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봄의 법칙이 성경에 있다고?

in #christianity6 years ago

어제는 서울의 소그룹 모임에 다녀왔다. 전달 모임에는 버스를 타고 갔는데, 막차시간에 늦어 형제님이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죄송스런 마음이 들어 이번에는 차를 가지고 갔다. 시골에서 살다보니 차가 밀리는 것을 잊고 살았는데, 서울에 들어서면서 또다시 차가 밀리는 것을 경험하면서, 시골에 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ㅎ 그러면서 서울 사는 사람들이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ㅋㅋ

멀리 사는 순서대로 도착한다는 머피의 법칙대로, 가장 먼데서 온 필자가 30분 먼저 도착해서 모임장소에 들어가니 일등이었다. 이번에도 처음 보는 얼굴들이 눈에 띄었는데,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다가 어떤 회원의 입에서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와서 오늘은 그 얘기를 하고 싶다.

바라봄의 법칙’은 필자가 평신도 시절에 다녔던 교회에서 많이 쓰는 용어였다. 이 말은 바라보는 대로 얻어진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 노동계약을 새로 맺고 얼룩진 양을 노동의 대가로 받기로 하고 나서, 샘물 곁에 버드나무나 살구나무와 신풍나무껍질을 벗겨놓고 양과 염소가 교미를 할 때 그 나무껍질을 보게 하여, 대부분의 새끼들이 죄다 얼룩덜룩하였다는 사건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기도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라보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면 응답이 온다는 뜻으로 설명되는 용어이다. 또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구체적으로 바라보면서 기도하며 구하는 것을 두고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어 성경에서 밝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배하고 있다.

그래서 그 회원은 당시에 기도할 때 소원하는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구했다고 한다. 갖고 싶은 가구도 마호가니 원목으로 된 것으로 백화점에서 본 것과 똑같은 것을 달라고 기도했고, 핸드백도 잡지에서 본 것과 똑같은 유명브랜드의 명품을 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결과에 상관없이, 그런 기도의 태도가 성경적인 기도방식인가를 생각해보자.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창30:37~43)

위의 사건은 워낙 유명하고 신기한 사건이라 모르는 분이 없을 것이다. 야곱이 벗긴 나무껍질을 세워놓고 양들이 교미할 때 보여주니까 죄다 아롱진 새끼를 낳아 거부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게, 바로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한다.

사실 이 사건은 이성적이거나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알 수 없는 기적적인 사건이다. 야곱이 왜 그렇게 했는지 성경을 읽어서는 알 수 없다. 만약 양치는 목동이 야곱처럼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통해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대가로 주신 선물이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자신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성품에 대한 인생등록금을 혹독하게 치렀고, 고난과 역경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과 성품으로 바뀌어졌을 것이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 깨달음과 지혜를 주셔서 기적적인 사건으로 야곱의 생업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이 누구나에게 적용하는 하나님의 방식인가?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구하면 주시겠다고 한 적이 없다. 있으면 어디 말씀해보시라. 하나님이 누구나 구체적으로 마음에 그리고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신 적이 없으시다. 이는 자기암시나 자기 최면 등의 심리적인 방법으로 세속적이고 세상의 방법이다. 말하자면 사탄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식은 기도하는 사람의 성품, 속내, 동기, 목적을 날카롭게 살펴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겉모양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마음에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구하면 주신다고? 지나가던 개가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할 일이다. 하나님은 탐욕이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셨다.(골3:5) 그렇다면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이냐고?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9~13)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위에 다시 옮겨놓으셨다. 예수님이 구하고 찾으라고 하신 것은 당신이 세상에서 탐욕적으로 얻고 싶어 하는 목록이 아니라 바로 성령이다. 그런데 번영신학을 추구하는 수많은 목회자들과 탐욕에 눈이 먼 교회지도자들이 성경을 왜곡되고 자의적으로 변질시켜 가르치고 호도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도행위를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떼를 쓰며 얻고자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탐욕적이고 세속적인 교인들은 그런 교회만을 찾아다니며 자신이 좋아하는 설교를 듣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소유를 버리며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기도자리에 앉아서도 탐욕을 드러내는 자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이렇게 말씀에 무지하니까 악한 영의 포로가 되어,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살다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이다. 이렇게 두렵고 안타까운 일이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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