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땀을 잇는 ‘미싱아이들’의 유쾌한 행보
헐렁한 바지에 힙합 모자가 잘 어울릴 것 같은 다섯 남자를, 락카페가 아닌 횟집, ‘푸른밤 빛나는 바다’에서 만났다. 기자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10일, 재봉기 유통과 봉제주변기기 제조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모임, ‘미싱아이들’의 정기 모임에 함께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부친의 일을 이어가고 있으며 연령대가 30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기자의 관심을 동하게 했다. 젊은 인력이 유입되지 않는 봉제현장 만큼이나 재봉기 판매와 주변기기 제조업계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서울 주교동 미싱街에서 만난 K씨는 “40년 가까이 꾸려온 미싱판매점을 대물림하고 싶어 자식에게 권유해 보았으나 단박에 손사래 치더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아버지의 일을 잇고자 팔을 걷어붙인 채 땀 흘리고 있는 ‘젊은 피’도 더러 있다.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 각자 소개와 함께 회사에서의 역할은?
- 모임을 갖게 된 배경은?
– 남희태 : 아직은 경험 부족으로 일선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들이 부지기수다. 그럴때마다 업계 선배님들로부터 조언을 구해야 하는데 워낙 연배 차이가 나 대하기가 어렵다. 그러다보니 입장이 비슷한 몇몇이 만나 어려움을 토로하게 되었고 막혔던 문제도 풀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가끔은 해외전시회 참관도 동행하며 이야기 나누다 보니 같은 생각을 가진 젊은 세대라 소통이 쉬웠다. 그러던 중 모임을 만들어 생각과 정보를 공유하기로 입을 모았다. 공감대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한층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정보를 감추려고만 했다. 이를테면 자기만의 알짜 기술은 꼭꼭 숨겼다. 소통은 먼나라 얘기고 경계심만 가득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공유하고 소통해야 한다. 융합과 윈윈이 절대 필요한 세상에서 ‘미싱아이들’의 역할을 지켜봐 달라.
– 고병찬 : 이 모임의 결성은 그런 면에서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저희 세대에서 정보 공유는 기본이다. 저희가 재봉기 기술이나 경험으로 얘기하자면 어디가서 명함도 못내민다. 모임을 통해 부족한 것을 채우며 소통하다 보면 경험은 쌓여지고 기술은 축적될 것이기에 모임 땐 늘 궁금증을 가지고 와서 서로에게 묻고 확인한다.
- ‘미싱아이들’이라 이름한 이유는?
2세들이라 하여 대놓고 2세 모임이라 하기도 그렇고 해서 어차피 아이들 때부터 시작하다보니 멤버들 중에서 누군가 ‘미싱아이들’을 제안했고 이견없이 모두들 좋다하여 정했다. ‘미싱아이들’이라 이름 붙였지만 멤버들 경력은 다들 10년 전후 된다. 다들 결혼도 했고 내년이면 학부모가 되는 멤버도 있다. 모임 이름이 ‘미싱아이들’이라서 회원자격이 재봉기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봉제주변기기메이커나 봉제기기 에이전시 종사자도 포함한다. 현재 회원은 여섯명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다섯명 외에 재봉기에이전시인 피엔비트레이딩(대표: 이호연)에 근무하는 박준석 계장도 멤버다. 회원은 소수를 원칙으로 하되 추천된 인물에 대해 회원 모두가 환영하면 함께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모임때 게스트는 관련 업종 종사자라면 누구라도 환영한다.
- 인터넷 상 재봉기유통에 대한 생각?
– 고병찬 : 인터넷 상에 올라와 있는 재봉기를 살펴보면 가격이 터무니없다. 실제 문의하면 그 가격대에 팔지도 못한다. 오로지 싸게 파는 재봉기몰이라는 입소문을 퍼트릴 목적으로 가격만 흩뜨리는 곳이다. 정작 사겠다고 나서면 그곳엔 십중팔구 원하는 물건이 없다. 인터넷 물건을 보면 어디서 공급된 것인지 대개 알 수 있다. 수소문해서 가격수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적정 가격을 지키는 것이 판매자와 소비자가 공생하는 길이다. 사후관리를 제대로 보장 받으려면 무조건 싼가격만 쫓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 남희태 : 저희 역할이 이런 것이다. 도매상이 소비자한테 직접 팔겠다고 덤벼 버리면 가격이 확 내려갈 수도 있다. 재봉기라는 것이 사용자에게 전해지기까지 워낙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인데다가 무겁기까지 해 적당한 마진없이 그렇게 판매해 버리면 공멸할 수밖에 없다.
– 김기복: 재봉기라는 게 팔고 끝이 아니다. 사후관리가 늘 따라 다닌다. 박음질 하다가 조금만 이상해도 즉시 콜이 온다. 다양한 기능성 소재에 대응키 위해서는 재봉기의 기능도 따라줘야 한다. 끊임없이 재봉기의 AS가 요구되는 이유다. 이러한 요소를 감안하여 재봉기는 반드시 제 가격에 공급되어져야 한다. AS 요구에 대응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팔게 되면 AS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재봉기 도소매상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지만 지켜내야 한다.
- 고객에게 재봉기 추천 기준은?
– 김기복: 의류를 공부하는 학생이나 소품을 취미로 제작하는 소비자들이 고가의 재봉기를 찾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무리하지 말라고 조언하며 적정한 가격대의 재봉기를 권한다.
– 고병찬 : 우선적으로 원하는 가격선과 용처를 물어본다. 흔히들 마진이 큰 재봉기를 권할 것이라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떤 브랜드를 판매하든 마진은 거의 비슷하다. 판매했을 때 사용자가 손을 좀 덜 쓰게 되는 재봉기를 권한다. 또 너무 싼 것도 너무 비싼 것도 안 좋을 수 있어 제일 많이 나가고 잔고장이 없는 것으로 추천하는 편이다.
- 임대미싱은 주로 어떤 식?
– 고기선: 재봉기 임대는 본봉, 특종 등 기종을 망라해 이뤄진다. 공장에서 오더 받아 특정한 공정을 작업해야 하는데 그 양이 많지 않아 잠깐만 기계가 필요로 할 경우, 기계 구매가 부담스러울 경우나 한두달 정도만 꼭 써야할 필요가 있을 때 임대미싱을 사용한다. 인건비가 부담스럽고 기계에 투자하기가 버거운 소규모 공장들도 주 고객이다.
– 김기복: 임대미싱의 장점도 있다. 신품이든 중고든 AS 기간이 있다. 임대미싱은 임대 기간 내에서는 AS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요즘 많은 사무실에서 사무용 복합기를 임대해 쓰듯이 봉제공장들 역시 재봉기 임대 비중이 높다. 그러다보니 임대미싱을 공급하는 미싱판매점은 매우 분주하다. 재봉기는 손이 엄청 많이 간다. 임대가 끝나면 회수하여 분해해서 더러워진 부분은 닦아내고, 조이고, 기름치고, 망가진 건 고쳐서 또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 남희태 : 장위동 같은 경우에도 옛날에는 기계를 다 사서 봉제를 했는데 인건비가 너무 오르니까 지금은 임대가 많다. 본봉 객공사가 하루 12~15만원 선이다. 예전에 거의 월급제였는데 월급이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객공을 쓴다. 일당이 그렇게 오르니까 기계 투자를 쉽게 못하는 것 같다.
- 짝퉁 재봉기 유통에 대한 생각?
– 고기선: 초창기 대표적인 해외 재봉기 브랜드들 즉, 부라더, 쥬끼, 야마토, 시루바, 킹텍스 등이 국내외적으로 가짜브랜드 유통으로 곤욕을 치룬 적 있다. 지금까지도 시장에는 가짜가 유통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시루바의 경우 연간 피해액이 어마어마해 각 에이전트를 상대로 매 분기마다 한번씩 가짜 기계 구별하는 방법을 이메일을 통해 알려 주기도 한다. 본사 측에 따르면 국제법에 의뢰해도 비용과 기간 소모가 너무 커 엄두를 못낸다고 한다. 작년까지만해도 국내에서 시루바를 비롯 유통되고 있는 가짜 브랜드를 몇번 본 적이 있다. 국내 대형 공장들이 해외로 대거 빠져 나간 뒤 더욱 많아진 조그만 공장들, 인터넷 판매 제품을 생산하는 곳, 가정집에서 소일 삼아 봉제 하시는 분들이 가짜 재봉기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층이다. 이들을 상대로 듣도 보도 못한 어설픈 재봉기를 인터넷 상에 올려 가격을 흐려놓는 쇼핑몰도 더러 있다. 이들 때문에 어찌보면 정통 브랜드 재봉기들이 도매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터넷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올라와 있는 재봉기들을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 남희태 : 재봉기 유통업계가 타 업종에 비해 이런 부분에 있어 좀 둔감하다. 판매하는 분이 이게 ‘사과’다 하면 ‘사과’로 믿을 수밖에 없다.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이건 ‘사과’가 아니고 ‘배’라고 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답답하다. 그래서 저희 세대에선 SNS에 공업용 재봉기 관련 자료를 수시로 올린다. 일반 소비자가 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재봉기 브랜드를 이해하고 가짜브랜드에 대한 구별 능력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 대를 잇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
– 고병찬 : 재봉기 유통에 있어 대충은 없는 거 같다. 각자가 땀 흘린 만큼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반 중노동이다. 대를 이어 보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처음엔 갈등도 컸다. 우리 모임만 보더라도 다들 대학교 나와 유학 다녀오고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드라이버 잡고 기름때 묻혀야 하니 처음 1~2년은 적응이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은 힘들어도 보람이 크다.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 남희태 : 군대 가기 전 20대 초반 무렵, 저희도 중고 재봉기를 했다. 당시 중고 수출로 2억원어치를 멕시코로 보낸 적이 있었다. 당시 중고 재봉기 작업을 거들면서 죽는 줄 알았다. 수요는 있는데 중고 재봉기 재고가 부족하니까 아버지께서 전국을 돌며 계속 사들였고 저는 손질하기 바빴다. 없는 부속은 사서 넣어 패킹하는 작업을 두달 연이어 했다. 그렇게 컨테이너에 실어 보냈는데 계산기 두드려 보니 헛일을 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손해가 난 것이다. 이후로도 중고 재봉기 수출은 꽝이었다. 또 한번 파키스탄으로도 수출했다가 다 까먹었다. 그렇게 손실을 보았는데도 선친께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표정 지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밀어붙이자는 주의가 강했다. 그땐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큰 기둥이셨다. 하도 힘이 들어 ‘나는 절대 안해’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막연하게 가업을 생각하게 되면서 재봉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썬스타 재봉기 공장을 노크해 현장근무를 청했다. 그렇게 8개월을 인천 가좌동 썬스타 공장으로 출퇴근했다, 현장 제조공정을 경험하면서 안목을 넓혔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경험이 재봉기 판매점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
– 고기선: 저희가 재봉기 세대로 보자면 한 3세대 쯤 된다. 앞으로 4세대로 이어질지가 의문스럽다. 1세대, 2세대까지는 그나마 국내시장이 돌아갈 때였다. 그렇지만 저희 3세대는 의욕이 많은 세대다. 어려운 시장을 물려받아 이끌어 가야할 책무가 있다. 짐이라고 생각하면 못한다.
– 정상근: 저희가 만날 때마다 내년엔 어떨까를 얘기하게 된다. 그럴때마다 ‘내년엔 좀 더 힘들지 않을까’라고들 한다. 업계 어르신들은 잘 될 때를 경험했다. 요즘 들어 점점 어려워지니까 움츠려 들려는 경향을 보인다. 제가 보기엔 안될 때 움츠려 들려고만 하면 나아갈 방향이 없다. 앞으로 뛰쳐 나가든, 멈추든 하나를 택해야 한다. 전쟁 중인데 후방에서 한가하게 총알을 팔려고 하면 팔릴까? 몸을 사리지 않고 최전선에 나가서 팔아야 팔린다. 수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얘기다. 윗세대 분들은 이제 전쟁터에 나가길 꺼려 한다. 앞뒤 재지 말고 곧장 전쟁터로 뛰쳐 나가야 하는 세대가 바로 우리다.
- 재고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이유?
– 고병찬 : 한달에 물건 들어오는게 100대가 넘는다. 아마도 안동미싱도 똑같을 것이다. 지금 창고에는 부라더와 페가서스 재봉기가 각각 100대씩, 야마토도 40여대, 시루바도 30대, 대광 흡입기 등으로 꽉 채워져 있다. 그야말로 대리점은 메이커의 야전부대인 셈이다.
– 남희태 : 판매되는 댓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해외 재봉기 메이커 측에서는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 감당이 안될 때가 있다 이번에도 오버록을 필요 수량 보다 많은 50대를 받았다. 최소 50대는 되어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받을 수 있다. 50대, 100대 단위로 받는 가격이 틀리다. 소단위로 물건을 받으면 할인폭이 없어 도매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최소 의무 수량을 받아야 하기에 판매가 부진하면 창고에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욕 넘치는 젊은 모임에 함께 했다. 대학 동아리모임처럼 생각이 젊고 유쾌했다. 어려움에 처한 업계를 걱정할 때는 사뭇 진지하기도 했다. 업계가 강건해지려면 ‘젊은 피’의 수혈이 절대 필요하다. 이들의 행보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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