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최고봉에 오르는 비결
크리스천들이라면 누구나 반석 같은 믿음을 갈구한다. 믿음은 모든 기도응답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겨자씨같이 작은 믿음만 있다면 귀신을 쫒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기적을 부르는 영적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믿음을 얻기 위해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마다하지 않으며 엄청난 헌금도 아깝지 않게 드린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경에서 약속한 믿음을 얻은 사람은 극소수이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 틀림없겠지만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보기 어려운 게 우리가 마주한 딜레마이다. 그럴수록 삯꾼목자들과 거짓목자들이 다가와서 그럴듯한 말로 유혹하며 꼬드기고 있다. 오랜 신앙의 연륜이 있는 교인들조차 어설프기 짝이 없는 그들의 요구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능력을 얻는 게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삯꾼 목자들과 거짓목자들이 요구사항은 무엇일까? 그들의 요구사항은 언제나 돈으로 귀결된다. 희생적인 기도행위와 더불어 많은 헌금을 바치면 된다는 식이다. 작정기도를 이행하고 매일 헌금봉투를 드리라고 하는 것은 상투적인 수법이다. 교회뿐 아니라 기도원에도 마찬가지이다. 말이야 조금씩 다르지만, 어째든 두둑한 헌금봉투를 드리면 다 된다는 식이다. 이들은 불행한 삶에 빠진 사람들의 약점을 쥐고 헌금봉투를 두둑이 드리면서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응답이 신속하게 온다고 한다. 이러한 투의 행위는 무속인들의 행태와 너무도 닮아있다. 몇백만 원짜리 굿을 해야 한다는 요구와 무엇이 다른가? 그런 요구는 무속인 뿐 아니다. 절집에 가도 각종 제사를 드려준답시고 돈을 요구하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교회가 변질되어가고 있고 수많은 양의 탈을 쓴 거짓목자가 호시탐탐 당신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 그들의 덫에 걸려 넘어가는 이유는 당신이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헌금봉투를 가져오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 보통의 목회자들의 요구사항도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새벽기도회에 나오라거나 작정기도를 한다거나 금식기도, 예배의식, 봉사 등의 다양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요구하고 있다. 견고한 믿음을 얻기 위한 이러한 해결책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교인들이 교회에서 요구한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성경에서 약속한 능력 있는 믿음을 얻어 누리고 있는가? 필자 역시 평신도 이십여 년 동안 교회의 이러한 요구사항을 맞추려고 무던히도 노력한 편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고, 삶이 고단하고 팍팍해지자 뜨거웠던 믿음의 열정도 시간이 지나자 스멀스멀 사그라져 갔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도들도 견고한 믿음의 욕심은 우리네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 튼튼한 믿음을 더해달라고 졸라댔다.(눅17:5) 그러자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인,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고 하셨다. 이 말씀은 아주 작은 믿음만 있어도 기적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씀이시다. 이 말씀의 요지는 사람들이 믿음이 없기에 신앙에 능력이 없고 삶에 힘이 없다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시하신 믿음을 얻는 통로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얘기에 이어 한 종의 비유를 시작하셨다. 비유가 길어 필자가 간략하게 요약하겠다. 어떤 종이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니까, 주인이 나무그늘에서 빈둥빈둥 놀다가 배가 고픈지 종을 보자마자 식사를 차려놓으라고 한다. 그러자 종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급히 부엌에 들어가 급하게 식사를 준비하여 내놓는다. 그리고는 주인이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곁에서 수종을 든다는 내용이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내용이 없다. 종이란 노예이다. 봉건시대의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목숨을 부지했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예수님의 말은 그 뒤에 나온다. 종이 주인의 말을 헌신적으로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충성하였다고 주인이 종에게 배려를 하고 감사표시를 하겠느냐고 반문하신다. 그러면서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10)며 비유를 끝맺는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요구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여 지폐 몇 장을 드리면 천국에 가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며, 새벽기도회라도 나온다면 목에 깁스를 하고 다닌다. 거기에다 봉사를 하며 무거운 직분이라도 달고 있다면 천국에서 받게 될 면류관과 보상이 엄청날 거라며 날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그러한 신앙행위만 하면 예수님께서 믿음이 엄청나다고 인정하신 내용인가? 성경에는 제자의 조건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을 바쳐야 하고, 모든 소유를 주를 위해 내놓으라고 하셨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행위는 죄다 우상숭배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고, 주일날 한 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일상의 삶에서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어디 그 뿐인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으며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평생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아야 할 것을 촉구하셨다. 이렇게 해도 종이 당연한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전혀 칭찬을 바라지 말라고 하셨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과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의 수준은 하늘과 땅차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을 쫓아다닌 가난한 과부의 비유를 마치면서,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가진 자를 보겠느냐고 혼잣말로 내뱉으신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도 자신에게 왜 아무런 영적 능력이 없는 이유를 분명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믿음이 없다는 게 예수님의 판단이다. 이제는 당신이 선택할 차례이다. 이런 예수님의 믿음을 얻기 위해 마음을 새롭게 하고 쫓아가든지, 아님 지금까지 해온 신앙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배려하셨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대가는 그리 멀지 않아 치르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예수님의 기준에 맞는 믿음을 얻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탁월한 영적 능력을 얻어 멋진 하나님의 종으로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남은 인생을 폼 나게 살다가, 천군천사의 환호를 받으며 천국에 입성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시한 믿음의 조건을 맞추려고 무진 애를 쓰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희생의 행위이라도 말없이 순종하고는, 항상 “저는 무익한 종이예요, 아주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라며 겸손한 속내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그 희생의 행위는 교회의 목사가 요구하는 종교행위가 아니라 성경에서 밝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준다.
그러면 아주 놀라운 일이 생길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런 영적 능력이 100% 당신에게 임할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을 정해 놓고 요구하시는 엄격한 분이 아니며, 성경에서 밝힌 수준에 도달하면 즉각 약속을 지켜주시는 정직한 분이시다. 부족하지만 필자 역시 적지 않은 체험을 했기에 당신으로 하여금 당당하게 이러한 기준을 촉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한 자녀에게 자신의 능력을 차고 넘치도록 퍼부어 주고 싶어 하신다. 당신을 포함해서 누구에게든지 말이다. 이제라도 당신이 애쓰고 노력하기만 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