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in #billyelliot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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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취미에 관한 나의 태도가 늘상 그랬듯, [영화]에 대한 나의 태도도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다. 축구를 매우 좋아하지만(하는 것과 보는 것 모두) 3대 리그에 대해 -프리미어,프리메라,세리에- 빠싹하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어폰을 귀에 달고 살지만 콘서트에 다니거나 음반을 사지도 않는다(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긴 하다).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는 걸 즐기긴 하지만 감독이나 배우의 이름을 외우거나 평론 따위를 찾아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이름을 아는 감독도 몇 되지 않는데, 그 몇 명이란 길 가는 꼬마들도 알만한 스티븐 스필버그, 팀버튼,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다. 이렇게도 감독에 무관심한 이유는 아무리 영화를 봐도 스크린에 감독이 나올 때란 고작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이름 한 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존재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그 존재를 실감한 감독이 있는데, 그게 바로 Stephen Daldry 감독이다. <빌리 엘리어트>,<디 아워스>,<더 리더>의 감독으로, 내가 가끔 영화에 대해 좀 아는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분이다 --;. 이 은인(?)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우선 나의 "군 입대"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는데...
사실 이건 '영화'에 관한 한 남자의 조금은 슬픈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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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달드리 감독과 '더 리더'의 케이트 윈슬렛

누구나 입대하기 한 달 전쯤에는 불안감과 조바심을 느낀다. 물론 몇몇의 무딘 친구들은 입대 당일 차가운 침상에 눕고 나서야 실감이 나더라고 했지만,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사실은 내게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입대 전에 그 간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해봐야 한단 압박감을 줬다. 대개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상 그리할 수 없었던 나는 대신 고상한 척 [영화 감상]을 택했다. 소위의 그 [문화생활]과 가까운 것이란 점,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단(부끄럽지만 물론 어둠의 경로를 말하는거다) 점이 그 이유라면 이유였다.

영화의 선정은 포털사이트의 평점을 참고했는데, 평점이 높은 영화 중 몇 년씩 지난 영화를 택했다(최신 영화는 알바님들이 열심히 서포트 한다기에...). 그 중 하나가 <빌리 엘리어트>였는데, 그나마도 '남자가 발레하는 이야기'라기에 재미 없을까봐 보지 않고 미루다 결국 더 이상 볼 영화가 없어지고 나서야, 유통기한 지난 음식 맛보는 심정으로 마지못해 봤다는 약간은 기구한 사연이 있다.

'빌리'라는 소년이 주위의 편견을 극복해가며 '발레리노'라는 꿈을 이루어 가는 내용의 이 영화는, 더불어 80년대 영국 탄광촌 파업의 시대상황과,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약간씩, 그리고 전혀 거부감 없이 다루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고, 감독의 존재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이유다. '편견'과의 싸움, 파업의 현장, 동성애를 그리자면 비장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가 되야할 것 같지만, 감독은 이 모두를 모아 휴머니즘적인 영화로 녹여냈다. 심지어 영화가 유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까지 말이다.

Daldry 감독은 이러한 휴머니즘적 승화를 세가지를 통해 가능케 했는데, 그게 바로<춤과 음악>,<개성 있는 캐릭터>,<장난 스러운 몇몇의 장면>이다. 특히나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인 <춤과 음악>은 영화 전반에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 즐거움은 더하고 우울함은 전환해가며 영화의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한다. 이런 노력은 발레 선생과 형의 다툼 이후의 장면과, 아버지 앞에서 발레에의 의지를 표출하는 장면에서 두드러지는데, 감독이 춤과 음악을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조절하려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조율을 실현할 수 있었던 데에는 '빌리'를 연기한 Jamie Bell의 공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는데, 연기도 연기지만 그의 춤솜씨는 정말 대단했다. 그의 현란한 스텝을 보며 나도 제법 발을 굴려 봤지만... -_- 리듬을 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느꼈을 따름이었다.

Jamie Bell 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각 캐릭터의 개성을 잘 살리며 연기 했는데, 이 모두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했다. 가부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을 무척 사랑하는 아버지, 반항적인 형, 치매에 걸린 할머니, 동성애자인 친구, 시종일관 담배를 뻐끔거리는 발레 선생님까지 독특한 인물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든다. 어쩌면 '정상'이라 불리는 기준과는 약간씩 '다른' 인물들이기에 더 거부감 없이 '진짜 이야기'처럼 짠하게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감독은 영화의 활력을 위해 이런 독특한 인물들을 출연시키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몇 개의 재미난 씬을 더했는데, 영화 중간 중간 미소 짓게 만드는 이런 장면은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예를 들어, 길가에 서 있던 소녀가 차가 지나가고 나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던가, 발레 학원에 가는 도중 야구공에 맞을 뻔하는 빌리의 모습, "나도 발레리나가 될 수 있었는데..."라며 나름 우아하게 포즈를 잡는 할머니의 모습 등 내용 전개상 꼭 필요하진 않아 조금은 생뚱맞게도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없어도 된다기 보다는, 꼭 필요하진 않지만 그것들이 있기에 즐거울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이런 장난스러운 씬들의 존재는 마치 영화를 통해 감독이 내게 '농담'을 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데, '아마도 이 사람 굉장히 낙천적이고 유쾌한 사람이 아닐까?'하는 섣부른 추측까지 하게 만들 정도다.

이런 몇 가지 노력을 통해 Daldry 감독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조금은 가볍게 전달하는데, 이게 바로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닐까 한다. 긴장을 풀고 잔잔히 웃으며 영화에 집중하는 순간, [소년의 발레]와 [동성애자 친구]에 대한 거부감 같은 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웃고 떠들며 쇼핑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두 손 가득 물건을 사들고 가게를 나오는 것처럼. 방심하는 순간 이미 Daldry 감독의 화술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 편의 영화, 2 시간 여의 유쾌한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 거 봐, 네가 '편견'을 가지고 있던 건 사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조용히 미소 지으며 넘겨줄 수 있는 거라구"라고 말하는 것이고, 마지막 빌리의 비행(발레)이 끝나고 영화에 동감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 스크린에 보이지 않던 감독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편견'에 대하여 계속해서 당신의 귓가에 속삭이던 그의 존재를 말이다.

이러한 그의 화술에 매력을 느낀 나는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더 리더>까지 찾아 보았지만, 시나리오 자체의 성격이 달라서인지 전작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침묵'으로 쓴 서정시... 같다고 할까? 전작과는 반대로 침묵과 인물 표정이 두드러지게 느껴진 영화였던 것 같다. 물론 이 영화도 감명 깊게 보았으며, 전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작을 기대하고 봤던 난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더 리더'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나의 눈썰미와 글솜씨로는 도저히 둘을 같이 묶을 수 없을 것 같으니 다음 기회에 따로 써보도록 하겠다]

개봉 당시 홍보 부족으로 미미하게 시작됐지만, 이내 입소문 만으로 영국에서 무려 1년 동안이나 상영됐다는 이 영화는, 내년에 한국에서 뮤지컬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빌리'역에 맞는 배우를 찾기 위해 전국 오디션을 할 뿐 아니라, 선발되는 배우에게는 발레 유학코스까지 제공한다니 그 노력을 보아서도 기대할만 한 것 같다. 하지만 배우보다도 감독의 역량이 빛을 발했던 이 영화를 얼만큼이나 따라갈 수 있을지는 역시나 지켜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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