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2권(3)
제3항 아군의 방어계획 및 그 실시 개요
(一) 적 전투력에 대한 아 육군의 판단
전권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적의 침공을 위한 전투력은 개전직전 아군을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 증대되어 가고 있었으니 단기 4282년말 적의 병력 및 장비에 관하여 아 육군본부 정보국이 수집한 자료(육군본부 정보국 발행 단기 4282년도말 종합정보보고 단기 4282년 12월 27일 발행)에 의하면 당시 아군이 파악한 적 괴뢰군의 병력 및 장비는 병력이 총계 174,022명으로서 그 중 인민군이 91,598명 보안군이 60,424명이며 기타는 의용군과 잡군(유격대)으로 되어 있었고 장비중 중요한 것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이 파악되어 있었다.
소총 75,653정
기관단총 30,099정
경기관총 5,234정
중기관총 2,287정
76밀리 유탄포 218문
82밀리 박격포 603문
120밀리 박격포 126문
122밀리 유탄포 73문
자동차 1,693량
전차 120대
장갑차 60대
비행기 62대
경비정 30척
당시 아군에 의하여 판명된 적 기설 비행장은 38선으로부터 시작하여 해주 간포 민장면 (강원도) 신막 추전중리 (강원도)용강 평양 안주 원산 선덕(함남) 연포(함남) 함흥 길주(함북) 중강진 신의주 회문(함북) 청진 회령 아오지의 9개소였다. 적 전투력을 이상과 같이 판단한 아 육군본부는 단기 4282년말 당시까지의 정보를 종합하여 적의 기도를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있었다.
『최근의 적정과 제반 정세를 종합하건대 명년(단기 4283년) 춘계를 계기로 적정에 급전적 변화가 예기되며 적은 그때까지에 대남한 후방교란 기반 획득과 내부 붕괴 공작을 강행하여 괴뢰군 남한 침공의 구체적 조건을 조성함과 동시에 전 기능을 총동원하여 전쟁 준비를 급속도로 촉진시킨 다음, 38선 일대에 걸쳐 전면적 공세를 취하고 일거에 대한민국의 전복을 기도할 것임』 그 후 단기 4283년 1월 육군총참모장 대리 신태영 소장이 국련한국위원단에 보고한 바에 의하면 그는 괴뢰군의 전차가 130대 비행기가 120대로 각각 증가되었음을 인정하였고 그때 이미 괴뢰군의 병력 및 장비가 아군의 것에 비하여 훨씬 우월함을 지적하고 『북한괴뢰군의 침략계획이 거의 완료되어 그 실천이 시간문제임』을 국련한위에 보고하였던 것이다. 국련한위보고서(주 부록 제1 국제연합 제5차 총회에 제출된 국제연합 한국위원단 보고서 내용 목차 및 제4장 B항 본문 참조)에 의하면 신태영 육군총참모장 대리는 북한괴뢰군의 공격을 대한민국의 약화의 징조가 나타날 때에는 언제든지 시작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인데 주한 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장군은 이러한 평가에 찬동치 않았으며 대한민국 국군의 전투력은 괴뢰군의 그것에 비하여 우수치는 못하다 할지라도 적어도 대등한 지위에 있다고 인정하였던 것이다.
단기 4283년 5월 10일 신성모 국방부장관은 외국 신문기사들과의 회견석상에서 북한괴뢰군이 대거 38선에 이동하고 있어 침입의 위협이 긴박하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동 5월 12일 국련 한국위원단과 한국 외무장관과의 회견에 있어서 육군참모부장 김백일 대령과 정보국장 장도영 대령이 적정에 관하여 설명한 바에 의하면 당시 적 전투력에 대한 아군의 판단은 다음과 같았다.
병력 182,400명
내역
인민군 6개사 94,500
보안군 3개사 24,000
공군사단 1개사 1,800
기갑사단 1개사 10,000
해군 2개사 15,100
기타 37,000
37밀리 고사포 24문
85밀리 고사포 12문
45밀리 반전차포 586문
76밀리 유탄포 464문
82밀리 박격포 1,223문
120밀리 박격포 172문
76밀리 자주포 176대
장갑차 60대
전차 173대(정보국 3월말 추산에 의하면 242대)
비행기 197대(정보국 3월말 추산에 의하면 211대)
경비정 30척
그러나 개전직전에 이르기까지 적의 병력 및 장비는 더욱 증가일로를 걷고 있었으니 저반사항을 아군이 추측치 못한 바는 아니나 그 구체적 증대량을 파악하기 까지에는 이르지 못하였던 것이며, 개전 후 아군의 반격 개시에 제하여 추후 수집된 정보에 의하여 판단된 숫자에 의하면 개전전 적의 실 병력 및 장비는 아군의 이상과 같은 평가보다 훨씬 많은 수량을 보유하고 있었다.(주 부표 제1 개전전 적 병력 및 장비증강대조표 참조)
아 육군의 적 전투력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특기한 것은 국내 작전에 있어서의 전차의 이용 가치에 관한 것이니 우리나라 국내 작전에 있어서 혹자는 전차의 이용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었고 따라서 아 육군에 전차를 배속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니, 당시에 있어 아 육군 정보국이 적 전차대 육성의 과정을 논하며 겸하여 2차 대전시 독일군이 스도라마 계곡을 전차로서 돌파한 실례를 들어 이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 것을 특기할 일이라 하겠다. 또 당시 적 전차의 성능 등에 대하여는 자세히 지실(知悉: 모든 사정이나 정황을 자세히 앎)하는 바 못되었으며 다만 그 종류를 소련제 중경형과 일제 경형 그리고 약간의 소련제 중형으로 추측하도 있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