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그리 무서운가?

in #christianity8 years ago

필자는 충주의 시골에 묻혀 살아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모른다. TV뉴스도 보지 않고 신문도 보지 않으니 깜깜소식이다. 물론 칼럼을 쓸 때 인터넷을 연결하여서 포털 사이트의 대문에 실린 한줄 뉴스를 통해 짐작은 하고 산다. 그런데 엊그제 대전에 가서 생필품을 구입하러 가끔씩 들르던 대형할인매장에 들렸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산함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들이 왜 마스크를 썼는지 인지하지 못하다가, 이윽고 메르스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사리 알게 되었다. 최근 메르스 공포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다는 증거는 외국에서 코칭 문자를 보내오는 훈련생의 근심어린 말투나, 점포를 내어 자영업을 하는 제자들의 입을 통해 그 공포가 얼마나 심각한지 들어볼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어제 오늘 일어난 것은 아니다. 가깝게는 사스 독감 때도 그랬다. 죽으면 시체가 시커멓게 변한다고 해서 흑사병으로 불리는 페스트는, 괴담수준으로 그친 게 아니라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무려 2천만명이 사망했으니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백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에이즈나 에볼라 등의 질병도 끔찍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같은 공포의 근원이 무엇일까? 그 실체는 죽음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기에, 갑자기 닥치는 죽음이나 급속도로 전염되어 퍼지는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의 죽음은 필연적이다. 죽음에서 도망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평균 수명에 비해 일찍 죽는 사람도 있고, 천수를 누리다가 죽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이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하려고 한다고 능사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을 즐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말기암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게 있다. 죽음 뒤에 영혼이 가야 할 거처이다. 성경은 그 곳이 딱 두 군데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천국 아니며 지옥이다. 세상 사람들이야 천국이나 지옥을 부정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당신이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성경이 절대 불멸의 진리를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을 것이다. 성경에는 육체적인 죽음 후에 심판이 있는데, 이 땅에서의 삶을 평가받아 천국에 들어가든지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면서 전전긍긍할 게 아니라, 죽음이후의 영혼의 거처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아하, 그렇다고? 그래서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의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있으며 교회에서 권면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군말 없이 따라하고 있다고? 그런가? 그런데 왜 죽음을 그리 두려워하는가? 아니, 무슨 말이예욧? 누구나 죽음이 두려운 게 사실 아니에요?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그렇게 말하는 분도 죽음이 두려우시지 않아요? 필자의 대답을 들려드리기 전에, 먼저 말씀드릴 이야기가 있다.

그 주인공들은 초대교회의 교인들이었다. 아시다시피, 그들은 로마당국과 유대교의 박해를 받아, 잡히면 모진 고문 끝에 형장의 이슬로 이 땅을 떠났다. 원형경기장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사자밥이 되기도 하였고, 기름이 부어진 채 밤하늘을 밝히는 가로등이 되기도 하였다. 톱으로 켜서 두 동강이가 되거나 채찍이나 몽둥이에 맞아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했을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붙잡혔어도 기독교를 배교하면 더 이상의 형벌이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죽음이 그렇게 두려웠다면 예수를 부인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순교자들은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었다. 북아프리카의 어떤 노예자매는 사자밥이 되려고 원형경기장에 끌려가면서도 아름다운 찬양을 불러서 구경하는 군중들을 경악시켰다. 베드로도 죽음을 하루 앞두고 졸다가 천사가 깨우기도 하였으며, 바울과 실라도 죽도록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고요한 찬송을 불러서 간수와 다른 죄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들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당신은 왜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고 벌벌 떨고 있는가? 필자가 그 이유를 친절하게(?) 말씀드리겠다. 천국에 갈 자신이 없어서이다. 5분짜리 영접기도에 동의하고 교회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고는 있지만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확신이 들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면 공포가 들어차고 두려움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필자의 진단이 맞는다면 당신이 천국에 들어갈 확률은 단1%도 없다. 불길한 느낌대로 당신은 지옥에 던져 질 운명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성령이 안에 계신 사람들의 특징은 평안함과 자유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자신에게 들어오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평안은 아무리 부정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평안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런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성령이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증거이고,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당신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전에 사스가 닥칠 때도 그랬던 것처럼 메르스 공포에도 벌벌 떨고, 베리칩이나 일루미나티, 지진이나 전쟁의 소문을 들으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당신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아서 죽음에서 도망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미의 도피처를 찾아 헤매든지 아니면 24시간 마스크를 끼고 다니든지 간에, 당신은 죽음에서 도망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운명을 바뀌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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