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와 화폐의 회계적 기원 - 1
블록체인으로 구현된 최초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에 대한 사토시의 논문은 여러 측면에서 혁신적 시각을 보여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화폐의 원천(source of money) 혹은 기원(origin)에 대한 것인데, 사토시는 화폐가 명백하게 '통제' 또는 '관리'의 산물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고전 경제학은 왜 화폐를 ‘시장의 산물’로 보았는가
이는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학자들이 화폐의 기원을 설명하는 오래된 전통에 반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대개 화폐를 '교환'이라는 행위로 구성되는 '시장'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스미스가 피력한 이 견해는 마르크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화폐를 특수한 기능을 가진 상품으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상품 소유자들은 자신의 상품을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다른 특정 상품에 대해 대비하여 관련시킴으로써 그것들을 가치와 관련시키고, 그럼으로써 상품들을 서로 연관시킬 수 있다....오직 사회적 행위만이 특정 상품을 일반적 등가물로 만든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상품에 대한 사회적 행위가 특정한 상품을 분리시키며, 분리된 이 상품을 통해 다른 모든 상품들은 자신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게 된다....일반적 등가물은 사회적 과정에 의해 선발된 이 상품의 특수한 사회적 기능이 된다. 그리하여 그 상품은 화폐가 된다."
MARX, K. 자본론 1 권 (상). p.109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89.
마르크스의 이러한 분석은, 화폐를 분업으로부터 기인한 상품 교환이라는 사회적 행위를 위해 태어난 일반적 등가물로 보는 '교환 중심적' 해석의 전형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오히려 화폐에 대한 다른 비판적 해석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였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해석의 단초가 된 것은 애덤 스미스의 화폐에 대한 견해인데, 애덤 스미스의 '화폐 가치이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이 매우 정당함에도 그것은 '화폐의 기원에 대한 이론'은 아니었다.
이쯤에서 역사적 맥락을 통해 애덤 스미스의 화폐 가치이론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당대의 주류 정치경제학 이론인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크게 중상주의의 두 가지 측면을 비판하고 있는 것인데, 하나는 당시 중상주의가 보인 국가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중상주의의 '화폐 지향적'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그는 국부론을 통해 국가의 부는 국가주도가 아닌 '시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어떤 경우든 경제 발전의 목표는 '화폐'여서는 안되며 '화폐'의 양적 증감 자체는 국부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화폐에 대한 다른 이론들
애덤 스미스 이후 마르크스를 포함한 모든 경제학자들은 '화폐 가치이론'과 '화폐 기원이론'을 분리해 내는데 실패한 반면, 역사학자와 인류학자들은 '화폐 기원이론'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인류학자들은 화폐의 몇 가지 기원을 추적했는데, 그것들 중에서 '교환'만큼이나 오래되고 현대 화폐에 '교환'만큼 강한 영향을 준 것은 '회계'라는 것을 고고학적 문헌들 속에서 찾아냈다.
그 중에서도 20세기 초에 발견된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은 이미 인류가 기원전 18세기 경에 화폐를 민법적 권리의 크기를 표현하는 단위로 사용하며, '기록'됨으로써 '존재'하는 가치로 인식했음을 보여주었다.
105조 - 대리인이 부주의로 상인으로부터 받은 금액에 대한 영수증을 받지 아니한 경우, 그는 영수증이 발급되지 않은 돈에 대해 아무런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다.
물론 기원전 3,500년 경에 만들어진 수메르 점토판의 중요한 내용도 당대인들에게 '기록됨으로써 유지되는 가치'에 대한 인식이 상식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회계는 아테네의 공공 재정 관리의 중요한 요소였고, 이미 로마 시대에 이르러서는 국가 운영의 중심적 제도의 하나가 되었는데, 아우구스투스는 회계 장부를 통해 국가를 경영하기에 이른다.
회계적 화폐란 무엇인가?
하지만 이것이 '회계'가 '화폐의 기원'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하면 알 수 있다.
한 부자가 기근을 맞은 시민들에게 1,000원짜리 100개의 빵을 연 10%의 이자를 쳐서 받기로 하고 빌려주고 그것을 회계 장부에 기록하고 정부 기록소에 공증하여 공증 채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년 후 부자는 이 회계 장부 상의 공증 채권을 정부에 11만원에 넘겼다.
여기서 교환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부자의 빵 100개와 10만원의 채권이 교환된 것이다. 이 교환은 화폐에 의해 매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부자에게는 빵과 교환한 화폐가 없다. 그럼에도 부자는 자신의 공증된 회계 장부를 통해 이를 화폐적 자산으로 인식하였고, 이를 정부에 매각하였을 때 정부의 회계 장부에는 시민들로부터 받을 채권 11만 원이 기록됨으로써 자산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현실 공간에 시민들이 먹어버린 100개의 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정부가 ‘국가의 공증 총액은 1,000만원으로 제한하며, 공증되지 않은 채권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법률을 제정하여 발표한다면 어떻게 될까?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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