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확장

in #essay8 years ago

사운드 디자이너 김벌래는 다음과 같이 소리의 ‘들음’을 나누었다.

문(聞) - 나 자신이 일부러 들으려고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일반적으로 생활환경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들리는 소리, 즉 그냥 저절로 들리는 소리로, 음이나 소리를 무관심적으로 느끼는 상태.

청(聽) - 나 자신이 그것을 들으려고 귀의 의식을 집중시켜, 그것에 몰입해 그 소리를 적극적으로 듣는 형태.

반대의 상황으로 말한다면 관객에게 일체의 다른 소리는 배제 또는 생략하고 현안에 제시, 선택된, 즉 철저하게 주장하고 싶은 핵심 소리만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듣는 상태.

바로 이 형태의 소리 작업이, 소위 우리가 갈망하는 예술에서의 소리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존 케이지의 <4'33''>는 ‘문(聞)’으로 듣는 소리를 ‘청(聽)’으로 듣게 함으로써 ‘문(聞)’을 ‘청(聽)’으로 확장시켰다.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음으로써 ‘공연장 내부의 모든 소리-문(聞)’을 ‘의미가 있는 소리-청(聽)’으로 변형했다.

연주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연주자를 보며 당황한 관객의 웅성거림, 기침, 의자가 삐꺽 대는 소리 등이 모두 의미가 있는 음악-청(聽)이 되었다.

일반적인 음악은 적어도 두세 음으로 이루어진 음 무리가 있어야 한다. 음의 높고 낮음, 음의 길이, 음과 음 사이의 공간(시간), 음의 강약, 음량의 크기, 음색(다른 악기)이 조합이 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음악이 된다.

음향이 아닌 음악에서는 최소한 두 세음이 무리를 지어 몇 초 동안 지속되어야 한다. 음은 어떠한 구체적인 대상과도 관련이 없다. 추상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 예를 들어 어둡고 우울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조나 밝은 감성을 나타내는 장조도 음의 무리가 수 초 이상 지속되어야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이러한 ‘짧은 음악’이 마치 그래픽 디자인에서의 로고 디자인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짧은 음의 무리를 실용적으로 이용하는 로고 사운드는 무리 짓는 음의 기표에 회사의 이미지를 기의로 심어 놓는다.

인텔의 CPU를 삽입한 컴퓨터의 광고에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네 음으로 이루어진 인텔 사운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사도 자사의 소프트웨어에 이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Windows 95의 사운드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만들었으며, Windows vista의 시동음은 70년대의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기타리스트인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이 작곡하였다.

음악의 기표는 단일 차원의 기표가 아니기 때문에 매우 간단해 보이는 짧은 로고 사운드의 기표에는 음의 높이(음정), 음의 길이, 음색, 음의 공간이라는 여러 기표의 특성이 한꺼번에 담겨있다.

예를 들어 4음으로 이루어진 인텔 사운드를 다른 악기, 예컨대 바이올린으로 똑같은 음, 똑같은 길이로 연주한다 하더라도 인텔 사운드라는, 회사를 상징하는 기의는 표현되지 않는다. 악기가 다르기 때문에 음색 기표가 틀려졌으며, 인텔 사운드 특유의 공간음(음의 공간)이라는 음의 기표가 빠졌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은, 아마도 MS 윈도가 부팅될 때 흘러나오는 3.5초짜리 아르페지오일 것이다. 브라이언 이노는 70년대 록시뮤직의 멤버로 활동을 하였으며 음악에 전자공학을 활용한 선구적인 ‘음악 혁신가’다.

이노는 공공연히 컴퓨터를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1990년대 중반 '생성 음악'을 만들 때 코안 프로(Koan Pro) 소프트웨어를 제안할 정도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이해가 어떤 음악가보다도 깊었다. '생성 음악'의 테크놀로지는 초보적인 인공지능이라고 볼 수 있다. 작곡가는 아이디어의 핵심만 입력하고, 소프트웨어는 그 작곡가가 썼을 만한, 음악적 변이를 만들어낸다.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음악을 들을 때마다, 다시 말해 녹음된(입력된) 음악이 매번 '연주될 때마다' 음악이 변한다. 작곡가의 아이디어 핵심 부분은 기본값으로 입력되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음악을 플레이할 때마다 곡이 변이 되어 마치 즉흥연주처럼 다양하게 출력된다.

이노는 우리 손자들이 놀라서 우리를 보며 "똑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면서요?"라고 말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호작용성'이라는 개념을 싫어했다고 한다. 컴퓨터를 그렇게 잘 이용하면서 이건 뭔 소리일까. 이노는 디지털 미디어는 '상호작용적'이기보다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미디어가 되어야 하며, 예술가와 이용자 모두가 창조적으로 참여하고 계속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양방향 인척’하는 컴퓨터의 '일방적인' 상호작용성을 싫어한 것으로 보인다.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이용하고 즐기는 사람 모두가 참여하고 수정하는 음악(미디어 작업)을 생각한 브라이언 이노는 일반 사람들의 수준을 너무 높게 본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단순히 즐기고 소비하는 일반적인 대중음악이 아니라 ‘기술’과 겹치는 실험적인 음악 작업을 하는 브라이언 이노 같은 여러 음악 혁신가들 덕분에 소리(음악)는 다양하게 확장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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