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32

in #busy5 years ago (edited)

안태석(7연대 8중대 화기소대장) 3

안태석의 증언을 둘러싼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와 육군군사연구소의 해석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는 6월 26일 소양교 전투가 있음을 입증하는 자료로 활용했으나 안태석 증언이 오전 전투 시간을 혼동해 기억한 것인지, 아니면 일몰 경에도 또 한 번의 적 자주포에 대한 공격이 있었는지는 추가적인 증거의 불충분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육군군사연구소는 안태석이 증언한 내용은 25일 옥산포 전투가 아니라 26일 소양강 지역의 전투로 추정되며, 안태석이 언급한 좌표 893850는 춘천 남단 10km 이남 지역이기 때문에 그의 증언을 심층깊게 다시 분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태석 증언의 주요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변된다. 첫 번째는 심일이 26일 일몰 또는 21시경 적 전차(자주포)를 파괴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안태석은 26일 21시경 심일 소대장이 안태석에게 “포1문 밖에 없어 이제 우리는 죽었다. 마지막이다. 안소위 Cal-50으로 엄호사격을 해달라. 내가 전차를 공격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심일이 소양교 남단에 진지를 구축한 것은 다른 증언과 정황상 사실로 보인다. 다만 26일 21시경 적 전차가 소양교에 출현했다는 증언은 사실 관계를 따져 봐야 한다. 안태석이 "그러나 1번 전차가 삼거리에서 소양교를 넘기 위해 진입하자 57mm 대전차포는 기다렸다는 듯이 좌측 카타필터(궤도)를 명중시켜 전차가 좌로 비스듬히 정지, 도로를 완전히 가로막게 되었다.“고 했다. 안태석이 그린 요도대로 하면 파출소 일대의 진지에서 적 전차의 좌측궤도(보는 방향을 기준)을 사격을 한 것이다.

그러나 소양교에는 난간이 있어 요도에 있는 진지에서 측면사격을 하면 궤도를 맞추기 어렵다. 더욱이 그 시각이 21시경이라면 사계에 제한 받을 수 있다. 적전차가 소양교에 진입하기 전에는 현 진지에서 측면사격이 가능하나 소양교에 진입하면 매우 제한된다. 그것은 다리 난간에 포탄이 맞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일단 소양교에 진입하면 적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정면사격만 가능하다. 그러나 당시 57mm 대전차포는 정면사격으로 적 전차(자주포)를 파괴할 수 없었다. 또한 안태석의 증언대로 좌측 궤도가 파괴되었다면 그림처럼 적 전차의 포신이 범바위 쪽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대전차포진지가 있는 쪽으로 포신이 향해야 한다. 이는 전차부대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군인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이는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하거나 꾸며낸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전투상황을 설명했다고 판단된다. 북한군이 포탑을 열고 나왔다는 증언에서 ‘포탑’은 ‘해치’를 의미하며 이는 당시 투입된 적 전투장비가 해치가 없는 SU-76M형임을 고려시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심일이 특공조와 적 전차를 파괴했다.” 는 내용은 특공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확인된 사실과 26일 23:30분에 적 선봉중대가 소양교에 도달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증언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이 간다. 그리고 안태석이 적 전차를 파괴했다고 증언한 좌표 893850는 춘천 남쪽 10km이다. 이렇게 볼 때, 심일이 26일 21시경 소양교에서 적 전차를 파괴했다는 안태석 증언은 정황 설명의 모순, 적군자료, 북괴군이 포탑을 열고 나왔다는 설명, 특공조 언급, 전사기록, 한미의 훈장 공적서 내용으로 비추어 볼 때 증언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둘째는 안태석은 북진시 심일과 금산까지 같이 같으나 중공군 공세시 포로가 되었고 그 후 심일의 소식은 모른다고 증언했다. 이대용장군은 안태석이 벽동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여 1951년 3월에 복귀 후 심일이 묘향산 화전민 집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탈출하는 과정에서 전사했다고 말한 것을 증언했다(2016. 7.6). 이대용은 전사 및 실종자에 대한 일보 정리는 19050년 10월 29일부터 3개월 지난 후 했고, 그래서 심일이 1951년 1월 26일 ‘실종 중 전사’로 처리 되었다고 증언했다. 심일이 1951년 1월 26일부로 ‘실종 중 전사’로 정리된 후 1951년 3월 안태석이 심일 전사 경위를 증언했으나 일괄 정리한 일보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안태석의 증언을 분석해 보면 안태석 증언 자체의 모순과 증언을 뒷받침 해줄 1차사료, 전사기록, 적군기록, 증언이 없다는 점이다. 심층깊은 검토가 필요한 태극무공훈장과 미 은성무공훈장 내용에 26일 10시에 소양교에서 심일의 공적이 있다고 하나 시간의 차이, 파괴주체와 방법 그리고 파괴 위치 등을 고려시 안태석 증언을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안태석 증언은 심일이 26일에 소양교에서 적 전차(자주포)를 파괴했다는 증거로 채택하기는 다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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