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머리말

in #chosun6 years ago (edited)
□ 머리말

[새벽에 주상이 인정전(仁政殿)에 나오니 백관들과 인마(人馬) 등이 대궐 뜰을 가득 메웠다. 이날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주상과 동궁은 말을 타고 중전 등은 뚜껑 있는 교자를 탔었는데 홍제원(洪濟院)에 이르러 비가 심해지자 숙의(淑儀) 이하는 교자를 버리고 말을 탔다. 궁인(宮人)들은 모두 통곡하면서 걸어서 따라갔으며 종친과 호종하는 문무관은 그 수가 1백 명도 되지 않았다. 점심을 벽제관(碧蹄館)에서 먹는데 왕과 왕비의 반찬은 겨우 준비되었으나 동궁은 반찬도 없었다. 병조 판서 김응남(金應南)이 흙탕물 속을 분주히 뛰어다녔으나 여전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고, 경기 관찰사 권징(權徵)은 무릎을 끼고 앉아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다른 신들을 모시는 사제들, 그리고 한때 집정관이었으며 개선행진의 영광도 누렸으나 이제는 늙어버린 시민들은 차마 로마를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예복을 갖추어 입고 당시 최고 제사장이었던 파비우스를 따라,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위해 몸 바치겠다고 신들에게 맹세했다. (중략) 로마를 점령한 갈리아의 왕 브렌누스는 군인들로 카피톨리움을 포위했다. 그리고 자신은 포룸으로 갔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예복을 갖춰 입은 노인들이 침묵을 지키며 앉아 있었다. 그들은 적이 다가오는데도 일어서서 저항하지 않았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두려움 없는 편안한 모습으로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2천 년에 가까운 시차를 두고 유라시아 대륙 양쪽 끝단의 두 도시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기록들이다. 두 도시 모두 당시 한 나라의 수도였다. 치욕적인 군사적 참패를 경험하고서 적군의 말발굽에 짓밟혔다는 공통점도 지녔다. 나중에 힘겹게 가까스로 탈환되었다는 후일담 또한 공유하였다.

두 도시의 비슷한 궤적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흐른 후 한 도시는 당시까지 알려진 서양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대제국의 중심지가 되었고, 또 다른 한 도시는 나라가 주권을 상실함으로써 비참한 식민지 처지로 굴러 떨어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인용된 기록의 출처를 밝히는 일을 미루는 것이 더 이상은 어려울 듯싶다. 당장 나 자신이 몸이 근질근질해져서 더는 못 참겠다. 독자들도 이미 충분히 눈치를 챘겠지만 앞의 기록은 저 유명한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내용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서기 1592년, 즉 선조 25년 4월 30일 새벽의 사건을 담았다. 뒤의 기록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카밀루스 편에 담긴 이야기로 알리아 강둑에 진을 친 로마군이 갈리아 군대에게 궤멸당한 지 사흘 후에 생겨난 놀랍고 기묘한 일화를 그리고 있다. 조선은 왕실은 물론이고 사대부들까지 저 혼자 살겠다면서 백성들을 내버리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반면에 로마는 국가를 책임진 엘리트들의 상당수가 비겁하게 도주하느니 차라리 당당하게 적병의 칼에 죽임을 당하는 길을 선택했다. BC 390년 7월경에 벌어진 사태였다.

그렇다면 조선의 사대부들은 로마의 귀족들과 비교해 도덕적으로 열등하거나 인격적으로 모자란 인간들이었을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인간은 평균적으로 비슷한 이유에서다. 공화국 로마에는 국가를 배신한 반역자들은 수두룩했고, 전제왕조인 조선에도 나라를 위해 일신의 안전과 영달을 포기한 충신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관건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사회의 지도층들을 감싸고 했던 전반적 분위기와 그들을 사로잡았던 주된 정서일 터이며, 그러한 정서와 분위기는 수백 년의 역사를 두고 서서히 축적되어 위기의 순간에 마침내 뚜렷이 발현되는 법이다.

왜 로마의 엘리트들은 평복으로 갈아입고서 도시 바깥으로 피신해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에 적군의 눈에 단박에 뜨이기 쉬운 화려한 관복을 치렁치렁하게 차려 입고서 백주대낮의 광장 한가운데서 무더기로 죽어나갔을까? 그들을 비장하고 영광스러운 최후로 이끈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동시에 로마는 로마인들만의 손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이는 플루타르코스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20세기 전에 명징하게 내린 결론이다. 플루타르코스는 그와 같은 결론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통해 공들여 입증해갔고, 그 덕분에 후세의 우리는 사마천의 「사기」와 쌍벽을 이룰 만한 고대의 위대한 역사서인 그의 저술에 의지해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과 유용한 가르침들을 다양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배워나갈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눈감은 현재는 공허하고, 현재를 무시하는 미래는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본서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입문서 구실을 하고 있다. 어린이용 위인전쯤으로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오해받아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명예회복을 목적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해하기 편하도록 등장인물의 순서와 비중을 원전과 다르게 배치하고 조정하였다.

본서는 그와 더불어 일종의 반론서 역할도 자임하고 있다. 근대적 교통과 통신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고, 현재와는 달리 동서양 모두를 아우르는 풍부한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대적 여건의 제약 때문에 플루타르코스가 불가피하게 잘못 해석할 수밖에 없던 인물과 사건들의 재평가를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그 결과 당대를 살아간 역사적 인물들이 삶의 중대한 고비에서 행했던 선택과 결정을 현대적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을 때로는 무모하다 싶을 만큼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다.

언제나 한 권의 해설서보다는 한 줄의 원전이 백배는 가치가 있고 의미가 크기 마련이다. 「이기는 리더, 성공하는 리더십」과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관계도 이러한 법칙에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본서에 있는 것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빠짐없이 들어있지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실려 있는 흥미진진한 모험담과 파란만장한 서사들이 본서에서는 상당히 많이 생략돼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어나갈 것을 독자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금년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해이다. 지도자의 크기가 나라의 크기이고, 국민의 크기가 지도자의 크기이다.

- 각주 : 이 책의 전자책 판본은 작년인 2017년에 출간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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