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혹독하게 기도하는 게 어려운지 아는가?

in #christianity8 years ago

필자가 기도훈련생들의 문자회신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혹독하게 기도하라’이다. ‘혹독하게’와 같은 의미로 동반하여 사용하는 부사어가, ‘죽기 살기로’, ‘몸부림을 치면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이다. 훈련생들은 기도 코칭을 시작해서 졸업하는 날까지 이 단어들을 귀가 따갑게 듣게 된다. 그러나 다들 혹독하게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카페에 들어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코칭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혹독하게 기도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 필자에게 선뜻 기도코칭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혹은 지역별로 모이는 장소에서, 혹독하게 기도하는 자세를 물어보는 것이 관례가 되어있다.ㅎ

혹독하게 기도하는 자세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팔에 힘을 주어, 쥐어짜듯이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은 이미 게시판의 글들을 읽어 이미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해 보면 알게 되겠지만, 이런 기도자세는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야심차게 시도하다가 중도에 슬그머니 그만두곤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체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다. 체력이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에 비해 조금 낫겠지만, 혹독한 자세의 공급원은 체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체력의 강약은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구호 중에, ‘악으로, 깡으로’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이 기도는 악에 바쳐서 깡다구로 하는 기도가 맞다. 그렇기에 체력으로 버티는 사람들은 오래 가지 못하고 정신력으로 하는 사람들이 달콤한 열매를 따먹는 이유이다. 많은 이들이 아침에 1시간, 밤에 1시간 내는 것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설령 기도자리에 앉았더라도 엄청난 잡념과의 싸움에 바짝 두 손을 들어버리고 만다. 왜 그런지 아는가? 이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자신을 버리는 거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8,39)

위의 말씀의 공통점은 자아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죽여서 내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성령이 들어오셔서, 나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자아가 죽지 않은 사람들은 성령이 들어오실 수도 없고, 설령 들어오신다 하더라도 금세 나가버리게 된다.

그러나 당신이 교회에 나온 목적이 무엇인가?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그게 전부인가?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세상에서 잘 되고 성공하여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필자의 지적을 공감하지 못하겠다면, 당신의 기도목록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기도자리에 앉자마자 남편의 승진과 출세, 사업과 투자의 성공, 자녀의 명문대학 입학, 고질병에서의 회복 등 세상적인 축복을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당신의 기도내용을 들어보면, 당신이 교회에 나온 목적을 금방 알게 된다. 이처럼 당신이 교회에 나온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탐욕을 채우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기가 싫고 성경 읽는 게 귀찮은 까닭이다. 그냥 주일날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해서 지폐 몇 장을 뿌려주기만 하면, 기도응답이 쏜살처럼 내려오고 축복이 쏟아진다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봉사를 하고 새벽기도에 참석해서 당신의 욕망을 채우는 기도를 반복하고 있다. 그게 바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인가?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는 목적이 세상에서 잘되고 축복받는 것인데, 어떻게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되는가?

필자는 기도훈련을 하는 동안에는 간구하는 기도나 방언기도를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만을 혹독하게 하는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필자의 말에 따르지만 어느새, 그러면 내 희망은 어떻게 되는가? 내 목표와 내 계획과,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내가 선호하는 것들은 어떻게 되지? 즉 내가 꿈틀꿈틀 살아서 기도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사람들은 이 기도를 중도에 포기하게 된다. 기도를 하고 싶어도 돈 벌고 돈 쓰는 일에 바빠서, 기도시간을 내지 못하는 이들도 내가 살아서 그런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술이나 취미, TV나 영화, 인터넷 서핑이나 게임 등에 빠진 사람들도, 자신을 죽이기를 싫어하기에 혹독한 기도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필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권면하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증발되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어차피 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오랜 경험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천국이 좁은 문이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치열하게 아귀다툼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을 찾는 이가 적기 때문이다.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필자가 요구하는 기도가 혹독한 이유는 자기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죽기 않기 때문에 기도가 어렵고 힘들다. 그러므로 자신을 학대하고 미워하는 사람들만이 이 과정을 통과한다. 그게 바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쩝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78
BTC 62848.12
ETH 1698.87
USDT 1.00
SBD 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