 초빙해서 부흥회라도 여는 날에도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있으며, 기도원에 가도 기도원 원장에게 기도를 받으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기도를 받으면 문제가 해결되고, 응답이 신속하게 내려오는가?

필자도 적지 않은 시간 기도를 해 오고 있으며, 부족하지만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코칭해 주는 사역도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도요청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어느 문제이든지 기도로서 해결 못할 일은 없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보기도를 해오면서 하나님이 해결해주시는 원칙들을 발견하게 된다. 필자가 가장 신경을 써서 기도를 해주는 문제는 귀신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이들이다. 특히 귀신들이 잠복해있어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일으키며 삶을 불행으로 빠뜨리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왜 강력한 기도가 필요하냐면, 본인이 기도를 해도 악한 영이 잠복해있는 경우에는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격렬하게 반항하기 때문에 깊은 기도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기도 코칭를 통해 이들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후에 필자에게 오라고해서 축출기도를 해준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중보기도를 해주는 경우에는 빨리 응답이 오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본인이 기도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응답이 빨리 오지만, 본인이 기도할 수 있지만 기도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응답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을 통해 얻은 결론이므로 거의 확실하다. 그래서 필자는 중보기도를 부탁한 모든 경우에는 본인의 기도훈련을 요구하여, 이에 동의한 경우에만 기도를 해주고 있다. 그러나 본인이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기도에 힘입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들은 드물다.

또한 많은 이들이 부흥집회나 찬양예배, 혹은 기도원 등에 가서 격앙된 분위기를 통해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며 기도응답을 받으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자신도 모르게 그런 집회를 통해 은혜를 경험하거나 응답을 경험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뜨거워지며 성령이 임재 하는 은혜를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삶에 바쁘다보면 그 은혜는 속절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또 다시 건조하고 냉랭한 삶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견딜 수 없어지면 다시 기도원의 은혜를 사모하며 다시 짐을 꾸려 기도원으로 출발하지만 이번에는 빈손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경우에는 조건 없이 은혜를 주시는 경우가 있지만 반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도원이나 특별집회에서 응답을 받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두 번 응답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런 일이 매번 지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삶에 힘이 없고 신앙의 능력을 상실한 채 신앙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 지쳐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소년이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베풀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만 여러 광주리에 담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기적을 베풀고 나자마자 제자들을 독려해서 그 자리를 재빨리 빠져나왔다. 그리고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으려고 우왕좌왕 했지만 끝내 예수님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왜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듯 나오셔야 했을까? 기적을 맛본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에 취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기대려고 할까봐서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았다. 맹인이 눈을 뜨고, 중풍병자가 낫고, 귀신이 쫓겨 나갔으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회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다시 눈을 뜬 맹인이나 중풍병자라도 세월이 흐르면 늙고 병들어 괴로워했을 것이다. 쫓겨나간 귀신들이 다시 들어오는 경우도 흔한 일이며, 다시 살아난 사람도 언젠가는 영원한 죽음이 그를 찾아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는 다시 예수님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찾아 나섰다고 하더라도 이 땅에 계시지 않으셨을 게 분명하다.

매번 다른 사람으로부터 물고기를 얻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는 선뜻 주었을 지라도, 두 번째는 부탁하기 어려울 것이며, 세 번째는 간곡한 호소에도 바쁘다며 황급히 도망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왜 다른 사람들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는 것인가? 당신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그물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특정한 사람들의 기도만 응답해주시는 것이 아니다. 당신도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통해 기도의 강을 건너가면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응답을 받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며, 기도원이나 부흥집회를 찾아간다 하더라도 문제를 해결 받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스스로 능력 있는 기도를 소원하지 않는가?

아니, 자신도 그런 능력 있는 기도를 소망하고 있다고? 아하, 그렇다. 필자가 깜빡했다. 그런 소원이 없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마음으로만 소원하지, 실상 대가를 지불하고 훈련을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필자는 당신이 그런 마음이 없는 줄 알았다. 아시겠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절대로 공짜가 없다. 특히 영적인 능력에는 철저하다. 세상에는 줄을 잘 서거나 고급 정보를 얻는 자리나 운이 좋아 특혜를 얻을 수 있는지 몰라도 하나님 나라에는 그런 게 절대 없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공의라는 히브리어는 공평하다는 의미이다. 하늘나라에 가서 얻게 되는 상급이라는 말의 원래의 뜻은 보상이다. 보상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특정한 믿음의 행위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거저 물고기만 얻으려 하지 힘들게 물고기를 잡을 그물을 짜려는 생각이 없다. 필자에게 기도 코칭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에서 약 삼분의 일만이 끝까지 인내하며 남아있다. 아마 기도 코칭을 받을 생각조차 없는 크리스천들까지 헤아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노력하지 않고 공짜로 얻을 생각만 하고 있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 어렵사리 해결 받은 가난한 과부의 비유를 마치면서,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가진 자를 보겠느냐고 쓸쓸하게 읊조린 까닭이다.

그래도 필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공짜는 없지만 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이 찾아오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말라고 간절히 호소하며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하나님을 찾을 생각을 간절히 주신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할 일까지 대신 해주지 않는다. 기도훈련을 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애쓰고 노력한다면 힘을 주시고 감당할 능력도 주시겠지만,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천국의 자격은 언감생심이고 이 땅에서 평안하고 형통한 삶은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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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choice. I don't know all of them, but it is an opportunity to follow your list and do some research. good work, keep it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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