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축사 기도문, 금식기도, 작정기도, 일천번제 기도회는 효험이 있는가?

in #christian7 years ago

투브 채널에는 귀신을 축출하는 기도문에 대한 동영상이 돌아다니고 있다. 축사 기도문은 가톨릭교회에서 많이 하는 방식이다. 가톨릭교회는 축사기도문뿐 아니라 다양한 기도문을 책으로 엮어서 교인들이 읽어가며 기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문 뿐 아니라, 특정한 기도방식도 우리네 교회에서 낯설지 않다. 교회에서 기도하려면 새벽기도, 작정기도, 금식기도, 일천번제 기도 등의 특정한 기도방식을 권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나 특정한 기도방식을 하는 것이 성경적이며, 성경적이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효험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행19:11~16)

위의 구절은 바울이 놀라운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장면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자 당시 흑마술로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던 유대인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바울이 엄청난 영적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깜짝 놀랐다. 그들은 흑마술(귀신의 능력으로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 필자 주)을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귀신들을 쫓는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능력임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하는 기도의 방식을 면밀하게 눈여겨보고 있다가, 자신들도 그 기도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귀신들린 이들에게 바울이 말한 기도문을 외치기 시작한다. 위의 구절처럼, “바울이 의지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명령하니 귀신아 나가라”고 말이다. 그러나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는 누구냐며 이들에게 달려들어 폭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당시 바울이 말했던 축사 기도문은 흠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이 죄다 쫓겨나갔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귀신들이 축사 기도문이 얼마나 훌륭한지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축출기도를 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보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나 바울이 기도할 때는 혼비백산하며 도창치기 바빴지만,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쫓아가서 두드려 패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특정한 내용이 들어있는 기도문이 귀신을 쫓는 데 아무런 영향을 비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처럼 특정한 축사기도문으로 기도하면 귀신들을 쫓아낸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귀신에 대한 분별력도 없어서, 유투브 조회수가 많은 사람이 주장하거나, 세간에 유명하다는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말한 것을 믿고 있다.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에서 권면하고 있는 새벽기도, 금식기도, 작정기도, 일천번제 기도회가 효험이 있을까?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3~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사66:2~4)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이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1:13~15)

위의 이사야의 구절들은 우리네 교회에서 행하는 새벽기도, 금식기도, 작정기도, 일천 일동안 헌금을 갖다 차비며 기도한다는 일천번제 기도회가 아무런 효험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 기도는 무당들이 행하는 기복신앙에서 유래가 되었을 것이다. 희생의 강도를 더하면 하나님의 감동을 얻을 거라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의 기도방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희생의 강도를 더하는 기도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미워하는 지의 여부를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다. 그래서 사람들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거나 금식을 하거나 헌금봉투를 드려가면서 기도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런 기도에 무지하며, 틈만 나면 교인들을 이런 저런 기도회로 교회로 불러들여서 갖가지 명목의 헌금을 강요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기도방식은 희생적인 기도방식을 따라하거나 특정한 기도문을 외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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