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맛있는, 책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

in #book2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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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맛있는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 환영이다. 그럴 때, 옆에서 누군가 와인에 대한 설명을 더해준다면 금상첨화! 나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설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그 농도의 조절은 필요하겠지만, 적당한 설명은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것'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써먹는 거다! 😎

책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는 와인과 그림을 모두 사랑하는 저자가 자신이 애정 하는 두 대상을 더 깊고 맛있게 음미하고자, 둘의 교집합을 담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비중은 와인 쪽에 더 실려 있는 듯하다.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다 와인에 빠져 무작정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저자의 사심이 100%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고 밸런스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한 부분에 쏠려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와인에 대해 알고 싶었던 터라, 그 점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책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의 목차는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다. 각 키워드에 맞는 와인 이야기와 그림 이야기를 엮어낸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몇 편을 공유하며 책의 톤 앤 매너를 소개해 보려 한다.

🔍 의외성

의외성이라는 카테고리에서는 와인 역사에서 굉장히 센세이셔널했던 '파리의 심판' 사건이 등장한다. 과거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을 경시했던 프랑스인들의 고정관념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으로 1976년,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훌륭한 와인을 선별하는 이벤트에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모두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선정되는 일이 발생했다. 심사위원 중 자신의 평가지를 찢어버리려 했던 사람이 있었을 정도로 굉장한 충격을 주었던 그날의 결과는 미국 와인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인 중에서 최고는 프랑스 와인이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많이 보고 듣고 맛보는 와인이 대부분 프랑스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좋고 맛있는 와인은 많다! 개인적으로 이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 '파리의 심판' 사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와인을 선택할 때, 굳이 프랑스산만을 고집하지 말아야겠다는 소소한 다짐을 하게 만든 이야기였어서 인상적이었다.

의외성 카테고리에서 다루는 미술 작품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이다. 기존의 아카데미즘에서 탈피하여 일상의 단면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마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처음부터 환영받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림이 시련을 겪었을 정도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오늘날 마네는 인상파의 시작을 알린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당대의 트렌드를 과감히 거스른 그의 대담한 시도가 새로운 시대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이다.

🔍 응축

응축이라는 카테고리에서는 귀부 와인을 소개한다. 귀부 와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왠지 귀부인이 좋아하는 와인인가? 하는 이상한 질문이 떠오르지만, 사실 그 뜻은 귀할 귀자에 썩을 부자를 써서, 귀하게 썩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귀하게 썩은 와인이라니, 아니 무엇보다도 썩은 와인이라니! 이번에는 취두부가 떠오를 것 같지만, 사실 귀부 와인은 이름처럼 굉장히 귀한 와인이라고 한다. 강 근처에서 주로 만들어지며 포도가 부패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갖춰져야만 곰팡이와 수분의 적절한 상호작용을 통해 곰팡이는 사멸하고 향과 당분이 응축된 스위트 와인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야만 생산 가능한 귀부 와인인 것이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사실 그리 마음이 가지 않았지만, 생성 일대기를 알고 나니 맛이 궁금해졌다. 어떤 맛일까?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확실히 뭔가가 다를까? 와인을 잘 모르는 내 입맛에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정성의 맛을 한 번 느껴보고 싶다. 마시는 행위 자체로 대접받는 기분이 들 것 같기 때문이다.

응축 카테고리에서 다루는 미술 작품은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이다. 밤거리를 배경으로 노란빛을 내뿜는 카페테라스가 전경에 배치되어 있는 그림으로 꽤 유명한 고흐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물감의 양을 많이 사용해 일부러 두껍게 바르는 방법으로 색감 위주의 작품을 표현하는 임파스토라는 기법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뿜어져 나오는 빛이 굉장히 강렬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이 두껍게 발린 물감으로부터 기원한 효과라니! 멈춰 있는 한 장면의 캡처가 아닌 실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이유 역시 응축된 물감으로부터 야기된 효과라고 한다. 섬세하고 자세한 묘사 없이 물감의 질감, 그리고 색감만으로도 그림에 생생함을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흥미로운 그림이다.

책 <그림을 닮은 와인 이야기>을 읽는 내내 이렇듯 다양한 와인 이야기와 그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약 36개의 카테고리를 통해 두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어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름답고 유서 깊은 두 분야를 한 데 엮어낸 저자의 지식에 감탄하며, 와인과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그의 삶 역시 그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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