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평(時代漫評) - 240. 마광수교수가 지금시대의 맨가슴 시위를 바라본다면,
92년 유명사립대 교수였던 마광수는 강의 도중에 검찰에 연행되어서 구속되었다. 죄목은 음란문서 유포였는데, 92년 개정판으로 출간한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스러운 음란문서에 속한다는 것이 구속사유였다. 그 해에 <즐거운 사라> 는 문화부에 의해서 판매금지되었고, 2년여의 판결기간을 거치면서 대법원에까지 상고를 하였지만 결국은 유죄확정이 되었다.
국내유명 사립대학 교수의 신분으로 노골적인 성묘사를 담고 있는 외설소설을 쓴 저자에 대한 비판과, 저자와 출판사 책임자 구속이라는 초강경 대응으로 맞선 정부에 대한 비판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창작물의 외설여부를 법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 격렬한 사회적 논쟁이 이어졌었다.
이것이 한 세대전의 시대상이다. 그 당시에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도 생소했고, 여성인권운동이라는 것도 정신나간 미친년들의 급진적 좌파활동이라고만 치부될 때였으니까, 감히 여자가 성에 대해서 밝히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있을 수 없는 외설스럽고 추잡한 이상행동이었을 뿐이었다.
그러한 시대에 <즐거운 사라> 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의 프리섹스를 즐기는 자유분방함이라는 것은, 도무지 시대적으로 용납할 수가 없는 음란함이자 퇴폐스러움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페미니스트 옹호론자들이 마광수 교수의 업적을 평가하면서, 위대한 선각자로서 인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될 만한 것이다. 여성중심의 성문화가 존재하지도, 인정되지도 않던 시대의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공인의 위치에 있는자가, 그것도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자가 여성들에게 "마음껏 섹스를 즐기면서 실용적 쾌락주의를 추구하라는 사상"을 전파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지난 92년도에 <즐거운 사라>가 출판되어서 음란성 시비가 일던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너무도 다르다. 지금의 시대는 오히려 여성의 성적 억압과 성적 시비거리에 대한 문제들을 남성중심적 시각에서의 해법이 아니라 여성들 입장에서의 평등권을 당연하게 인정하면서 해법을 찾으려는 시대로 변화해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마광수 교수의 사상을 깊게 파고들어가보면, 그 자신은 서구식 상류층 여성들 중심의 페미니즘을 진정한 여성해방운동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류층 여성들이 남성중심의 권력형구조를 타파하고 사회적 권력을 쟁취하여 신분상승을 꾀하려는 위장된 전략이라는 견해로 보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오히려 마광수 교수가 진정으로 바래고 있었던 여성해방운동의 관점은 섹슈얼 판타지(Sexual Fantay)에 대한 이해를 더 중요시하려는 측면이 있었다.
미국식 상류층 여성들 중심의 페미니즘 운동은 권력쟁취를 위한 포장되어진 위선적 여성해방운동이라는 것이지만, 변태적인 섹슈얼 판타지나 탐미적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권력쟁취형 페미니즘 운동이라면, 이것은 분명 사기극이라는 견해에 나 역시 지극히 공감하는 바이다.
지금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얼마전 서울 역삼동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있었던 여성들의 맨가슴 시위 때문에 소란이 일고있다. 이것을 공연음란죄로 보느냐 마느냐, 혹은 남성의 공연중 노출은 음란죄가 작용되면서 여성들 시위에서는 왜 적용이 되지 않으냐 등의 여러가지 형평성 논란이 일어나면서 또 다른 남녀차별의 문제로도 번지고 있으며, 페미니즘 운동의 진실성을 더 깊게 파해쳐보려는 사회일각에서의 여러가지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마광수교수는 지난해에 사망했다. 정말 아쉬운 것이 그가 사망한 시점 이후부터 미투운동의 전개와 더불어서 여성들의 탈코르셋운동과 같은 성적 억압에 대한 해방을 요구하는 여성운동이 불이 붙기 시작을 했다. 만약 지금도 마광수 교수가 살아있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이번 '불꽃페미액션' 소속 여성들의 집단 알몸시위를 바라보면서 어떤 식으로 그의 견해를 내보였을까 정말 궁금하다.
물론 나는 남성이지만, 마광수 교수의 "마광쉬즘"과 "불꽃패미액션" 소속 여성들의 알몸시위를 모두 다 아주 긍정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마광수 교수의 주장대로, 여성들 역시도 그들에게는 성적 자율결정권이 태생적으로 주어져있는 주체적인 존재들인데, 여성들 역시도 자신이 원할때에 자유선택적으로 성을 추구하고 탐닉할 권리가 남성과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여성의 성적 쾌락은 남성을 위한 수동적 보조적 피동적 존재로서만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을뿐인가? 그 연장선상에서 남성의 시각적 기준으로 여성의 미모를 아름답게 만들려는 화장술과 가슴키우기와 하이힐과 머리가꾸기 등이 분명 불공평한 여성억압이라는 시각은 충분히 합리적인 견해라고 보는 것이다.
여성들이 편할 수 있는 자기 꾸밈이 합리적인 것이지, 남성들 중심의 시각에서 아름답게 보여질 수 있는 외적인 기준을 중심으로 삼는다는 것은 분명 불공평한 견해라고 생각이 된다. 지금 시대까지도 여성이 여성스럽다고 여기는 것은, 진정한 자연 그대로의 여성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여성스러움의 논리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만약 마광수교수가 다시 살아나서, 지금의 여성운동들을 바라본다면 분명히 한 소리 내뱉었을 것 같은데, 과연 뭐라고 한 소리 하게 될까 엄청 궁금해진다.
과거에 마광수 교수의 사상을 내비춰 준 짧은 산문시가 하나 있었다.
나도 못생겼지만 - 마광수 -
못생긴 여자가 여권(女權)운동 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여자가 남자에 대해 적개심을 표현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남자가 윤리, 도덕 부르짓으며 퇴폐문화 척결 운동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남자가 성(性) 자체에 대해서 적개심을 표현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여자들과 못생긴 남자들을 한데 모아 놓고서
자기네들까리 남여평등하고 도덕 재무장하고 고상한 정신적 사랑만 하고
퇴폐문화 없애고 야한 여자 야한 남자에 대해서 실컷 성토하게 하면
그것 참 가관일 거야
그것 참 재미있을 거야
그것 참 슬픈 풍경일 거야
나는 마광수 교수의 이 산문시가 정말 마음에 든다.
너무 시대를 앞서서 성문화의 왜곡과, 성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애써 부끄러워하는 숨김의 민낯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꿰끓어 본 그 통찰력이 정말 마음이 든다.
저는 여성이지만 페미니즘이라는 기치를 사회적으로 너무 과하게 이용하는 행태가 불편해요ㅜ 화장하고 꾸미고 하는건, 이성을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닌 자기만족이 큰데 그걸 두고 여성억압이라느니ㅜㅜ 그건 자기가 만든 논리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격이죠. 여자가 여자의 적이라느니... 그런 말도 여자가 만들어 냈듯, 페미니즘이라는 말 속에, 그 속에서 만든 논리안에 스스스로 갇히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마광수 님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대표주자격, 학자이자 작가였다고 봅니다. 인생말년에 경제적 궁핍함과 극심한 우울증세로 고생하다 사망하다니... 안타까워여
시대를 잘 못 만나 안타깝게 살다가 가셨네요. 이 시점에 서갑숙씨도 기억에 나네요. 모진 눈총과 핍박을 받았을 그는 잘 이겨내고 잘 살고 있기를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마광수 교수는 결국 시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지만,
오늘 소개해주신 시 재미잇습니다. ㅎㅎㅎㅎ
외모지상주인데요?ㅎㅎㅎ
ㅋㅋㅋㅋ 아무도 감히 못하는 말을 말이죠 ㅋㅋㅋ
그렇네요 진짜 외모지상주의이네요 이 댓글보고 다시보닠ㅋㅋㅋㅋ
그 못생김이 그들의 겉모습을 말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들의 마음 속을 말하는 걸까요?
미의 기준과, 그 잣대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으악 마지막 시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소올찍 하셨네요 일찍이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리스팀합니다^^
즐거운 사라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음란하다 생각했지만 지금은 많이 변해있 듯 여성가슴해방운동이 지금은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이또한 받아들여지리리라 봅니다.
작년에 하늘로 가셨군요.
지금 그 책이 나왔다면 그 때와는 다른
상황으로 전개 되었을 듯 합니다.
저두 당시엔 그 책 읽지도 않았지만
뉴스에 조명이 될 때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교수가 어찌 그런 글을 썼을까 하면서.
지금의 저는 많이 달라졌죠.
분명 시대를 앞서신 분은 맞는 듯 합니다.
저 시는 엄청 솔직한 시 입니다.ㅋ
산문의 시를 읽어보면 정말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광수 교수님의 뜻과는 다르게, 대립과 분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