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밍고의 단상 - 평창올림픽 계.폐막식 송승환 총감독

in #busy6 years ago (edited)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편입을 고민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쉽다. 당시 나는 고민만 하다 2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다. 내게 영어 시험의 벽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째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는지 참 아쉽다.

당시 컴퓨터학과 학생이었던 나는 '이벤트학과'로 편입하고 싶었다.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하며 이벤트 기획에 큰 매력을 느꼈던 시기였고, 기획자들이 참 멋져보였다. 2002월드컵 등을 기획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때쯤 인지했다.

송승환 감독은 난타 이후 우리 문화계의 한 획을 책임지고 있다. 이 인터뷰기사 외에도 여러 기사를 읽었던 것 같다.

난타는 류승룡, 김원해 등 굵직한 배우들을 배출한 공연이다. 아직도 많은 관객들이 찾고있다고 하니 이를 기획한 송승환 감독은 참 대단하다. (학창시절 나 또한 이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저는 인생 내내 낚싯대를 여러 개 드리우고 살았어요. 어린 시절에 소년 가장이었기 때문에 늘 망해도 돈 벌 궁리를 했죠. 영화 섭외 안 들어오면 드라마 하고, 드라마도 없으면 MC라도 해야 했어요. 생존 방법이 늘 여러 장르에 몸을 걸치고 있는 거였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재미있었다는 거예요(웃음).”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대학은 중퇴, 문화부장관은 거절" 송승환의 '동시다발' 역전 인생

명사들의 철학을 듣는건 참 재밌다. 특히, 송승환 감독의 철학이 나와 비슷해 더욱 마음이 간다. '인생 내내 낚싯대를 여러 개 드리우고 살았다.'

나 또한 올인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올인을 할 때면 심히 불안해지고, 뒤쳐지는 느낌이다. 개발을 하면서도 여러 언어와 플랫폼의 트랜드를 익히고,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여러 개의 낚싯대가 필요하다.

올인을 하지 않고 올인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선 타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수 밖에 없다.

아마 송승환 감독 또한 그랬을 것이다.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마냥 즐겁진 않았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3년 6개월간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있었잖아요. 한 달 정도 있으면 몰랐을 텐데 3년 6개월을 있었더니 보였어요. 굉장히 수준 높은 작품도 있지만, 좀 후진 작품들도 행세를 하더라고요. 박지성 선수도 공감할 거예요. ‘외국 나가서 뛰어보니 정말 잘뛰는 선수도 있지만, 좀 못하는 놈도 연봉을 꽤 받네.’ 글로벌한 곳에서 상황을 입체적으로 경험하니 겁이 좀 없어졌달까요. 내가 최고는 못 돼도 열심히 만들면 아주 못하는 놈들보다는 잘하겠다(웃음).

나는 올해부터 기자로 일하고 있는데, 지난 2년간 창업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중 동료 창업자들과의 네트워킹 경험이 송승환 감독의 경험과 비슷하겠다.

2년간 수백명의 창업자들을 만났다. 나와 같은 시드 단계의 창업자는 물론, 스펙을 쌓으러 온 학생, 사회경험이 없어 서투르지만 열정은 만땅인 학생,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기술형 창업자.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기획형 창업자. 능력치라곤 언변 뿐인 위험한 부류. 그리고 정말 뛰어난 완성형 창업자들.

그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인터뷰로만 접했을 때와는 달리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 경험 덕에 이제는 찰나의 낯가림 외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다지 두렵지 않다.

만약 내가 편입에 성공했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지금 얻지 못했을 것과 잃지 않았을 것은 뭐가 있을까?

자신의 철학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송승환 감독도 어느 순간 현실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게 문화부 장관직이었더라도 말이다.

재미난 인터뷰다. 왜 이 인터뷰 시리즈가 매번 타임라인에 올라오는지 알겠다.

그래서 나는 어떤 철학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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