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로봇시대, 인간의 일
로봇시대,인간의 일
구본권/도서출판 어크로스
학자의 연구서나 보고서가 아니다. 인공지능,자동화,로봇에 관한 소식에 두루두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한국기자가 2015년 당시까지의 기술 발전과 그 발전을 둘러싼 여러 담론들을 꼼꼼히 소개한 안내서이다.
얼마전 소개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유리감옥>의 니콜라스 카와 <몰입의 즐거움>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도 곳곳에 언급되어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과 관련해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막막한 분들이라면 한겨레 구본권 기자가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여러 저서들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쏟아지는 IT분야 도서들의 자극적 제목들에 현혹되어 원치않는 기술적,철학적 이야기나 주변부 가십성 내용들에 흥미를 잃고 책을 덮어 버린 적이 있는 나 같은 길 잃은 독자들에겐 훌륭한 내비게이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그만큼이다. 오랫동안 기사를 써 온 기자의 달련된 문장과 전달력 그리고 같은 문화권의 한국기자가 바라보고 있는 IT에 대한 시선이 낯설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꾸준히 관련 소식들을 접하고 있던 독자들이라면 싱거울 수도 있겠다. 난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언급하거나 인용한 책들을 최소한 다 읽었을 것이며 적당한 부분의 인용을 위해 책장을 이리저리 뒤졌을 시간들을 상상하면 서울대,한겨레 기자 25년 그리고 성실함에 이미 기가 질린다.
나무가 아니라 전체적 숲을 조망할 수 있는 것은 직업적 관찰자인 기자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은 그 나무조차 놓쳐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질 때 제목만 훑은 나로서는 폭스바겐이 치밀하게 준비한 프로그램을 자동차에 심어 실제운행 될 때와 배기가스 검사장에 올려 져 주행될 때를 구분하여 배출가스를 조절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는 것 등은 이 책의 덤이다.
최근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불고 있는 프로그램 코드 익히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걸 보면 이게 벌써 3년 전에 유행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 또한 최근 출시되는 교육용 아이패드의 소식을 접하면서 애플이 프로그램 언어를 보다 친숙하게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나 앱을 계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최근 들른 서점의 컴퓨터 코너에도 상당한 자리를 코딩이란 제목의 서적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의아하다. 내가 알고 있는 코딩의 이미지는 소프트 개발업체나 게임업체에서 저임금과 장시장 노동에 시달리는 20대들의 코딩 노가다를 떠올리게 되는데 새삼 한국의 젊은 엄마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편견에 이 책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인정보들을 그것을 개발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동의 없이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게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용자들이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알고리즘을 기술적으로 이해하여 그 저변이 확대되고 넓어질수록 정보 독점과 기술적 악용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젊은 엄마들 사이의 코딩교육 열풍으로 연결시키는 뇌과학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보인다.
뒷장에서는 기억의 아웃소싱으로 암기적 뇌나 계산적 뇌의 기능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상상력의 출발이 되는 창조적 뇌 만들기의 마중물은 어느 정도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의 암기와 저장을 통한 즉각적인 호출과 추상화에 시작된다는 설명으로 기존의 전통적 교육을 강조한다.
또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면서 스티븐 잡스와 누구더라 암튼 인공지능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속성으로 결핍에서 비롯된 서로간의 사랑과 질문하는 호기심 이 두 가지를 강조하면서 끝을 맺는데 탐욕스럽게 이윤을 찾아 국경까지 허물어 버린 거대 기술자본을 적절히 견제하거나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의 이름으로 사랑과 호기심은 너무 허약하고 낙관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인다.
셀프보팅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