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부인을 하지 않으려면 기도하지 말라.

in #christianity7 years ago

아시다시피, 필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기도훈련요청을 받아들여 훈련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충주에서 영성학교를 열어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주말이나 주일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이 전국에서 찾아온 공동체 식구들로 빼곡하게 차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기본적인 기도훈련과정을 졸업하고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습관을 들이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2년이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령이 내주하시고 인도하시는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가 있는지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성령이 임재 하는 증거가 나타나서 졸업을 시켜서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식구들의 상당수가 더 이상 진전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목하 고민 중이다. 이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하고 있는 데도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이겠지만, 가장 많은 이유가 바로 자기부인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얘기를 좀 하고 싶다.

먼저,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기도란 하나님의 영과 내 영혼이 만나서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통로이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피조물이 자신을 찾아와서 경배하기를 가장 기뻐하신다. 그래서 쉬지 않는 기도로서, 하나님을 만나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하는 의무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쉽게 찾아오시는 게 아니라, 전심으로 자신을 찾는 백성들만을 찾아오신다. 또한 한번 찾아오셨다고 하더라도 지속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래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전심으로 쉬지 않는 기도의 습관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래서 필자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 사역을 하는 이유이다. 즉 기도란 자신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기꺼이 하는 것이며,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주어진 상황에서만 선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생각이나 뜻이란 처음부터 없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도하는 목적을 종종 잊어버리고, 자신의 뜻을 구하는 수단으로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응답도 내려오지 않는 이유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예수님은 제자가 될 수 없다면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제자가 될 수 없다면 천국은 언감생심이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똑같이 죽었으며 날마다 죽노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결심은 사도바울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인가? 아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예외 없이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래서 당신은 자기를 부인하며 날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오홋, 그렇다고? 그래서 주일성수와 십일조, 각종 교회봉사를 열정적으로 하는 있다고? 그래서 그게 자기부인을 하는 모습인가?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교회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1분짜리 영접기도를 마치면 구원을 얻는 믿음이 있으며 성령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성공하고 부유하게 사는 것만 간구하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 번째 제자의 조건인 자기부인 따위가 필요 없으며, 사도바울이 날마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기도응답으로 성공하고 부유하며 떵떵거리고 사는 일만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게3:13~19)

위의 구절은 초대교회 중의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책망이다. 그들은 자신이 믿음이 부요하다고 여기며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교만과 오만을 책망하시며, 지금의 마음의 태도를 회개하고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계시다. 이렇게 예수님은 목숨을 걸고 기독교인이 된 초대교회의 교인에게도 서슬이 퍼런 잣대를 들이밀고 계시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이나 계획, 자신의 뜻이나 꿈, 목표나 성취감, 자기만족, 자기의를 드러내는 자기 자신(자아)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이미 시체가 된 것이다. 시체가 좋아하고 소원하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인지하고 느낄 수 있겠는가? 시체는 아무런 감각도 없고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오직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대로 삶에 적용하며 사는 모습이다. 그러나 수많은 교인들이 자신이 소원하는 기도를 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나서도 여전히 자신의 계획이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자기부인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존재감을 드러내시지 않는 이유이다. 자기부인을 하려면 오직 하루 종일 하나님을 부르고 찬양하고 경배하고 회개하며 감사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만을 해야 한다. 그리고 환경이 열리거나 사람을 붙여주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성령의 인도함인지 분별하여서 성령의 열매가 있다면 그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상관없이 살아가기 때문에, 오랜 기도에도 응답이 없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 영성학교 공동체의 식구들은 대다수가 나름대로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철저하게 자기부인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이나 열매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철저한 자기부인이 없다면, 열심히 기도해보아야 자기만족이나 자기 의에 그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5
JST 0.029
BTC 62904.22
ETH 2571.38
USDT 1.00
SBD 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