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말씀하시는 기도응답의 비결

in #christianity6 years ago

교회에 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기도응답에 대한 사람들의 주장이다. 모든 목회자들은 믿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열심히 기도를 하면 응답이 올 거라는 말을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듣는 이들은 별로 없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반박하지 못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이를 체험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기도응답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한 목회자들의 변명은 애매모호하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에 더 기도하며 기다리라거나, 믿음이 부족하기에 기도의 강도를 높이라고 주문하기 일쑤이다. 기도의 강도를 높이라는 것은, 새벽기도를 작정하거나, 기도자리에 나올 때마다 지폐를 가득 넣은 봉투를 가져오거나, 아예 짐 싸들고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기도를 선포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이를 성실하게 시행한 사람들도 별 성과가 없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교회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응답이 오는 기도의 비결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어떤가? 궁금하지 않으신가? 사실 이에 대해서 필자에게 해준 성령이 말씀이 적지 않으시다. 그러나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내용도 성경에 있는 말씀과 별반 차이가 없기에,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하다.ㅎㅎ 그러나 오늘은 성령이 해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사귐이 있는 자들이 내게 와서 이르는 말을 듣겠고, 열심히 주를 섬기고 기쁨으로 주를 섬기면 상이 있다는 것도 알라.’

성경께서는 응답해주시는 기도의 조건으로 사귐이 있는 사람들을 말씀하셨다. ‘사귐’이라는 말은 ‘교제’라는 뜻으로 헬라어로는 ‘코이노니아’ 이다. 예배 끝에 축도할 때, ‘성령이 교통하심(고후13:13)’이라고 말할 때 쓰는 단어이고, 예수님이 계시록에서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표현하신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신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자녀들의 기도라면 누구나 들어주시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신은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를 나누는 기도를 하고 계신가? 대부분 아닐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내용을 들어보면, 교제가 아니라 주문과 청탁에 불과하다.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싶은 사람은 없고, 자신의 얻기 원하는 요구사항을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부자 아버지쯤으로 아는 듯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당신의 기도가 응답이 없고 능력 있는 기도가 실종된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사람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기도를 하기 바란다. 그 기도의 시작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이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혹독하게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면, 드디어 능력 있는 기도의 문을 연 셈이다. 필자가 훈련시키는 기도의 내용이 바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기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훈련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라고 하면, 그동안 교회에서 해 왔던 기도가 아닌 탓에 하나님을 부르다가 이내 예전의 기도로 되돌아가곤 한다. 그래서 입에서 단내 나는 기도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동안 필자에게 기도훈련을 요청하고 필자의 말에 따라 기도를 시작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아서 흐지부지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이에 대한 성령의 말씀을 얹어 드리겠다.

‘적당히 기도하는 자들은 기름을 얻을 수 없다.’

필자는 그동안 많은 이들이 기도의 강을 건너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머리를 흔들면서 중도에 포기하는 것도 보았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혹독하게 기도하는 사람과 적당히 기도하는 사람의 차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당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성령(기름)이 찾아오시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들은 적당히 기도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기도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합격의 기준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성령께 있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기도했다고 주장할 지라도, 성령이 오시지 않는 이유는 성령께서 보시기에 열심히 기도했다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열심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혹독하게, 죽기 살기로, 전심으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몸부림을 치며’라는 말로 바꿨다.

아마 당신은 교회에서 기도의 방법으로 ‘부르짖으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기도회에 가면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는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부르짖으라’는 표현은 성경에 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이다. 이 말씀을 뜻은 소리를 버럭 버럭 지르라는 뜻이 아니라 전심으로 기도하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아무리 소리를 지르더라도 짧은 기간에 그친다면 헛수고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랫동안 전심으로 기도하는 방식으로, 성대를 진동시키지 말고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숨소리를 거칠게 내 쉬며 전심으로 기도하는 태도를 권유하는 것이다.

결국 성령께서 응답이 오는 기도의 비결로, 혹독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가며 성령과 깊고 친밀한 기도를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이러한 기도를 훈련시키지 않으며 교인들도 힘들고 어려운 기도의 습관을 들이 생각이 없다. 그래서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었고, 교회의 직분이 무거운 이들도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이 쏟아지는 능력 있는 기도에 무지하다.

하나님이 영원도록 살아 계시다고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에 대한 유통기간이 존재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기도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도방식을 습관을 몸에 배는 훈련을 통과하시길 바란다. 그 길만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천국에 들어가며, 이 땅에서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얻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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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ii @paulshin and @moses153, great job for community, I appreciate you for promoting such ideas for the betterment of hum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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