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전화하기 버튼은 왜 이렇게 생겼어?

in #busy6 years ago


photo by Alexas_Fotos in pixabay

제가 어릴 때, 저희 집은 물론이고 주변 이웃들의 집에는 대부분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기가 있었습니다. 전화기 앞면에 큰 원판이 붙어있었고 원판의 끝부분에는 손가락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10개쯤 있었습니다. 구멍마다 숫가 있어서 거기에 검지손가락을 넣고 원판을 오른쪽 끝까지 돌리면 해당 숫자가 입력되는 방식이었죠. 당시의 전화번호는 한 자리 국번과 뒷부분의 네 자리의 번호, 예를 들면 3-1234 같이 다섯개의 숫자였습니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다이얼을 다섯 번 돌려야했습니다. 3에 손가락을 넣어서 오른쪽 끝까지 한 번, 기다렸다가 다이얼이 원위치가 되면 1에 손가락을 넣어서 또 한 번.. 이런 식으로요.



photo by markusspiske in pixabay

시간이 흘러 집 전화의 다이얼이 버튼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도 이게 원래는 돌리는 스타일이었다는 건 다 알고 있었습니다. 전화기는 내구성이 강해서 고장나는 일이 아주 드물었고 TV에서는 주말의 영화로 "007, 다이얼을 돌려라"를 틀어주곤 했으니까요.


99.JPG
유튜브 캡처

급기야 이렇게 생긴 놈이 나타납니다. 시외전화 방지장치까지 달아서 말이죠. 첩보영화에서나 보던 무선전화기를 처음 보고 흥분한 아이들 탓에 초기의 무선전화기는 고장이 잦았습니다. 전화기를 아무데나 숨겨놓고 호출버튼을 눌러 찾는 놀이를 한다거나, 전화를 쓰지도 않으면서 무전기처럼 "본부 나와라 오바"를 외치며 다니는 나쁜짓을 했기 때문인데요. 이후로 당분간은 전화기의 형태는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외형이 점점 축소되었고 전화기 본래의 기능과는 상관없는 소소한 기능들이 붙긴 했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집에 전화기가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다들 휴대폰으로 개인-개인의 통화가 가능해진 세상에서 굳이 상대방의 집에 전화를 걸어 "안녕하십니까. 저는 ㅇㅇㅇ의 친구 ㅇㅇㅇ입니다. 실례지만 ㅇㅇㅇ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를 외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엔 사라져버린 탓입니다. 저희 집에는 몇 년전까지 집 전화로 통화하시는 분이 딱 한 분 계셨습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였는데 폴더폰의 작은 액정이나 스마트폰의 터치액정을 만지길 부담스러워 하셔서 "유선전화"를 이용하여 30년간 변하지 않았던 익숙한 번호를 눌러 통화를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우리집의 가장 큰 변화는 유선전화를 해지하는 것이었습니다. TV 옆 한켠을 항상 지키던 전화기가 할머니의 부재를 여전히 느끼게합니다. 그 빈 공간을 통해 다이얼 전화와 키패드 전화, 무선전화와 휴대폰이 시간을 달리하며 존재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할머니도, TV옆의 전화기도 사라진 후에 태어난 제 아이 눈에는 전화기가 있던 자리에 대신 올라와있는 어항만 보일 뿐입니다.



photo by Tumisu in Pixabay

그리고 말문이 트이고 여기저기 전화하는 방법을 알고 수시로 제게 "아빠, 고모한테 전화하고 싶어" 등의 말을 던지던 아이가 갑자기 묻습니다. "아빠, 전화하기 버튼은 왜 이렇게 생겼어?"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묻는 질문에 말문이 막힙니다. 이제 이게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구나.

당구장 표시(※)나 저장하기 버튼의 디스크 그림처럼, 조만간 전화걸기 버튼은 의미없는 그림으로만 전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었을 때나 천재지변의 대처방안 중 하나로서 공중전화 사용법을 하나하나 교육해야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선일보: 18. 8.18.자18.10.10.자 기사를 참고하였습니다.










Sort:  

ㅠㅠ 정말 요새 아이들은 전화기 모양을 모를수도 있겠어요!!!!!!
그런 생각 자체가 정말 신기하네요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와.. 첫 댓글 감사합니다ㅎㅎ즐거운 한 주 되세요~

Coin Marketplace

STEEM 0.21
TRX 0.14
JST 0.030
BTC 69672.37
ETH 3356.16
USDT 1.00
SBD 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